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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을 다시 음미하다강바람의 국내여행 2026. 6. 15. 17:37
시내 나가는 길에 오랜만에 탑골공원을 찾았습니다.
탑골공원은 일제치하인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문 낭독과 독립만세를 외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1465년(세조 11) 세조는 고려때 있었던 흥복사(興福寺) 절터에 원각사(圓覺寺)를 건립하였으나 조선 연산군 이후 절을 폐지하여 폐허가 되었으나 1897년 국내 최초의 서구식 근대공원을 조성한바 있지요.
공원 조성 당시에는 파고다공원으로 명명하였으나 1991년 옛 지명을 따라 탑골공원으로 개칭한바 있습니다.
또한 약 50년 전으로 기억되는데 탑골공원 정비계획에 따라 서남쪽에 도로를 따라 줄지어 있던 점포(파고다아케이드?)들을 모두 이전시킨후 담장을 쌓아 지금의 모습이 된것으로 기억됩니다.
공원 안에는 국보인 원각사지 10층석탑, 보물인 대원각사비 등의 국가유산과 독립운동 봉화에 불을 당겼던 팔각정, 3.1운동 기념탑, 3.1운동 벽화,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 한용운 선생 기념비 등이 있습니다
탑골공원의 상징인 높이 12m의 원각사지 10층석탑은 원각사를 건립할 당시인 1467년(세조 13)에 세웠습니다.
원래는 13층으로 세워 분신사리와 새로 번역한 원각경을 모셔 두었다고 하며 亞자 모양의 기단은 세겹인데 아래에는 용과 연꽃같은 무늬를 새겼고, 중간에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일행이 인도에서 불법을 구해오는 과정을 새겼으며 위에는 부처님의 전생설화와 일생을 조각하였지요.
법회장면을 새긴 탑의 몸에는 현판, 용을 휘감은 기둥, 목조구조, 지붕을 두었는데 마치 하나의 건물과 같아 보입니다.
탑을 만든 재료는 흔치않은 대리석이며 유례를 찾을수 없을 정도로 우수한 조각솜씨를 자랑하고 있으나 대리석을 부식시키는 새똥과 산성비, 매연으로 부터 석탑을 지키기 위해 1998년에 유리보호각을 설치했으나 부식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하네요.
원각사지 대원각비(大圓覺寺碑)는 원각사와 원각사탑을 기념하여 1471(성종 2)에 세운 석비입니다.
석비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과 머릿돌과 하나로 이어진 몸돌 등 2개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불심이 강한 세조는 양주 회암사에서 분신(分身)한 사리를 보고 감동하여 흥복사터에 원각사를 짓고 석탑이 완성되자 전후 사정을 담은 비석을 만들어 세웠습니다.
상부에 새겨진 두 마리의 용 사이에 세로로 새긴 '대원각사지비(大圓覺寺之碑)는 강희맹의 서체로 알려져 있지요.
이렇게 원각사터에는 아름다운 10층석탑과 대원각사비가 남아 있어 오랜 역사를 단절없이 말해 주니 무척 다행스럽습니다.
탑골공원은 3.1운동이 시작된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지요.
1919년 3월 1일, 4~5천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탑골공원에 모여 12시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으며 여기서 시작된 만세시위는 전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팔각정은 1902년(광무 6)에 지은 팔각형 정자입니다.
의암 손병희(義菴 孫秉熙, 1861~1922) 선생은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 3.1 독립선언을 주도하신 분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었으나 1922년 후유증으로 순국하신바 있습니다.
선생은 동학 제3대 교조를 역임하고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 만세보 창간, 보성전문학교 등 전국에 30여 개의 학교를 인수, 민족교육 사업에도 헌신한바 있습니다.
오랜만에 탑골공원을 찾아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선조들의 넋을 되새겨 보고 원각사터의 10층석탑과 대원각사비 등 유적을 살펴보는 유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내 나가는 길에 오랜만에 탑골공원에 들렀습니다.

탑골공원은 조선시대 원각사라는 절이 있던 곳이었고 1919년 3.1운동이 시작된 곳이지요.

정문인 삼일문을 들어서면 먼저 맞이하는 큰 광장.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기미독립선언 기념물.
기념물 앞을 점령하고 있는 노인들 때문에 접근조차 쉽지않고 보기에도 않좋습니다.

'의암손병희선생상(義菴孫秉熙先生像)'이라고 새겨진 손병희 선생 동상.
손병희(1861~1922) 선생은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 3.1 독립선언을 주도하신 분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었으나 1922년 후유증으로 순국하신바 있습니다.

팔각정은 1902년(광무 6)에 지은 정자로 3.1운동이 시작된 곳이니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지요.
1919년 3월 1일, 4~5천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탑골공원에 모여 12시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으며 여기서 시작된 만세시위는 전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팔각정 옆에는 원각사지 대원각비(大圓覺寺碑) 비각.

보물 제2호였던 원각사지 대원각비(大圓覺寺碑)는 원각사와 원각사탑을 기념하여 1471(성종 2)에 세운 석비입니다.

석비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과 머릿돌과 하나로 이어진 몸돌 등 2개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불심이 강한 세조는 양주 회암사에서 분신(分身)한 사리를 보고 감동하여 흥복사터에 원각사를 짓고 석탑이 완성되자 전후 사정을 담은 비석을 만들어 세웠습니다.

상부에 새겨진 두 마리의 용 사이에 세로로 새긴 '대원각사지비(大圓覺寺之碑)는 강희맹의 서체로 알려져 있지요.
이렇게 원각사터에는 아름다운 10층석탑과 대원각사비가 남아 있어 오랜 역사를 단절없이 말해 줍니다.

탑골공원의 상징인 국보 제2호, 원각사지 10층석탑.
높이 12m의 원각사지 10층석탑은 원각사를 건립할 당시인 1467년(세조 13)에 세웠는데 조각솜씨가 뛰어난 대리석 석탑으로 고려시대에 세운 경천사 10층석탑과 여러 면에서 무척 비슷해 보입니다.
부식을 막기 위해 1998년에 씌운 유리보호각이 무척 옹색해 보이고 안타깝기까지 하네요.

구한말 이래 외국인들의 필수 관광코스였던 원각사지 10층석탑~!
원래는 13층으로 세워 분신사리와 새로 번역한 원각경을 모셔 두었다고 하며 亞자 모양의 기단은 세겹인데 아래에는 용과 연꽃같은 무늬를 새겼고, 중간에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일행이 인도에서 불법을 구해오는 과정을 새겼으며 위에는 부처님의 전생설화와 일생을 조각하였지요.

법회장면을 새긴 탑의 몸에는 현판, 용을 휘감은 기둥, 목조구조, 지붕을 두었는데 마치 하나의 건물과 같아 보입니다.
탑을 만든 재료는 흔치않은 대리석이며 유례를 찾을수 없을 정도로 우수한 조각솜씨를 자랑하고 있으나 대리석을 부식시키는 새똥과 산성비, 매연으로 부터 석탑을 지키기 위해 1998년에 유리보호각을 설치했으나 부식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하네요.

여전히 노인천국 상태의 탑골공원.
정부에서 노인복지를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집 주변에 경로당, 노인종합복지관 등의 시설이 괜찮은데도 노인들이 탑골공원에 계속 오시는 이유가 뭔지요?
같은 노인의 입장으로 곰곰 생각해 보지만 이해가 안갑니다.
국내외의 많은 관광객들이 원각사지 10층석탑을 보기위해 방문하지만 분위기가 넘 안좋고 불결하기까지 하여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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