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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설악산 백담계곡을 걸어 고찰 백담사를 찾다강바람의 국내여행 2026. 6. 10. 08:39
2년만에 다시 설악산 백담사를 찾았습니다.
오늘도 50년 전, 설악산을 처음 완주하던 추억을 되살리며 백담계곡길을 걸었는데요.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국립공원 백담분소에서 백담사까지 초록초록 싱그러운 계곡길은 5.7km 거리.
내설악에서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다가 외설악으로 코스를 잡은 등산인들이나 백담사와 오세암, 봉정암을 찾는 불자들은 반드시 걸어야 하는 길이지요.
백담계곡을 이루는 영실천의 풍광은 옛부터 수려하기로 유명하니 걷는다는게 넘 행복하더군요.
계곡길을 걷자니 통행인 보호차원에서 기존 도로와 붙여 데크길을 만들었으니 안전을 얻은 반면 수려한 풍광이 부분적으로 훼손된것 같아 아쉽기도 합니다.
내설악에 위치한 백담사(百潭寺)는 647년(진덕여왕1) 자장이 창건하였는데 한계령 부근에 절을 세우고 한계사(寒溪寺)라고 하였으나 여러번의 화재로 인해 위치를 옮긴 역사가 있으며 1455년(세조 1) 절을 옮겨 중건하고 백담사라고 하였습니다.
1772년(영조 51) 다시 화재 이후 중건하여 심원사(尋源寺)라고 하였다가 1783년(정조 7) 절 이름을 다시 백담사로 햐었으며 6.25 사변때에도 소실되어 1957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잦은 화재로 인해 얼마나 고초가 컸을지 가슴이 아프네요.
절 이름을 백담사로 한 이유는 거듭되는 화재를 막아 보고자 하는 염원에서 였다고 하는데요.
어느 날 밤, 주지의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潭)를 세어보라고 하여 이튿날 세어보니 꼭 100개에 달하므로 이름을 백담사로 바꾼 이후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근대에 이르러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이 머물면서 '불교유신론', '시현담주해', '님의 침묵'을 집필하는 장소가 되었고 만해 사상의 고향이 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백담사에서는 '님의 침묵과 함께 하는 템플스테이'를 운영중인데요.
조만간 백담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며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는 수련을 체험해봐야 겠습니다.
웅장한 설악산과 아름다운 계곡을 품은 고찰 백담사에서 조용히 마음의 위안을 얻고 가니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2년만에 설악산 백담사를 찾아 갑니다.

셔틀버스를 이용해도 되지만 오늘은 설악산국립공원 백담분소에서 백담계곡길을 걷기로.
백담분소에서 절까지는 5.7km이니 쉬엄쉬엄 1시간이 더 걸리겠네요.

늘 맑고 푸른 물이 흐르는 백담계곡의 영실천.

물색깔마져 쪽빛으로 보이는 영실천~!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걷는다는건 최고의 행복~!

1시간 남짓 찻길을 걷고 데크길을 걷고 언덕도 오르다 보니 어느덧 다시 영실천을 건너게 되는데요.

갑자기 넓어진 백담계곡의 영실천.
앞에 보이는 산 아래에 고찰 백담사가 있지요.

마지막 데크길을 걸으면,

드디어 내설악백담사(內雪嶽百潭寺) 편액이 걸린 일주문.

내설악에 위치한 백담사(百潭寺)는 647년(진덕여왕1) 자장이 창건하였는데 한계령 부근에 절을 세우고 한계사(寒溪寺)라고 하였으나 여러번의 화재로 인해 위치를 옮긴 역사가 있으며 1455년(세조 1) 절을 옮겨 중건하고 백담사라고 하였습니다.
1772년(영조 51) 다시 화재 이후 중건하여 심원사(尋源寺)라고 하였다가 1783년(정조 7) 절 이름을 다시 백담사로 햐었으며 6.25 사변때에도 소실되어 1957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잦은 화재로 인해 얼마나 고초가 컸을지 가슴이 아프네요.
절 이름을 백담사로 한 이유는 거듭되는 화재를 막아 보고자 하는 염원에서 였다고 하는데요.
어느 날 밤, 주지의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潭)를 세어보라고 하여 이튿날 세어보니 꼭 100개에 달하므로 이름을 백담사로 바꾼 이후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찰이 된 백담사.
자그마하던 절이 언제 이렇게 커졌는지 놀랄 정도.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10.6km.
먼거리는 아니지만 계곡길이 끝나면 산길이 험하니 언감생심일뿐.ㅎㅎ

1977년 결혼 직전에 집사람과 같이 이 길을 걸어 봉정암 경유, 처음으로 대청봉에 오른 적이 있었는데 어언 반세기가 훌쩍 지났네요.
그후에도 여러 코스로 몇차례 정상에 오르기도 했지만 마지막으로 한번 더 오를수 있을런지.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찬찬히 읽어보며,

오호, 설악산 백담사~!
심심산골에 동향으로 자리하여 아침 햇살이 눈부시네요.

설악산에서 내려오는 영실천에 많은 담(못)이 있어 백담사라는 이름이 생겼나요?

천년전에 어찌 이렇게 깊은 심심산골에 절을 짓게 되었나요!
지금은 수심교 위를 걸어 편하게 들어가지만 1977년 처음 방문시에는 개울의 징검다리를 걸어 갔던 추억이 새록새록

일주문에 이어 2번째는 금강문.
금강문을 들어서며 번뇌와 세속의 찌꺼기를 털어내고 진리의 세계로 향하는 마음가짐을 가져 봅니다.

금강문 안에 있는 금강역사상.

오호, 백담사의 상징인 불이문.
현재 불이문 주위는 지반 포장공사중이네요.

백담사, 설악산 편액이 달린 불이문.

불이문을 지나면 중심법당인 극락보전과 좌우의 화엄실, 법화실.

앞에 3층석탑이 있는 극락보전.

극락보전의 주불인 목조아미타불과 복장유물은 보물 제1182호.
온화한 표정의 목조아미타불은 18세기 불교조각의 수작으로 평가받는다고.

극락보전 앞에 있는 화엄당은 만해 한용운이 1925년 '알수 없어요' 등 80여편의 시와 함께 '님의 침묵'이란 시집을 탈고한 곳입니다.
그는 동학혁명이 실패로 끝난후 1896년부터 오세암에서 머슴일을 하며 기거하다가 1905년 27세때 백담사에서 출가했으며 이곳 화엄당에서 님의 침묵과 조선불교유신론을 집필했다고.
예전에는 화엄당에 전두환대통령 부부가 1988년 11월에서 1990년 12월까지 2년여 은둔생활을 할때의 생활도구들을 모아놓고 내방객에 보여주었는데 몇년전에 아예 없애버렸더군요.
좁은 방에 생활도구가 가득한걸 보고 어떻게 이곳에서 두분이 사셨을까하는 생각을 했는데 거처가 아니었나 봅니다.

규모가 큰 백담사 나한전.

수많은 나한이 안치되어 있는 나한전 내부.
이렇게 많은 나한이 있는 절은 처음 보는것 같네요.

백담사 만해당(卍海堂)은 동쪽은 팔작지붕, 서쪽은 맞배지붕으로 된 특이한 형태의 법당인데 예전에 전두환대통령 부부의 거처가 되기도.

템플스테이를 하며 절의 규모가 커진 백담사.
현재 백담사에서는 '님의 침묵과 함께 하는 템플스테이'를 운영중인데요.
조만간 다시 시간내어 백담사에서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는 수련을 체험해봐야 겠습니다.

경내에 있는 만해 한용운기념관은 마당 공사중이라 폐쇄중.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은 일제강점기의 시인, 승려, 독립운동가.
그는 1905년 백담사에서 승려가 되어 머물면서 '불교유신론', '시현담주해', '님의 침묵'을 집필하는 등 불교유신과 개혁을 추진하였으며
일제의 침탈에 항거하여 민족독립운동을 구상하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경내에 있는 야광나무 고목.
5월에 하얀 꽃을 피워 밤에도 환하게 주위를 비춰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가을에는 작은 사과 모양의 열매가 열린다고.

백담사 앞에 서니 맑은 물이 흐르는 영실천 뒤로 설악산 서북능선이 보이네요.
설악산 서북능선과 공룡능선은 아직 미답지인데 생전에 밟아보고 눈을 감을수 있을지 마음을 다져 봅니다.

정성스레 쌓은 돌탑들~!
소원을 빌며 쌓은 돌탑이 끝없이 개울을 덮고 있으니 뭔 소원이 그리도 많은가요.
우크라이나, 이란 전쟁도 하루속히 끝나고 우리나라도 평안하고 가정도 두루두루 건강, 행복하시길 빕니다.

웅장한 설악산과 아름다운 계곡을 품은 고찰 백담사에서 조용히 마음의 위안을 얻고 가니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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