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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윤선도 원림(尹善道 園林)을 가다강바람의 국내여행 2026. 4. 9. 11:54
2026.4/3(금) 전남 완도군 보길도에 위치한 윤선도 원림(명승 제34호)을 찾았습니다.
보길도는 완도군에 딸린 섬으로 고산 윤선도의 문학과 삶이 어린 유적이 있어 유명하며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하는데요.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1587~1671)는 조선 중기의 시인, 문신, 정치인이자 음악가로 정철, 박인로와 함께 조선의 3대 시가인(詩歌人)으로 손꼽히는데요.
병자호란때인 1637년 해남에서 제주도로 가던 고산은 상록수가 우거져 아름다운 보길도를 발견하고 이곳에 별유천지 낙원을 조성했습니다.
난세에도 아랑곳없이 해남과 보길도를 오가며 많은 민초를 동원하여 여러채의 집을 짓고 정원을 꾸몄으니 어찌보면 어이도 없고 이해할수 없는 일이기도 하나 13년을 오가며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등 시가를 창작한 국문학의 산실로 만들었으니 그 의미가 무척 남다르네요.
당쟁이 심했던 시절, 봉림대군의 사부였던 고산은 꼬장꼬장한 성격 때문에 20년이나 유배생활을 하면서 해남 금쇄동, 보길도 부용동정원에서 자연에 묻혀 오랜 세월 살았는데 이때 울적함을 달래고자 보길도를 배경으로 지은 시조가 유명한 '어부사시사' 입니다.
부용동정원은 놀이공간인 세연정(洗然亭), 생활공간인 낙서재(樂書齋), 휴식공간인 동천석실(洞天石室)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보길초교 옆에 위치한 세연정은 부용동정원에서 가장 공을 들여 만든 공간으로 원형이 잘 남아 있으며 근래 윤선도 원림으로 명칭이 바뀌었네요.
자연의 계류를 돌둑(판석보)으로 막아 연못인 세연지(洗然池)를 만들고 다시 그 물을 끌어들여 인공연못인 회수담을 만든후 두 연못 사이의 인공섬에 세연정을 놓아 주변의 다양한 공간을 누릴수 있게 하였지요.
정자 동쪽에는 동대와 서대가 있는데 예전 무희가 춤을 추고 악사가 풍악을 울리던 곳이라고 합니다.
기기묘묘한 자연석이 물에 잠겨 있는 칠암(七岩) 풍경은 한 마디로 별유천지를 방불케 하는데 주변의 울창한 동백숲은 붉게 물들어 더욱 황홀한 모습을 연출합니다.
금번 보길도 방문은 시간관계상 세세히 살피지는 못했지만 세연정 건너편 산에 우뚝 솟아 있는 하얀색 바위인 옥소대(玉蕭臺)에 오른 일이 가장 기억에 새롭네요.
옥소대 위에서 고산은 잔잔한 앞 바다를 바라보며 어부사시사를 노래했겠지요.
보길도를 처음 밟은 해는1993년~!
해남 땅끝에서 배를 타고 노화도에 들어가 다시 배를 타고 보길도에 갔던 추억이 엊그제 같은데 어언 33년이나 세월이 흘렀네요.
그때 세연정을 막 복원준공하여 새 집처럼 보였고 흙먼지를 날리면서 시골길을 달리며 낙서재터, 동천석실을 찾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다리도 놓이고 도로도 모두 포장되는 등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변했더군요.
그 당시 낙저재가 터만 있었는데 복원되었다고 하며 동천석실도 아래에서 올려다 보니 낯선 건물이 한 동 더 들어서 두 동이 되어 있었으나 시간관계상 찾지 못한 아쉬움이 큽니다.
그런데 바짝 붙어있는 보길초교때문에 윤선도 원림이 다소 옹색해 보이는데 옛날에는 학교터도 원림에 속해있던 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부질없는 얘기이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보길초교를 가까운 곳으로 이전하고 전체적인 복원을 검토했으면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보길도에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해남 땅끝을 찾았습니다.

해남 땅끝의 바닷가는 봄기운이 완연하네요.
남녘이라 예쁜 꽃들이 한창~!

배를 타기 전에 해안데크길을 걸어 찾은 땅끝탑.
"여기는 땅끝, 한반도의 시작"이요 남해와 서해로 갈라지는 경계점이지요.

마침 노화도행 배가 땅끝항으로 들어오네요.

해남 땅끝선착장에서 승용차를 싣고 노화도로 출발하는 드림 장보고호.

오호, 한반도의 최남단인 땅끝(土末).
오랜만에 바라보는 땅끝이라 감격스럽네요.

배에서 바라본 땅끝마을이자 포구.
이곳도 오랜만에 와보니 너무 많이 변하고 발전했네요.

그때도 땅끝에서 노화도행 배를 탔었는데 오늘 33년만에 다시 타니 감격스럽습니다.ㅎㅎ
보길도에 직접 들어가는 배는 없고 노화도에서 내려 승용차편으로 보길도로 들어가게 되지요.

땅끝에서 출발, 힘차게 달려 30분 만에 노화도 산양진항에 도착.

승용차로 노화도를 달리며 바라본 정겨운 농촌 풍경.
노화도(蘆花島)는 갈대가 많고 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붙여진 이름으로 완도에서 14.5km 떨어져 있고 전복이 많이 생산되어 전국 생산량의 42%나 된다고.
전복 생산 외에도 의외로 농경지가 넓어 농업인구도 많다고 합니다.

노화도를 횡단하여 이목항에 서니 바로 앞에 바라보이는 보길도.
보이는 곳은 보길면소재지인데 예전보다 놀랄 정도로 마을이 무척 커졌습니다.

노화도에서 보길도로 가는 교량인 보길대교.
옛날엔 이곳 이목항에서 다시 배를 타고 보길도로 건너 갔었지만 먼 옛 얘기가 되고 말았네요.ㅎㅎ

노화도와 보길도를 연결하는 보길대교.
2008년에 완공되어 길이가 620m인데 2개의 다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노화도~장사도까지 440m, 장사도에서 보길도까지 180m.

보길도에 들어가 보길초교 앞을 지나니,

오호, 못보던 건물이 들어섰네요.
윤선도문학관과 정보센터, 매표소, 관리사무소.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의 부용동정원을 비롯하여 경관도 좋고 문화유적도 많은 무척 아름다운 섬인지요.
1박을 하며 세세하게 둘러보아야 하지만 시간관계상 몇시간만 머물러야 하니 아쉬움을 참고 세연정 일대만 탐방하기로.

세연정을 중심으로 세연지, 회수담, 동대, 서대, 판석보, 옥소대 등으로 구성된 윤선도 원림.
옛날엔 세연정이라고 했는데 명승 제34호 '보길도 윤선도 원림'으로 이름이 바뀌었네요.

윤선도 원림은 병자호란때 해남에서 제주도로 피난가던 고산 윤선도가 상록수가 우거져 아름다운 보길도를 발견하고 이곳에 별유천지 낙원을 조성한 역사가 있습니다.
터만 남아있던 세연정 일대를 후손들의 노력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무척 다행스러운 일.

보길초교 옆에 위치한 세연정은 부용동정원에서 가장 공을 들여 만든 공간으로 원형이 잘 남아 있는데요.
자연의 계류를 돌둑(판석보)으로 막아 연못인 세연지(洗然池)를 만들고 다시 그 물을 끌어들여 인공연못인 회수담을 만든후 두 연못 사이의 인공섬에 세연정을 놓아 주변의 다양한 공간을 누릴수 있게 하였지요.

오호, 보길도는 동백꽃이 아직도 화사합니다.
예쁜 동백꽃을 볼수 있으니 때맞추어 잘 온것 같네요.ㅎㅎ

오호, 윤선도 원림~!
기기묘묘한 자연석이 물에 잠겨 있는 세연정 일대의 칠암(七岩) 풍경은 한 마디로 별유천지를 방불케 하는데 주변의 울창한 동백숲은 붉게 물들어 더욱 황홀한 모습.
세연지에는 칠암이 있어 물과 조화로운 경관을 빚어내며 물의 흐름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고 하네요.
본래부터 있던 바위도 있겠고 다른 곳에서 옮겨온 바위도 있겠으니 아름다운 연못을 꾸미기 위해 불철주야 노고가 컷을 고산을 생각해 봅니다.

세연정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세연지 풍경.
개울에 보를 막아 조성한 세연지는 물과 바위와 송죽과 정자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인데요.
세연정 앞 동대와 서대, 서쪽 산 중턱의 옥소대까지 끌어들여 거대하고 입체적인 무대를 만들어낸 고산의 섬세하고 기발한 조원 기법이 드러나는 곳이지요.
고산은 이곳에서 예악(禮樂)으로 성정을 다스리며 자연과의 합일에 이르고자 하였습니다.

오호, 세연정( 洗然亭)~!
세연(洗然)이란 주변 경관이 물에 씼은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란 뜻이라는데요.
세연지 중앙에 자리한 세연정은 일반 누각과 달리 가운데 온돌방을 두고 사방으로 창호와 마루를 둘렀으며 창호는 분합문으로 문을 들어올리면 사방이 개방되어 주변의 풍경을 즐길수 있게 되어 있지요.

비홍교(飛虹橋)를 건너면 세연정.
처음 방문했던 1993년이 막 세연정을 복원했을 무렵인데 이제 세월의 때가 묻어 자연스런 모습이 되었네요.
고산은 이곳의 지형이 마치 연꽃 봉오리가 터져 피는 듯하여 부용(芙蓉)이라 이름지었습니다.

세연지 건너편에 있는 네모난 형태의 회수담(回水潭).
회수담 안에 있는 작은 섬과 옆에있는 네모난 무도암(舞跳岩)에서 예악을 즐기며 시를 읊었다고.
난세에도 아랑곳없이 해남과 보길도를 오가며 많은 민초를 동원하여 여러채의 집을 짓고 정원을 꾸몄으니 어찌보면 어이도 없고 이해할수 없는 일이기도.ㅎㅎ

세연지 안에 작은 인공섬이 있고 크고작은 바위가 골고루 배치되어 선경을 이루는 모습.

세연정 중앙에 자리한 세연정은 일반 누각과 달리 가운데 온돌방을 두고 사방으로 창호와 마루를 둘렀으며 창호는 분합문으로 문을 들어올리면 사방이 개방되어 주변의 풍경을 즐길수 있게 되어 있지요.

세연정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세연지.

세연지 칠암중에 사투암(射投岩)은 옥소대를 향해 활을 쏠때 받침돌이 되었으며 또한 고산이 이 바위 위에 누워 아직 뜻을 펴지못한 와룡의 심정으로 시가를 읊었다고.

세연정에서 바라본 동대(東臺).
춤과 노래를 하던 공간으로 하루라도 음악이 없으면 세간의 걱정을 잊을수가 없었다고 하니 이는 단순한 유흥이나 놀이가 아니라 악(樂)을 통해 예(禮)를 닦는 예악(禮樂)이었습니다.

역시 춤과 노래를 하던 서대(西臺)로 춤을 추며 도는 나선형 구조로 되어 있는 모습.

동대에서 바라본 세연정.
세연지와 회수담을 굽어보는 참으로 늠름하고 멋진 정자로 손색이 없네요.

세연지의 물을 가두는 판석보(板石洑).
우리나라 조원유적중 유일한 석조보로 자연암반 위로 점판암을 마주하여 견고하게 세우고 그 위에 뚜껑돌을 덮은 모습이며 세연정에 불을 지피면 연기가 이곳을 통해 빠져나가게 되어 있어 굴뚝다리로 불리기도.
판석보는 수량이 적으면 돌다리가 되고 물이 넘치면 폭포가 되어 물이 빚는 또다른 경관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판석보에서 바라본 세연지와 세연정 그리고 건너편 산에 있는 동천석실도 보입니다.

옥소대를 찾아 산기슭을 올라갑니다.

세연정 건너편에 옥소대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요.
이렇게 크고 흰 바위가 있어 사투암에서 화살표적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제법 크고 탐스런 바위가 뽀얗게 서있는 옥소대.
동대, 서대와 더불어 일종의 상부 무대인 옥소대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세연지에 비친 그림자를 통해서 바라보며 자연과 합일하고자 하였다고.

옥소암에서 바라보이는 푸른 바다는 윤선도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가 태어날수 있었던 배경이지요.
춘하추동 각 10수씩 40수로 이루어진 어부사시사는 1651년(효종 2년) 지은 단가로 보길도의 아름다운 경치와 어부생활의 흥취를 통해 자연과 하나되어 살고자하는 열망을 담은 작품입니다.

옥소암에서 바라본 세연정과 보길초교.
바짝 붙어있는 보길초교때문에 윤선도 원림이 옹색해 보이는데 옛날에는 학교터도 원림에 속해있던 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부질없는 얘기이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보길초교를 가까운 곳으로 이전하고 전체적인 복원을 검토했으면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독립문처럼 생긴 옥소대 틈을 걸어 다시 세연정으로 내려 가는 길.

세연지 주위의 울창한 동백숲.
원림을 더욱 푸르고 화사하고 알차게 만드는 공신이네요.

오호, 서울에서 순수한 동백꽃은 보기 어려우니 실컷 음미하자구요~~^^

마침 야외수업 나온 보길초교 어린이들.

어린이들이 떨어진 동백꽃으로 예쁘게 정렬해 놓았네요.

오호, 말미잘같기도 하고 거북이 같기도 하고.ㅎㅎ

보길도에 들어갔다가 오후에 완도행 배를 타기 위해 도착한 노화도 동천항.

노화도 동천항 앞의 연륙교와 구도(鳩島).
비둘기를 닮아 구도라고 불리운다는데요.
섬은 작은데 연결교량은 규모가 무척 커서 주민에게 원인을 물어보니 노화도에서 구도를 지나 소안도까지 섬과 섬을 교량으로 연결하려는 계획이지만 현재 중단 상태라고.
여수, 고흥간을 연결하는 섬섬백리길처럼 조만간 이곳에도 백리길이 탄생할 전망입니다.

노화도 동천항에서 완도 화흥포항까지는 역시 30분 걸린다고.

아침에 들어갔다가 오후에 나오는 일정때문에 보길도의 세세한 부분까지 탐방하지 못함은 큰 아쉬움이네요.
조만간 다시 찾아야할 것 같습니다.'강바람의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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