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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이 활짝 핀 남양주 봉선사(奉先寺) 탐방강바람의 국내여행 2026. 7. 9. 17:08
연꽃이 활짝 피어있는 남양주 봉선사를 찾았습니다.
봉선사(奉先寺)는 고려 광종 20년(969) 법인국사 탄문이 창건하여 운악사라 하였지만 조선 세종때 불교 7대 종파를 선교양종으로 통합할때 혁파되어 폐사지로 변한 역사가 있는데요.
이후 폐허로 남아있다가 조선 제8대 예종 1년(1469) 세조의 위업을 기리고 광릉의 릉침을 보호하기 위해 정희왕후 윤씨가 89칸 규모로 초창하고 봉선사로 고쳐 불렀습니다.
명종 6년(1551) 문정왕후가 불교중흥정책을 펴면서 이곳 봉선사를 교종(敎宗) 우두머리 사찰로 삼고 전국 사찰을 관장하게 됩니다.
봉선사의 가람배치는 당초 궁궐건축과 사원건축이 혼합된 형식으로 대웅전이 놓이고 그 좌우로 어실각과 노전이 있었으며 지금도 기본 골격은 예전 그대로인데요.
봉선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 6.25 사변으로 폐허가 된 것을 꾸준히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도 중창불사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근년엔 독립운동을 펼치다 30세에 출가한 운허(耘虛, 1901~1980) 스님이 동국대 역경원장을 역임하면서 대장경의 한글번역을 이곳에서 시도, 불교대중화에 주력한바 있는데요.
대웅전의 "큰법당" 현판은 그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고 하며 대웅전 주련도 모두 한글로 되어 있어 무척 특이합니다.
한편 절 입구 부도밭에는 1975년에 세운 춘원 이광수기념비가 있습니다.
운허스님은 춘원의 동갑내기 8촌동생으로 해방후 친일변절자, 반민족행위자로 낙인 찍혀 갈곳없이 헤매던 춘원을 봉선사로 불러 집필활동을 이어가도록 도왔다고 하는데요.
봉선사 다경향실(茶經香室)은 춘원이 수필집 '돌베개'와 '나의 고백'을 집필한 곳이라고 하는데 동일한 건물인지는 알수가 없네요.
예쁜 연꽃도 구경하고 역사 깊은 고찰 봉선사도 탐방하는 즐겁고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운악산 자락에 위치한 남양주 봉선사.

봉선사(奉先寺)는 고려 광종 20년(969) 법인국사 탄문이 창건하여 운악사라 하였지만 조선 제8대 예종 1년(1469) 세조의 위업을 기리고 광릉의 릉침을 보호하기 위해 정희왕후 윤씨가 89칸 규모로 초창하고 봉선사라 고쳐 불렀습니다.

부산 범어사 일주문을 연상시키는 봉선사 일주문.
한글로 세로로 쓴 '운악산봉선사' 편액이 무척 특이합니다.

오호, 연꽃이 예쁘게 만개했네요.
봉선사 연꽃단지는 매년 연꽃축제를 열만큼 아주 유명하지요.

연꽃은 진흙에서 자라지만 그 잎과 꽃이 더러움에 물들지않고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하고 있으니 보기만 해도 마음이 맑아집니다.

귀여운 아기를 보는듯 넘 예쁜 꽃봉오리.

불공을 드리며 마음의 청정을 기원합니다.

7월초의 푸르른 길을 걸으면,

정희왕후가 심었다는 느티나무.
광릉을 조성한 후 선왕의 위업을 기리고 릉침을 보호하기 위해 절을 중창하고 절이름도 운악사에서 봉선사로 고쳤으며 그때 심은 느티나무라고 합니다.

느티나무 옆에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라고 새겨져 있는 하마비.
사찰 입구에 하마비가 있음은 매우 희귀한 일인데 왕실의 후원을 받는 사찰임을 나타나고 있네요.

큰법당으로 들어가는 문과 좌우의 행각.
원래는 우측에 있는 청풍루가 정문 역할을 해온것 같습니다.

위풍당당한 봉선사 청풍루(淸風樓).
6.25 사변으로 전소되기 전에는 천왕문, 해탈문과 소설루(小雪樓)가 있던 자리였으나 1985년 콘크리트 건물로 복원.

청풍루 앞에 쌓은 정교한 모습의 석축.
조선 제8대 예종 1년(1469) 정희왕후 윤씨가 봉선사를 89칸 규모로 초창할때 쌓은 석축으로 생각되는데 마치 화성 용주사를 보는듯 서로 비슷해 보입니다.

과거에는 청풍루 앞 계단을 걸어 큰법당으로 들어갔을 텐데요.
지금은 거의 사용을 안하는 실정이며 청풍루 서쪽의 작은 문을 통해 절 안으로 들어가지요.

봉선사 범종루.
최근 동종이 국보로 지정되었음을 축하하는 프래카드가 걸려 있네요.

국보로 지정된 봉선사 동종.
광릉 능침사찰인 봉선사에 예종 원년(1469) 세조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제작한 범종인데요.
불교가 박해받던 시절에 왕실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매우 희귀한 종이자 가장 완성도가 높은 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근래에 조성한듯한 대의왕전(大醫王殿).
병과 괴로움을 치유하는 대의왕을 모신 전각인데 부처님을 뵈니 약사여래 같습니다.

오호, 청풍루에서 바라본 봉선사 전경.
큰법당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요.
마당 좌우에는 운하당, 방적당이 있고 큰법당 좌우에는 관음전, 지장전이 있으며 큰법당 뒷편 좌우에는 삼성각, 조사전이 있습니다.

봉선사 운하당(雲霞堂).
대중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신도들의 교육장소이기도.

1973년 주지 만허 스님에 의해 복원된 방적당(放跡堂).
현재 스님들의 교육장소로 사용중.

음력 7/15, 백중을 앞두고 극락왕생을 비는 백중등이 가득 달려 있는 큰법당 앞 마당.
대웅전 초창은 조선 예종 1년(1469)으로 89칸의 절 규모와 함께 한강 북쪽에서 가장 컷다고 하며 현재 건물은 1970년 운허 스님에 의해 건립되어 큰법당으로 이름 지은바 있습니다.

봉선사 3층석탑.
큰법당 앞에 있으며 역사는 깊어 보이지않네요.

대웅전 이름 대신 "큰법당"이라고 한글로 쓴 현판은 운허스님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며 큰법당 주련도 모두 한글로 되어 있어 무척 특이한 모습.

큰법당에 모신 석가모니불과 협시보살인 보현보살, 문수보살.

큰법당 좌우에는 관음전, 지장전이 있는데요.
관음전은 1999년에 복원되었지만 제법 고풍스럽게 보입니다.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는 관음전.

큰법당 우측에 있는 지장전.
원래는 세조와 정희왕후의 위패를 모신 어실각(御室閣)이었으나 1999년에 복원하여 지장전으로 사용.

옛 모습이 잘 남아있는 봉선사 수각.

큰법당 뒷편의 다소 높은 곳에 위치한 삼성각.
산령각(山靈閣), 북두각(北斗閣), 독성각(獨聖閣)이 한 건물에 있는 모습.

산신과 칠성, 독성과 탱화가 함께 모셔져 있는 삼성각 내부 모습.

삼성각의 방풍판에 그려져 있는 호랑이.
구름 위를 날아가는 호랑이 모습으로 다른 절에서는 볼수없는 특이한 그림입니다.

삼성각 반대편의 방풍판에 그려져 있는 청룡.
서쪽과 동쪽을 지키는 용감한 호랑이와 용이 있으니 절이나 불자들을 위한 수호신 역할을 톡톡히 할것 같습니다.

1977년, 삼성각과 같은 크기로 지은 조사전.

계민(戒敏)대선사와 월초(月初) 스님을 비롯한 근대의 봉선사 조사스님들의 영정을 모신 모습.

외츨나가시는 노스님.
행각 모양의 건물도 예전엔 없었는데 약 30여년 전에 복원하였으니 끊임없는 중창으로 스님들의 노고가 무척 크시네요..

근래에 조성한 야외미륵전.

너무 외형을 키우는듯한 작금의 봉선사 모습.
템플스테이를 한다고 여러 건물을 세운지도 얼마 않되었는데 이번엔 명상체험센터를 짓는다고 분주하네요.

지금은 봉향당(奉香堂) 찻집으로 운영중인 느티나무 보호수 앞에 있는 다경향실(茶經香室).
봉선사 다경향실은 춘원이 수필집 '돌베개'와 '나의 고백'을 집필한 곳이라고 하는데 동일한 건물인지는 아리송?

비석이 여럿인 봉선사 부도밭.

1975년 봉선사 부도밭에 세운 춘원 이광수기념비.
운허스님은 춘원의 동갑내기 8촌동생으로 해방후 친일변절자, 반민족행위자로 낙인 찍혀 갈곳없이 헤매던 춘원을 봉선사로 불러 집필활동을 이어가도록 도왔다고 합니다.

봉선사에서 예쁜 연꽃도 구경하고 역사 깊은 고찰도 탐방하는 즐겁고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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