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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개발의 기준사례가 된 '공평도시유적전시관' 탐방강바람의 국내여행 2026. 6. 15. 17:37
서울 종로구 공평동에 위치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을 탐방하였습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서울의 도시유적을 원래의 위치에서 전면적으로 보존하고자 2018년 9월 개관한 국내 최대규모인데요.
종로구 공평동(公平洞)은 1호선 종각역 북쪽으로 조선시대 이래 중부 견평방(堅平坊)에 속하는 지역으로 조선시대 최고의 번화가이자 시전의 중심지였습니다.
현재도 그 전통은 이어져 공평 1.2.4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을 통해 조성된 대형 오피스 빌딩 '센트로폴리스'는 지하 8층 지상 26층 규모로 지난 2018년 준공 이후 현재까지도 서울 도심을 대표하는 프라임 오피스로 평가받고 있지요.
그런데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은 센트로폴리스 지하에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조성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2015년 건물 공사과정에서 조선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서울 도심의 골목길과 건물터가 대규모로 발굴된 것인데 시행사는 유적을 이전하거나 훼손하는 대신 보존, 전시를 전제로 한 개발을 제안하여 건물 지하 1층에 1,915평 규모의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을 조성해 서울시에 기부채납했고 서울시는 용적율 인센티브를 부여하여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할수 있게 하였습니다.
문화재 보존과 도심 고밀개발을 결합한 이 모델은 이후 '공평동 룰'로 불리며 서울 도심개발의 기준사례로 자리 잡은바 있습니다.
전시관 내부에는 발굴 당시 확인된 유구와 구조물, 골목길 등이 원형 그대로 복원되어 있는데요.
센트로폴리스 지하1층에 내려가면 먼저 유리바닥 위를 걸으며 유적지를 직접 보게 되어 있는데 처음 보는 광경으로 획기적이고 놀랍기만 합니다.
단순히 유적전시관 차원을 넘어 조선시대 한양의 생활현장을 마치 생시처럼 옮겨놓은 살아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간듯 넘 신기스럽네요.
다만 현재의 전시관 바닥 위치가 건물 지하1층인데 이는 편의상 그리한 것으로 실제 바닥 위치는 지표면과 가깝다고 봐야 합니다.
전동 큰 집, 골목길 ㅁ자집, 이문안 작은집, 골목길, 능성구씨 집터, 목각 수전전도, 출토유물 등을 살펴보고 건평방 체험, 갓과 도포 체험도 하려니 시간가는 줄을 모르겠네요.
오늘 역사탐방은 큰 사위의 초청으로 이루어져 더욱 뜻깊었는데요.
유적지 답사가 취미인 장인을 위해 근무지 지하에 있는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을 소개하고 점심까지 대접한 것이지요.
오랜만의 시내나들이에 큰사위와 함께 역사탐방까지 하니 의미도 크고 무척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1호선 종각역에서 서울 종로구 공평동에 위치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을 찾아 갑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을 알리는 표석과 지표면에 드러난 시설물.
종로구 공평동(公平洞)은 1호선 종각역 북쪽으로 조선시대 이래 중부 견평방(堅平坊)에 속하는 지역으로 조선시대 최고의 번화가이자 시전의 중심지였습니다.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26, 센트로폴리스 지하 1층에 있는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공평 1.2.4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을 통해 조성된 대형 오피스 빌딩 '센트로폴리스'는 지하 8층 지상 26층 규모로 지난 2018년 준공 이후 현재까지도 서울 도심을 대표하는 프라임 오피스로 평가받고 있지요.

전시관 내부에는 발굴 당시 확인된 유구와 구조물, 골목길 등이 원형 그대로 복원되어 있는데요.
센트로폴리스 지하1층에 내려가면 먼저 유리바닥 위를 걸으며 유적지를 직접 보게 되어 있는데 처음 보는 광경으로 획기적이고 놀랍기만 합니다.

2015년 건물 공사과정에서 조선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서울 도심의 골목길과 건물터가 대규모로 발굴된 것인데 시행사는 유적을 이전하거나 훼손하는 대신 보존, 전시를 전제로 한 개발을 제안하여 건물 지하 1층에 1,915평 규모의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을 조성해 서울시에 기부채납했고 서울시는 용적율 인센티브를 부여하여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할수 있게 하였습니다.
문화재 보존과 도심 고밀개발을 결합한 이 모델은 이후 '공평동 룰'로 불리며 서울 도심개발의 기준사례로 자리 잡은바 있습니다.

발굴조사에 착수하여 전면 보존을 결정하고 유구 복원 및 전시관 복원까지는 4년여 기간이 소요되었는데요.
2014.7월 발굴조사에 착수, 2015.3월 발굴유구 전면 보존 결정 및 보존 세부계획 수립, 2015.4월 발굴조사 완료, 2015,6월 유규 이전완료, 2017.11~2018.6월 유구 복원 및 전시관 조성공사, 2018.9.12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개관.

2014-15년 재개발사업 시행에 따른 문화재 발굴조사가 제1.2.4지구에서 진행되었는데 조사결과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4개의 시대별 문화층에서 건물지와 도로 등의 유구와 다양한 유물이 확인되었으며

건물터 복원은 16세기 조선시대의 도시구조와 생활상을 짐작할수 있게하는 IV문화층 유적 중에서 보존상태가 좋고 건물의 수와 규모에 따라 다양한 성격을 보여주는 세개의 주택을 대상으로 했다고.

먼저 맞이한 전동 큰집.
발굴된 가장 큰 규모의 건물터로 중인(中人) 이상의 가옥 또는 관청의 부속시설물로 추정.

큰집의 기초를 이루던 석재들이 놀랍도록 정교하고 견고하게 보이는데요.
안마당을 둘러싼 기단석, 적심석, 그리고 긴초석 등이 발굴되었으며 4개동의 건물이 하나의 집을 이루고 있으며 안채는 ㄷ자 모양으로 중심부분의 폭은 두칸 반, 나머지 부분은 모두 한칸 폭으로 추정.

1/10 모형으로 복원한 전동 큰집.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공평도시유적전시관 내부 전경.
발굴한 유물을 잘 수습했다가 잘 이전한 후 원형 그대로 복원한 모습이 실로 대단합니다.

골목길 ㅁ자 집.
안마당을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중간 규모의 건물터로 기초석들이 꽤 정교한 모습.

초석, 기단석, 고맥이석, 마당박석, 배수로 등이 상당히 잘 남아있어 ㅁ자 모양의 구조를 확인할수 있는데요.
건물터의 북쪽면은 4칸, 측면 2칸의 겹집 형태로 중앙과 동쪽 칸에 마루 부재가 탄채로 발견되어 대청과 마루방이 있던 이 집의 중심채로 추정.

이문안길 작은 집.
한옥의 목구조를 복원한 이문안길 작은 집은 6칸으로 온돌과 마루,아궁이 등의 주택 바닥 형식이 모두 발굴되어 조선 전기 한옥의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

이문안길 작은 집터에서 출토된 유물들.
무척 고급스런 자기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부잣집이었을 것으로 추정.

조선 제일의 번화가, 시전거리
조선시대 견평방 지역에는 시전의 중심가인 운종가(운종가)가 위치하였는데 그 뒷편 북쪽이 바로 공평동 유적입니다.
한양의 시전은 태종 12년(1412) 총 2천여 칸 규모로 건설되었는데 이는 무질서한 상행위를 막기 위해 국가에서 상점을 건축하여 상인에게 빌려주는 형식으로 시전행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의 종로1가에서 3가에 이르는 지역과 남대문로가 일대였으며 성종대에 종로4가 일대에도 추가되었지요..
18세기 말, 19세기가 되면서는 시전이 아닌 점포상업과 개별상인들에 의한 난전이 성행하면서 시전 이외에서도 상업이 활성화된 역사가 있습니다.

조선 후기 선술집의 모습을 담은 신윤복(1758~?) 그림인 주사거배(酒肆擧盃).
청색 치마을 입고 트레머리를 한 주모, 심부름을 하는 동자 모습과 함께 도포와 중치막 차림의 선비, 붉은색 덜렁에 노란 초립을 쓴 무예청별감, 까치등거리에 깔때기를 쓴 의금부 나장의 모습인데요.
종로 대로변은 시전 행랑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술집은 대개 공평동 유적과 같은 시전 뒷골목에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공평동 유적에서 출토된 다양한 금속 유물들.
특히 건축물에 사용된 문고리, 돌쩌귀, 걸쇠, 대접쇠 등이 출토되어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고.

청진동 출토 진단구.
진단구란 건물을 지을때 안전과 번영을 지신에게 기원하기 위해 땅에 묻는 물건으로 조선시대에는 주로 항아리를 묻었다고.

공평동 유적에서 발굴된 다양한 종류의 생활용품.
문양이 없는 백자류가 대부분이나 상감백자, 청자, 분청자, 흘유자 등과 같이 출토.

공평동 유적에서 발굴된 제기류.
제사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청동접시, 청동발, 청동향로 등의 제기가 출토.

공평동 유적에서 발굴된 명문자기.
글자나 부호 등 명문(銘文)이 표시된 다수의 백자, 분청자, 청자 등이 출토되었으며 먹으로 쓴 백자들도 다수 출토.
분청자의 명문은 내섬, 내자 등 그릇의 소비처와 생산지를 가리키며 백자의 굽 안쪽에는 천, 지, 현, 황 등의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조선 전기 관요에서 만들어 진것임을 의미하며 먹으로 글자나 부호를 표시한 백자는 쟈근, 막비, 은 등 여성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한글이 쓰여져 있어 잔치 등에서 그릇의 임자를 가리기 위함으로 추정.

공평동 유적에서 가장 많이 발굴된 도기.
자기가 주로 발, 잔, 접시 등 반상기에 해당하는 그릇으로 제작된 반면 도기는 물과 음식, 곡식을 보관하는 항아리 형태의 저장기로 제작.

11호 건물터.
ㅡ자 형태의 집으로 정면 3칸 측면 1.5칸집으로 석재를 쌓아올린 우물도 발견.

복원된 이문안길 작은집.

이문안길 작은집에서 출토된 부엌살림들.

종로 시전의 뒷길이자 이문안길 끝 (스크린 뒷편)에 있었던 능성구씨(綾城具氏) 구수영(具壽永, 1456~1523) 집터.
구수영은 세종대왕의 8남인 영응대군의 사위로 뽑혀 세조로 부터 특별히 선략장군부호군을 제수 받았으며 연산군때에는 한성부판윤에 올랐던 인물.
집 부근의 종로 방향으로 이문(里門)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문은 야간통행자를 검문하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웠지만 인조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여 더욱 엄격했다고 합니다.

능성구씨들이 대대로 살았던 대저택.
영조가 이 집을 방문하고 어제시를 남긴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조선 후기에 사라진 것으로 추정해 볼뿐.

이문안길과 석축.
높이 2.4~2.7m의 석축이 있는 폭 5m 정도의 길(이문안길)로 발굴 직전까지 종각역에서 인사동으로 이어지는 주요 통행로로 사용된 역사가 있지요.
정교하게 쌓은 석축이 길 양쪽에 있어 이색적입니다.

발굴 당시의 이문안길 석축.
가지런히 잘 쌓은 주택가 석축이 마치 성곽을 방불케 합니다.

공평동 유적에서 발굴된 다양한 상공업 물품들.
화폐인 상평통보를 비롯하여 시전에서 상품제작에 사용되었을 원형철제편 등 다양한 재료와 도구들도 출토.

12호 건물터

14호 건물터.

흔적이 잘 남아 있는 전동 골목길.
공평동 유적의 중앙부에서 폭 2~3m 내외의 골목길 3곳이 확인되었는데 전동 골목에 난 길이라 '전동 골목길'로 불리웁니다.

전동 골목길 3곳은 전 시대의 발굴 층위에서 동일한 위치에 같은 폭으로 발굴되었는데요.
공평동의 건물들은 시대에 따라 많은 변형이 있었지만 골목길만은 지난 600여년간 변함없이 제 모습을 유지하여 오랜 역사를 상징한다고.

15호 건물터
ㅡ자 형태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터와 그 동쪽으로 2칸의 부속 건물터가 나란히 위치.

17호 건물터
정면 2칸 측면 1칸의 ㅡ자형 집으로 건물의 동쪽 전면에 마당이 있고 대지 동쪽과 북쪽 경계에서 담장이 확인.

서울시에서는 2004년부터 도심지역에 대한 대규모 개발사업시 사전에 매장문화재 조사를 하고 있는데요.

이곳에서는 그동안 조사되었던 한양도성 내 다양한 유적의 조사성과를 축적하고 아카이브(기록 보관)를 구축하여 시민들과 공유하고 있다는 설명.

기획전시중인 '태화관'(2026.6/27~27.3/7)

인사동 194번지는 조선시대에 능성구씨 가문의 집터이자 태화정과 잠룡지가 자리했던 사적인 생활공간이었으며 19세게에는 안동김씨 김흥근이 거주했고 이후 헌종의 후궁인 경빈김씨가 머물면서 순화궁이라 불리게 되었지요.
한옥과 궁가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태화관은 단순한 요리집에 머물지 않고 1919년 3월1일 민족대표들은 이곳에 모여 독립선언식을 열고 조선의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역사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태화관 자리에는 1921년 미국인 감리교 선교사들에 의해 태화여자관을 설립하고 여성교육과 계몽, 의료지원 등 다양한 사회사업을 펼쳤습니다.
사진의 '박애봉사(博愛奉仕)'라고 새겨진 석재는 1938년에 세운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정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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