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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오봉산 청평사, 고려선원 탐방강바람의 국내여행 2024. 8. 9. 07:00
실로 오랜만에 고찰 청평사(淸平寺)를 찾았습니다.
일찌기 973년(광종 24) 고려 전기에 창건된 청평사는 옛부터 계곡이 시원하고 기암괴석, 폭포 등이 어우러져 자연경관이 매우 수려하여 불교의 선 사상과 도교의 은둔생활 기풍이 깃들어 있던 곳입니다.
고려 중기 진락공 이자현(李資玄, 1061~1125)은 자연경관이 빼어난 청평골에 은거하면서 현재의 청평사를 문수원이라고 칭하고 주변 골짜기 일대를 선원의 정원처럼 가꾸었으며,
조선 초 보우(普雨, 1509~1565)는 이를 토대로 경내를 현재와 같은 공간으로 넓혀 불사를 다시 세우고 원림공간을 한층 가꾸어 청평사를 대사찰다운 변모를 갖춘 아름다운 선원으로 탈바꿈시킨바 있습니다.
청평사는 6.25 사변을 겪으면서 대부분 소실되어 절터만 남아 있었으나 1977년 극락보전을 시작으로 1980~2000년대 초까지 대대적인 복원불사가 이루어져 성공적으로 옛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보우 시절의 아름다운 사찰로 다시 태어났으니 불자들과 스님들의 노고가 얼마나 크셨을까요!
그러나 청평사는 경내만 복원된채 계곡에 산재해 있는 대부분의 고려선원 유구들은 오랫동안 산중에 방치되어 찾기조차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제 선인들의 얼이 배어있는 옛 유적지를 찾아내고 생명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을 기대해 봅니다.
배후령을 넘어 고찰 청평사를 찾아 갑니다.
배치고개를 넘어 상가마을에 이르니 소양호가 보입니다.
1973년 소양호가 생기면서 옛길이 물에 잠기어 배로 다닐수 밖에 없었느나 나중에 험난한 배치고개를 확장하여 자동차로 접근할수 있게 되었지요.
한 여름의 청평사 가는 길은 신선함 그 자체 ~!
국가명승에 어울리는 수려한 자연환경에 개울의 물도 시원하고,
날씨는 덥지만 이런 길이라면 얼마든지 걸을수 있지요.
청평사 계곡에서 만난 당태종의 딸 평양공주와 상사뱀~!
구전되어 오는 얘기인줄 알았더니 '청평사지 잡록'에 수록된 내용이라고 하네요.
옛날 당나라 평양공주를 사랑한 청년이 있었는데 태종이 청년을 죽이자 청년은 상사뱀으로 환생하여 공주의 몸에 붙어 살았다고 하는데요.
공주가 이국의 청평사에 와서 공덕을 올리자 상사뱀은 공주와 인연을 끊고 해탈하였다는 내용입니다.
당나라 시절이면 청평사가 창건되기 이전인데 어찌 이런 전설이 만들어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네요.ㅎㅎ
석문처럼 생긴 거북바위.
원래부터 저런 모습은 아니었고 도로를 내느라고 암석을 부수면서 거북이 모습이 되었다고 하네요.
시원하기 이를데 없는 청평사계곡.
오호, 청평사계곡의 백미인 구송폭포 혹은 쌍폭포, 형제폭포, 이단폭포 ~!
옛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찬사를 보내던 유명한 폭포인데 연일 35도를 웃도는 무더위지만 위, 아래로 쏟아지는 폭포수만은 정말 시원하니 좋으네요.
옛날에는 폭포 아래에서 징검다리로 개울을 건너고 환희령 고개를 넘어 청평사를 다녔다고 하니 믿어지질 않습니다.ㅎㅎ
오봉산의 물을 쏟아내는 구송폭포(九松瀑布).
폭포 주변에 9그루의 소나무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수직으로 쏟아지는 멋진 구송폭포. 혹은 아홉가지 소리를 낸다 하여 구성폭포라고 부르기도.
멋져요, 더위에 지친 길손에게 청량함을 선사하는 구송폭포.
조선초 매월당 김시습이 은거했던 세향원터를 지나니.
청평사 고려선원(高麗禪園) 표지판.
고려선원(高麗禪園)은 고려때 조성한 참선을 수행하는 정원이라는 뜻일테니 수려한 청평사 일대는 고려선원의 옛터이자 국가명승 제70호.
고려시대 이자현은 37년간 청평사에 머물면서 아름다운 주변 계곡에 암자와 정자, 연못 등을 만들어 고려선원(高麗禪園) 을 가꾸었습니다.
구송폭포를 비롯한 많은 폭포들과 소, 반석, 기암괴석 등이 계곡을 수놓고 있으며 자연 그대로 보존된 선동과 서천계곡, 이들을 에워싼 부용봉의 바위들이 청평사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데요.
또한 고려 초기에 건립된 3층석탑, 이자현이 조선한 영지, 한국서예사에 빛나는 문수원기비와 시장경비, 사찰 주변의 노란 매화군락지, 조선시대 스님들의 사리를 안치한 부도, 비를 기원하던 기우단터, 하늘에 제사지내던 천단과 제석단터, 공주설화가 전해지는 회전문 등은고려선원의 풍부한 인문자원입니다.
진락공 이자현 부도로 추정되는 고부도.
이자현(李資玄, 1061~1125)은 고려시대 왕실외척의 권문세가 출신으로 이곳에 은둔처를 마련하면서 원래 경운산을 청평산(淸平山)으로 고쳐 불렀고 문수보살의 지혜로 불법을 깨달은 도량이라는 뜻으로 보현원을 문수원(文殊院)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는 37년간 청평골에서 은거하면서 절 밖으로 범위를 넓혀 암자, 당, 정자 등을 짓고 철저하게 참선과 수행을 하여 후대에 귀감이 된바 있으며
인종 3년(1125) 이자현이 입적하자 진락공(眞樂公)이란 시호가 내려졌고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가 '문수원기비' 입니다.
이자현이 문수원을 조성할때 만든 연못인 영지(影池).
한국 전통연못의 원형을 지닌 보기드문 사례로 이자현 이후 조선시대에 보우에 의해 수리되기도.
영지 아래에 있는 바위에 암각문이 있지만 푸른 이끼가 끼어 확인 불가상태.
부용봉(오봉산) 견성암의 그림자가 연못에 비추었다고 하여 붙여진 영지.
얼마나 많은 신자들과 시인묵객들이 이 길을 걸었을까요!
드디어 고려때 창건된 고찰 청평사(淸平寺).
나옹화상이 머물고 매월당 김시습이 은거하였던 고찰인데 오봉산 아래에 자리한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일제강점기와 잦은 전란을 거치면서 법당이 대부분 소실된채 1980년대까지만 해도 회전문과 대웅전 등만 남은채 빈터로 초라하게 있었지요.
1990년대 들어 대대적인 복원공사로 옛 모습을 되찾은 청평사.
40년 전인 1985년 3월에 방문한 청평사 - 본인 자료사진
6.25 사변때 소실된후 당시는 회전문과 복원한 극락보전만 남은채 쓸쓸한 폐사지였지요.
* 보물 제 164호인 청ㅍ여사 회전문(廻轉門).
1555년경 보우대사가 청평사를 중창할때 세운 주심포계의 익공건물로 조선 전기에 세워진 매우 중요한 건축물.
청평사의 정문으로 중앙으로 출입하고 양쪽에는 사천왕상이 조성되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많이 변형되어 옛 모습을 상상하기가 어렵게 되었네요.
청평사 창건설화인 공주설화와 연계하여 윤회를 한다는 의미로 회전문이라고 부른다고.
문 안 윗쪽에 홍살을 설치하여 홍살문의 기능도 하도록 한 회전문 .
양쪽에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회전문.
좌우의 한칸씩에는 사천왕상을 세웠을 것으로 추정.
회전문을 들어서면 경운루(慶雲樓).
2층 루각으로 회전문처럼 양쪽에 회랑을 둔 경운루.
화려히기도 늠름하기도 하며 조선시대에는 강선루라고 하였으나 복원하면서 경운루로 바꾸었다고.
경운루의 옆 모습으로 대웅전 앞 회랑에서 목교로 연결되어 출입.
사찰건물치고는 무척 화려하여 어리둥절한 느낌.ㅎㅎ
경운루를 지나 계단을 올라서면 대웅전 영역.
대웅전 좌우에 관음전, 나한전이 옹색하게 몰려 있는 모습.
청평사 대웅보전.
조선시대에는능인보전(能仁寶殿)이라고 했으며 폐사지로 있다가 1990년대에 복원된 법당으로 뒷편의 극락보전과 유사한 모습.
대웅전에 오르는 대형계단과 양편의 소맷돌은 옛 모습 그대로.
소맷돌에는 태극문양과 연화문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양주 회암사와 비슷한데 특히 태극문양은 왕실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신 대웅전.
청평사 관음전.
나한전과 같은 모습으로 전면에 1칸의 퇴간을 둔 특이한 모습.
관음전에 안치되어 있는 관음상.
부처님의 16제자를 모신 나한전.
나한전 실내모습.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대웅전의 옆면.
대웅보전 뒷편의 극락보전과 삼성각.
극락보전은 회전문과 함께 보우대사에 의해 1555년경에 지어졌는데요.
당시 극락보전은 최고의 기술로 지었기에 궁궐 못지않게 화려하여 국보로 지정되기도.
역사 깊은 극락보전은 1950년 초, 방화로 소실된후 국보에서 해제되었다가 1977년 다시 건축된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요.흑흑~!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1977년 공철스님에 의해 폐사지에 복원된 극락보전.
고려시대 양식이 확인되는 극락보전의 원래 모습.
지금은 볼수없는 앞마루가 있었으나 기둥의 주련이 보이지 않는 등 복원된 현재와는 조금 다른 모습입니다.
아직도 불탄 흔적이 검게 남아있는 극락보전의 기단석.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신 극락보전.
극락보전 앞 주목.
나이가 550년이나 되었으니 청평사의 부침을 말없이 지켜본 믿음직한 고목입니다.
극락보전 옆 삼성각.
극락보전에서 바라본 청평사.
다시는 역사 깊은 고찰 청평사에 전란의 피해가 없기를 기원합니다.
청평사 제1마당에 복원한 청평산문수원기비(淸平山文殊院記碑).
고려 인종 8년(1130) 이자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문수원 창건과 중창, 이자현의 은거와 수도과정, 행적을 기록한 사적비였으나 파손되어 2008년에 다시 세운 비석.
절 앞 마당에 남아있는 청평산 문수사시장경비(文殊寺施藏經婢) 비좌.
고려말 원나라에서 청평사에 보내온 대장경과 후원금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비석이었으나 1800년대에 비석은 훼손되고 받침돌로 썼던 비좌만 남은 실정.
오봉산은 언제 다시 오르리요!
40년 전인 1985년에 배후령에서 오봉산을 거쳐 청평사로 내려온 적이 있었지만 금년 가을엔 이자현의 고려선원 자취를 찾아 다시 오봉산을 오르려고 합니다.
오봉산에서 흘러내리는 시원하고 아름다운 서천(西川).
서천의 물줄기가 암반 위를 흐르며 절묘한 풍경을 자아냅니다.
서천의 윗쪽 계곡에 이자현이 은거하던 식암터 세수터, 청평선동 각자, 청평식암 각자 등이 있지만 탐방은 다음 기회로.
세차게 쏟아지는 와료담폭포는 당 태종의 딸, 평양공주가 목욕하였다는 공주탕.
서천의 이자현 유적지 탐방은 후일을 기약한채 귀가할 때는 환희령 옛길을 걷기로.
개울 건너편에서 만난 3층석탑으로 절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숲속에 있는데요.
옛길인 환희령의 암반 위에 세워진 고려시대의 탑으로 공주설화와 관련지어 공주탑으로 부르기도.
3층석탑 앞의 암벽에 새겨진 바위글씨.
험한 환희령 고개를 넘어가는 옛길.
고개를 내려가면 구송폭포가 나오고 폭포 아래에서 징검다리로 개을을 건너 다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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