-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춘천국립박물관강바람의 국내여행 2024. 8. 9. 06:36
먼길을 달려 국립춘천박물관을 찾았습니다.
2002년 처음 개관한 춘천박물관은 강원도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복합문화공간으로 4개의 상설전시장과 기획전시실, 브랜드실 외에 야외전시장 등을 갖추고 있는데요.
상설전시장에는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강원지역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자료를 비롯해 국보 제124호인 한송사터 석조보살좌상 등 1,360여 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마침 전시중인 금강산과 관동팔경 특별전,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전을 함께 볼수 있었으니 의미가 무척 컷던것 같습니다.
10년만에 찾은 춘천박물관은 많은 변화가 있어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는데요.
본관을 들어서면 중앙홀에서 마주치는 실감영상카페에서는 차를 마시며 고화질의 28m 초대형 LED미니어월과 중앙계단의 LED 화면을 즐기게 시설하였는데요.
이게 박물관에 걸맞는 시설인지 한때의 유행인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 상당히 낯설기만 하네요.
그래도 변신중인 박물관도 확인하고 강릉 한송사터 석조보살좌상을 다시 음미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니 춘천이 더욱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먼길을 달려 찾은 국립춘천박물관 ~!
본관을 들어서면 중앙홀에서 마주치는 실감영상카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고화질의 28m 초대형 LED미니어월과 중앙계단의 LED 영상을 실감나게 즐길수 있도록 시설하였는데요.
이게 박물관에 걸맞는 시설인지 한때의 유행인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 상당히 낯설기만 하네요.
본관1층의 강원의 고대실에서 만난 삼국시대의 각종 토기들.
약 1,500여년전 선인들의 삶에 쓰던 토기들인데 그때에도 문화, 문명이 상당히 발달했던것 같습니다.
삼국시대 강릉, 동해에서 출토된 금관, 동관들.
이 관들은 5세기에서 6세기까지 신라였던 이 지역에서 사용된 것으로 최고지배층은 금관을 썼지만 지방에선 금동이나 동으로 만든 관을 사용했고 합니다.
영서의 옛 이름, 삭주(朔州)에서 출토된 삼국시대의 그릇, 토기, 농기구 등 유물들.
오호, 불타 버린 양양 선림원(禪林院) 동종의 잔해.
1948년 양양 선림원터에서 아름다운 동종이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는데 이 종은 통일신라 804년(애장왕 5)에 제작된 것으로 평창 상원사 범종(725), 경주 성덕대왕 신종(771)에 이어 3번째로 오래된 종입니다.
선림원 동종은 1949년 오대산 월정사로 옮겨졌다가 6.25 사변때 절이 불타면서 파손되어 현재 잔해만 남아있는 실정.
전쟁의 아픔이 너무 크네요. 흑흑~!
선림원 동종의 아름다운 비천상.
동종에 남아있는 이두(吏讀)로 쓴 명문.
신라시대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표기하는 방법인 이두 명문에 의하면 충북 옥천의 관리부부가 모든 이들이 성불하기를 바라며 시주한 종과 원래 있던 종을 함께 녹여 804년에 만들었다는 내용이라고.
종 안쪽에서 이두문자가 발견되어 동종을 조성한 연대와 내력을 알수 있게 되었으니 무척 의미가 트다는 생각.
염거화상 탑지(塔誌)로 염거화상탑에서 나온 글을 새긴 동판.
염거화상(廉巨和尙, ~844)은 진전사 원적선사 도의의 제자로 가지산문의 2대 조(祖)로 알려진 인물.
일제때 원주 흥법사터에서 서울로 옮겨온 염거화상탑에서 나온 동판으로 통일신라 844년(문성왕 6) 염거화상의 입적과 855년 탑을 세운 연대를 쌍구체로 새겼으며 보물 제1871호.
이 명문을 통해 당대 최고의 고승인 염거화상의 행적이 밝혀졌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승탑의 효시가 되는 염거화상탑의 축조시기를 밝혀내는데 결정적인 자료가 돠고 있다고.
양양 선림원터에서 찾은 홍각선사탑비 조각(보물 제446호).
비는 통일신라 886년(정강왕 원년)에 세웠으나 주인공인 홍각선사(弘覺禪師, 810~880)에 대해서는 비가 파손되어 구체적인 행적을 알수 없는 실정이며
1966년 절터에서 취득한 2개의 비편만 전하는데 작은 편은 국립춘천박물관, 큰 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다고.
현재 선림원터에는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가 2008년 새로이 비신을 만들어 복원한 모습입니다.
비문은 신라 후기에 왕희지의 글씨가 보급되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고.
본관 2층에서 만난 고려시대의 불상들.
10세기 고려때 조성된 약사불(보물 제1873호).
약그릇을 오른손에 들고 있는 철불로 원주 학성동에서 출토.
10세기 고려때 조성된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얼굴 부분은 파손이 심하지만 옷주름, 대좌의 천인상, 사자 등 고려 초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수작.
섬세한 조각이 돋보이는 화려한 석조광배.
고려시대 절터에서 출토된 불교미술품들.
원주 법천사(法泉寺)터에서 발굴된 치미.
치미(鴟尾)란 목조건축물 용마루의 양끝에 높게 부착했던 장식입니다.
2013년 발굴된 강원도 최초의 대형 치미이자 국내에 출토사례가 없는 희귀한 학술자료로서 25개 파편조각을 이어 붙여 복원에 성공했다고.
고려때 제작된 매병과 주름무늬병.
국립춘천박물관의 백미, 강릉 한송사(寒松寺)터 석조보살좌상(국보 제124호).
고려때 조성된 강릉 한송사터 석조보살좌상.
흰 대리석에 표현된 인자한 미소와 부드럽고 우아한 보살의 자태가 넘 아름답네요.
높직한 원통형 보관(寶冠)을 쓴 것이 특징이며 이마 부분의 백호공이 유달리 큰 이유는 누군가가 수정을 떼어내려다 커진것 같아 안타까움이 큽니다.
강릉 남한진동의 해변솔밭에 있던 한송사터에서 1912년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반환되어 국립춘천박물관에 보관전시중이지요.
너무나 소중한 우리의 국보이자 문화유산이네요.
조선 성종의 왕녀 복란 태실(胎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자손이 태어나면 태실도감을 설치한후 작은 항아리에 태를 담고 다시 큰 항아리에 넣어 지석(誌石)과 함께 명당에 묻고 태비를 세웠습니다.
성종의 왕녀 복란(福蘭)의 태를 묻은 태실은 원주 태장동에서 발견되었다고.
1486년(성종 17) 출생한 성종의 왕녀 복란을 위한 태실의 태함.
큰 돌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고 개석을 열어 태항아리를 넣을수 있게 하였는데 지극한 정성이 실로 놀랍네요.ㅎㅎ
조선 후기 17~18세기에 조성된 석조보살좌상.
고개를 숙인채 비장한 모습을 하고 있는 특이한 보살상인데요.
1972년 평창군 대화면에서 발견되었으며 백색을 띠는 무른 재질의 비석(沸石)을 조각하여 조성하였으며 외부에는 옻칠을 한 후에 금을 얇게 붙였으나 현재는 대부분 탈락한 상태.
조선시대 원찰의 불상 앞에 설치되었던 전패(殿牌)와 촉대(燭臺).
화려하게 조각된 나무에 왕이나 왕비, 세자 등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문구를 적은 전패는 1701년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숙종을 위한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브랜드존에서 보는 이상향으로의 초대, 금강산과 관동팔경 전시전.
LED 연출로 폭포수가 쏟아지고 파도치는 영상을 실감있게 보여주는 금강산과 관동팔경 전시실.
작자미상의 6폭 병풍이며 조선 19세기 때 크게 유행했던 민화 금강산도와 관동팔경도.
금강산도화첩의 진불암(眞佛庵).
화첩은 작자미상으로 18세기 초에 금강산을 여행한 노암 김창흡(1653~1722)은 오묘하고 고적한 맛이 이곳에 필적할수 없다고 한바 있습니다.
1816년 24세의 젊은 화원 김하종이 그린 금강산 가섭동.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전.
창령사(蒼嶺寺)는 영월군 남면 창원리, 초로봉 동북쪽 경사면의 해발 약 400m에 있던 조선시대의 사찰로 오래전에 폐사되었으며 절터의 소유주가 사찰신축을 위하여 경지를 정리하던중 땅속에 있던 나한상을 발견하면서 알려지게 되었으며
2001, 2002년 발굴조사로 많은 나한상이 발굴되고 탑지와 건물터 등이 확인되었다고.
2001년 발굴된 영월 오백나한은 이들이 가진 다양한 표정과 미소가 나 자신 혹은 주변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미소 띤 나한.
바위 뒤에 앉은 나한.
'강바람의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서를 겸하여 찾은 양평 용문사(龍門寺) (0) 2024.08.13 춘천 오봉산 청평사, 고려선원 탐방 (0) 2024.08.09 운길산 자락 한음골에서 만난 소박한 한옥 박소재(撲素齋) (0) 2024.08.03 우당 이회영기념관이 입주한 사직동 옛 조세핀 캠벨 선교사 주택 (0) 2024.07.25 부안의 동진강 문포(文浦) 가는 길 (0) 2024.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