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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윤선도의 고택인 해남 녹우당(綠雨堂)을 찾다강바람의 국내여행 2026. 4. 6. 14:41
2026.4/2(목) 해남 녹우당(綠雨堂)을 찾았습니다.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위치한 녹우당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고산 윤선도(尹善道,1587~1671)의 고택으로 그 일원은 사적 제167호인데요.
고산의 4대 조부인 어초은 윤효정(尹孝貞, 1476~1543)이 연동에 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로서 600년 전통을 이어온 해남윤씨 어초은공파 종가인 녹우당은 덕음산을 뒤로 한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자리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회화나무가 서있고 그 안쪽으로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 형으로 구성되고 행랑채가 갖추어져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형식을 잘 나타내고 있지요.
현재 고산유적지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말해주는 은행나무와 비자림, 사랑채인 녹우당, 안채, 행랑채, 헛간, 안사당, 고산사당, 어초은사당, 추원당, 고산윤선도박물관이 있으며 집 뒷편의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은 약 500년 전에 조성된 것으로 4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는데요.
고산 윤선도박물관은 해남윤씨 어초은공파의 역사와 유물이 전시된 공간으로 위대한 시인이자 강직한 정치가였던 고산 윤선도와 자화상으로 대표되는 예술작품을 남긴 공제 윤두서(尹斗緖)의 체취를 느낄수 있는 공간입니다.
한편 윤두서의 외증손인 정약용은 강진에 귀양와 있던 시절, 녹우당에 소장되어 있던 많은 책들을 가져다 보았다고 합니다.
녹우당을 잘 관리하느라 노고가 크신 후손들과 관계 당국에 깊히 감사드립니다.

덕음산을 바라보며 고산 윤선도의 고택인 녹우당을 찾아 갑니다.

녹우당 입구에 있는 연지.
해송이 둘러싸여 있어 제법 운치있는 연못으로 녹우당의 바깥정원 역할을 한다고.

오호, 해남윤씨의 녹우당 고택~!
항상 그리워 눈에 아른거리곤 했는데 20여년 만에 다시 찾으니 감동이네요.

'고산 윤선도유적지'로 명칭이 바뀌었나 봅니다.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위치한 녹우당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고산 윤선도(尹善道,1587~1671)의 고택으로 그 일원은 사적 제16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고산 윤선도박물관은 해남윤씨 어초은공파의 역사와 유물이 전시된 공간으로 위대한 시인이자 강직한 정치가였던 고산 윤선도와 자화상으로 대표되는 예술작품을 남긴 공제 윤두서의 체취를 느낄수 있는 공간입니다.

녹우당은 고산의 4대 조부인 어초은 윤효정(尹孝貞, 1476~1543)이 연동에 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
600년 전통을 이어온 해남윤씨 어초은공파 종가인 녹우당은 덕음산을 뒤로 한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자리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백꽃이 한창인 녹우당 앞.

녹우당의 상징인 은행나무 고목.
이곳에 터를 잡은 윤효정이 아들의 과거합격을 기념하여 심었다는 말이 전해지는데요.
나이가 500년 가량 되고 키가 30m도 넘는 큰 나무로 대문 앞에 서서 내방객을 반겨주는 모습입니다.

은행나무 옆의 녹우당 사랑채 솟을대문.
녹우당은 전라남도에 있는 민가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ㅁ자형 고택으로 안채와 사랑채, 고산사당, 어초은사당, 추원당 등을 품은 해남윤씨 종택입니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400여년 된 회화나무 보호수.
회화나무는 서원이나 향교 등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에 심곤하는데 많은 문인, 학자들을 배출한 녹우당의 기품을 높여주고 있네요.

사랑채인 녹우당.
집 전체를 녹우당이라고 하지만 원래는 사랑채를 녹우당이라고 하며 집 뒷편의 비자숲이 바람에 흔들릴때마다 쏴하며 푸른 비가 내리는듯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사랑채 앞에 덧붙여 달아낸 차양 모양의 특이한 모습.
유사한 모습을 창덕궁 연경당의 선향재와 강릉 선교장의 열화당에서도 볼수 있는데요.
서향을 향하고 있기에 지는 햇빛을 가리거나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달아낸 건축물로 보입니다.

녹우당 사랑채는 효종이 사부였던 윤선도에게 내려준 수원에 있던 집이었는데 사후 현종 9년(1668) 해상운송하여 이곳으로 옮긴 것이며 전남 지방에 현존하는 양반주택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녹우당 사랑채에 걸린 현판들.
녹우당 현판은 윤선도의 벗이자 동국진체 글씨의 원조로 일컬어지는 옥동 이서의 글씨이며
운업(芸業)은 누구의 글씨인지는 모르나 '꽃이 성하도록 힘쓴다' 라는 의미라고

녹우당 사랑채 앞마당에 있는 작은 연못과 향나무.
마당에 있는 유일한 초가집은 화장실 용도인듯.

사랑채 옆으로 안채로 출입하는 통로.

사랑채 뒷편에 있는 우아한 모습의 안채.
근래까지 윤선도의 후손이 살고 계셨는데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원래 ㄷ자형인 안채이지만 사랑채를 덧붙인 독특한 ㅁ자형 구조.
안채는 서쪽으로 중앙에 3칸 대청을 두고 좌우 아래로 방과 부엌, 창고 등을 적절히 배치한 모습입니다.

안채에서 바라본 화단과 사랑채.
마당은 좁은 편이지만 예쁜 굴뚝과 여러 꽃을 심은 화단을 조성하여 여성들의 기호에 맞게 갖추었네요.

안채 부엌 지붕 위에 설치한 솟을지붕(덧지붕)은 연기가 빠져나가는 환기 용도라고.
송광사에도 지붕 위에 있는 솟을지붕을 볼수 있는데 민가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이지요.

안채에 걸린 일로향실(一爐香室) 현판.
추사가 제주도 유배중에 차를 보내주는 초의 스님의 성의에 고마운 뜻을 전하기 위해 제자 소치의 인편으로 이 글씨를 써서 보냈다고 하는데 일로향실은 차를 끓이는 다로(茶爐)의 향이 향기롭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후원에서 바라본 안채와 솟을지붕.
고택의 품격을 높여주는 참으로 멋스러런 모습이네요.
안채에서 또 부엌에서 후원으로 통하는 문이 있는 여성들의 살림공간으로 우물이 있고 꽃도 가꾸는 공간입니다.

양반주택의 환기용 솟을지붕이 참으로 우아하고 멋스럽네요.

담장 밖의 멋진 노송 뒷편으로 윤선도를 모신 고산사당과 윤효정을 모신 어초은사당은 현재 보수공사중.

백련동(현 연동리)에 처음 터를 잡고 해남윤씨를 중흥시킨 어초은 윤효정의 사당
모두 불천위(不薦位) 사당으로 4대가 지나도 계속 제사를 모시며 국가나 유림에서 지정하므로 가문의 영광이지요.

덕음산의 바위가 드러나면 않된다는 윤효정의 유훈에 따라 후손들이 조성하고 잘 지켜낸 비자나무숲.
비자나무숲을 꼭 보아야 하지만 오늘도 시간에 쫓겨 포기할수 밖에.흑흑~!

녹우당 뒷편 숲속에 있는 어초은 윤효정 묘소.
해남윤씨 문중을 명문가의 반열에 올려놓고 세 아들을 과거에 합격시킨 어초은공파의 시조입니다.

고택의 돌담길을 따라 한적하고 예쁜 길을 걷자니,

녹우당 뒷편의 숲속에서 만난 추원당(追遠堂).
추원당은 이곳 백련동에 처음 터를 잡은 어초은 윤효정(1476~1543)의 제각으로 추원(追遠)은 돌아가신 조상이나 부모를 추모하고 숭배함을 뜻한다고.

1935년 지은 추원당은 사당에 까지 차양시설을 덧달은 모습.

녹우당 뒷편의 대숲길을 걷고,

둥그렇게 한바퀴 돌며 멋진 솔밭길도 걸으니,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를 주제로 지난해 조성된 오우가정원.

고산 오우가정원은 약 2,000평 규모로 오우가에 나오는 다섯가지 벗인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을 주제로 한 한국전통정원으로 조성.
특히 사모정에서 고산 선생이 산중신곡 등 작품활동을 했던 금쇄동을 바라보는 조망이 일품입니다.

꿈같은 녹우당 답사를 마치고 다시 만난 푸른 보리밭.

해남에서 벼르고 찾아간 천일식당.
남도를 찾아 유적답사를 하려니 체력소모가 워낙 커서 잘 먹어야겠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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