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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두륜산 대흥사(大興寺)를 찾다강바람의 국내여행 2026. 4. 9. 10:26
2026.4.2(목) 실로 오랜만에 해남 두륜산 대흥사를 찾았습니다.
대흥사는 우리 국토의 최남단의 두륜산(頭崙山)에 자리한 사찰로서 두륜봉(630m), 가련봉(703m), 노승봉(685m), 고계봉(638m), 향로봉(469m), 혈망봉(379m), 연화봉(613m), 도솔봉(672m)이 대흥사를 원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데요.
백제때 창건되어 대둔사(大芚寺) 혹은 한듬절로 불리었으나 근래 대흥사(大興寺)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일찌기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으로 만년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이라 하여 그의 의발(衣鉢)을 이곳에 보관토록 한바 있으며 서산대사의 법맥을 지은 13대 종사와 13대 강사가 배출되면서 대흥사는 호국사찰로 거듭난바 있지요.
1789년에는 정조대왕이 서산대사의 충절을 널리 알리고자 경내에 표충사를 짓게 하고 편액을 직접 써서 하사했습니다.
2018년에는 자연과 조화된 건축미와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점이 감안되어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대흥사는 금당천 물길을 따라 십리숲길을 걸어 오르는 길이 일품인데요.
도중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이라는 정겨운 모습의 유선여관을 만날수 있어 영화 서편제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낮은 담장에 둘러싸인 부도밭이 나타나는데 서산대사의 부도를 비롯하여 초의선사, 혜장선사 등 역대 종사와 강사의 부도 50여기와 14기의 부도비가 모여 있지요.
사찰 경내는 북원, 남원, 별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북원에는 대웅보전과 침계루, 백설당, 삼층석탑 등이 있고 남원에는 천불전과 용화당, 적묵당 등이 있으며 별원에는 표충사, 대광명전, 성보박물관 등이 있으며 최근 호국대전을 건립한바 있고
그외에 응진전 앞 3층석탑,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과 3층석탑, 서산대사 부도 등의 성보문화재가 있습니다.

구림리 장춘동 십리숲길을 걸어 대흥사를 찾아 갑니다.

두륜산의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대흥사 가는 길.

대흥사 가는 길은 온통 싱그러운 동백숲 천지.

오호, 추억이 서린 유선여관~!
유선여관(遊仙旅館)은 1914년에 건립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이라고 하는데요.
원래는 대흥사를 찾는 수도승이나 신도들이 머무는 객사(客舍)였다가 1970년대 초, 유선여관 이름으로 영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유선여관이 잘 보존되어 있음은 퍽 다행스러운 일인데 최근 앞쪽에 카페를 짓고 그쪽으로 출입하면서 옛날 길가에 정문으로 쓰던 곳은 막아 놓았네요.

33년전인 1993년 4월, 유선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대흥사를 거쳐 두륜산까지 등정하려니 누렁이 진돗개가 따라나서 길 안내를 해준 추억이 있지요.
지금은 영물이던 누렁이를 볼수조차 없을만큼 세월이 흘렀으니 너무나 그립고 아쉽기만 합니다.

북미륵암에서 찍은 1993년 당시의 누렁이(본인 자료사진).
그 당시 젖먹이 새끼가 대여섯마리나 있었는데 두륜산에 가는 내 앞을 서성이며 길 안내를 하는거예요.
대흥사를 답사하는 시간엔 어디에선가 기다리고 있었구요.
처음에는 개가 길 안내를 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지요.

두륜산에서 포즈를 취해준 유선여관 진돗개.
대흥사, 북미륵암을 경유하여 두륜산까지 왕복하는 약 4시간 여동안 끝까지 안내하다가 유선여관에 가깝자 갑자기 새끼가 생각난듯 급히 뛰어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여관에 돌아와 주인장에게 누렁이 얘기를 하니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꼭 길 안내를 한다고 하더군요.

싱그러운 일주문 가는 길.

일주문을 들어서면 나타나는 대흥사 부도밭.
전국에서 가장 크고 아름답다고 하는데 낮은 담장에 둘러싸인 어마어마한 규모라 놀랄 정도.

서산대사의 부도를 비롯하여 초의선사, 혜장선사 등 역대 종사와 강사의 부도 50여기와 14기의 부도비가 모여 있지요.

반야교를 건너면,

두륜산대흥사(頭崙山大興寺) 편액이 달린 해탈문.

오호, 두륜산 아래에 포근하게 자리한 대흥사~!
해탈문을 들어서면 눈 앞에 펼쳐지는 두륜산 연봉에서 누워계신 부처님을 뵐수 있는데요.
대흥사는 두륜산에서 흘러내리는 금당천을 경계로 대웅보전이 있는 북원, 천불전이 있는 남원, 남원 뒷편으로 떨어져 서산대사 사당인 표충사 구역과 대광명전 구역으로 나뉩니다.

북원으로 들어가며 보는 500년 된 느티나무 고목.
뿌리가 붙은 연리근으로 부부와 연인의 사랑을 기원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더군요.

대흥사 대웅보전이 있는 북원 구역.

금당천 삼진교를 건너면 침계루, 대웅보전, 백설당.
북원의 건물들은 고종 광무3년(1899)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지은 건물들로 역사는 길지 않지만 고색창연한 분위기.

삼진교 앞 향나무 고목.

침계루 아래를 걸어 들어서면 마주치는 대웅보전.
북원의 중심건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당당한 팔작다포집으로 고종 광무3년(1899)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지은 건물.

대웅보전 현판은 원교 이광사(1705~1777)의 글씨.
인근 신지도에 유배왔다가 썼는데 원교 특유의 필법이 잘 드러나 있지요.
헌종 6년(1840)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 귀양가면서 초의선사를 만나러 대흥사에 들렸을때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 현판이 촌스럽다며 떼어내도록 했다가 귀양살이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대흥사에 들르게 되자 이광사의 현판을 다시 걸도록 했다고.
8년간의 귀양살이가 추사의 인생관을 바뀌게 했나 봅니다.ㅎㅎ

대웅보전에 안치된 목조삼존불.

대웅보전 좌측의 승방인 백설당(白雪堂).

백설당에 걸린 무량수각(무량수각) 현판.
무량수각 현판은 헌종 6년(1840)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귀양가면서 써주고 간 글씨.

대흥사 응진전 앞 3층석탑(보물).
높이 4.3m의 단아한 통일신라 때의 3층석탑으로 대흥사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입니다.

북원을 나서 찾은 남원의 가허루(駕虛樓).

천불전의 정문으로 가허루 현판은 호남의 명필 창암 이삼만(蒼巖 李三晩, 1770~1845)의 글씨.

순조 11년(1811) 화재로 다시 재건된 천불전(千佛殿).
정면, 측면이 모두 3칸으로 무척 경쾌한 모습으로 현판 양편의 용머리 장식과 분합문살을 가득 메운 꽃문양이 화려합니다.
천불전에서 우측으로 보이는 울타리는 용화당(龍華堂) 해체보수공사 현장.

천불전 현판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

불단 중앙에 목조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그 주위에 옥돌로 만든 불상 천개가 빽빽하게 자리한 천불전.

석공 10명이 6년이나 걸려 만들었는데 배 세 척에 나누어 싣고 오다가 그중 한 척이 풍랑으로 표류하다가 일본 나가사키현으로 흘러간 일이 있었지만 무사히 찾아 왔다고.
이리하여 천불이 모두 돌아와 봉안된 때는 순조 18년(1818).

용머리 장식에 고색창연한 천불전 천장 모습.

동백꽃이 한창인 적묵당 앞.

좌우에 선방을 거느린 남원의 적묵당(寂默堂).
북원과 달리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이며 두륜산을 품에 안은 모습이 너무나 고고해 보입니다.
한편 적묵당 앞의 수령 350년 된 대흥매는 초의선사가 심었다고 하는데 기품있는 백매화가 필때면 아는 사람만 조용한 발길이 이어지곤 하지요.

남원 뒷편으로 새로이 건립한 웅장한 호국대전(護國大殿).
목조 불교건물로는 국내 최대라고 하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선열을 기리는 제단을 마련할 계획으로 이미 건물은 2024년 준공되었지만 현재 개관을 위해 내부 장엄중.
계단을 올라서니 건물만 준공된채 조경은 손도 못대고 주변 정비마져 아직 마무리가 않된 모습.

절 규모가 워낙 커서 세세하게 답사하려니 인내심의 한계에 봉착.ㅎㅎ
한편 문재인 전 대통령이 50년 전에 사법고시 공부를 하던 곳이 대광명전 안의 동국선원이라고.

가련봉, 두륜봉, 북미륵암, 일지암이 지척이건만 시간관계상 도저히 불가능하니 눈물만 흑흑~!
1993년 누렁이의 안내로 올랐던 북미륵암, 만일암터, 가련봉 등이 눈에 아른거리네요.

다음 방문지는 서산대사 휴정(1520~1604) 스님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당인 표충사(表忠祠).
일반 절에서는 보기 어려운 사당 형식으로 임진왜란때 승병대장으로 활약한 휴정과 제자 유정, 처영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건물은 1788년(정조 12) 처음 건립되었으며 정조가 직접 써서 내렸다는 표충사 편액.

표충사 중앙에 모신 서산대사 휴정, 좌우에 사명당 유정, 뇌묵당 처영의 화상.
서산대사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팔도도총섭이 되어 5천여 명의 의승병을 이끌고 평양성을 탈환하는데 큰 공을 세운 분입니다.

서서히 녹음이 짙어가는 대흥사 북쪽의 고계봉(638m) 능선.

멋스러운 바위를 보며 하산 하는 길.

너른 마당 한켠에 있는 무염지(無染池).
남원 앞의 너른 터에는 과거 여러 건물이 있었지만 모두 사라지고 초의선사가 만들었다는 무염지만 남아 있는 실정.

동백숲에서 잠시 남도여행의 피로를 풀며 대흥사 답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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