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양주 석실마을의 안동김씨 묘역 답사기.강바람의 유적답사 2016. 1. 18. 22:46
청풍김씨의 묘역이 위치한 평구마을에서 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산5, 석실마을에는 놀랍게도 안동김씨 세장지지(世藏之地)가 있습니다.
남향으로 아늑하게 야산으로 둘러싸인 석실마을은 심양에서 풀려나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던 김상헌 선생의 호인 석실산인(石室山人)에서 유래된것 같습니다.
원래 이곳은 남양홍씨의 땅이었으나 1544년, 남양홍씨인 부인이 김번의 묘를 처음 씀으로써 이후 안동김씨의 세장지지로 바뀌게 된것이라고 하네요.
흔히 안동김씨를 "금관자가 서말(金貫自三斗)"이라고 하여 큰 벼슬을 많이 지냈다는 비유로 삼곤 하는데
조선 8대 명당터의 하나로 손꼽히는 김번 묘, 병자호란때 화약에 불을 지르고 순절한 김상용 묘, 척화파의 거두인 김상헌의 묘들이 바로 이곳에 있어 더욱 유명합니다.
답사는 선원 김상용, 곡운 김수증, 문곡 김수항, 김번, 김생해, 김극효, 청음 김상헌 순서로 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수석동에서 옮겨놓은 석실서원묘정비(石室書院廟庭碑)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 남양주 석실마을에는 조선 중기 이후 안동김씨의 집단묘역이 있어 유명합니다.
* 석실마을 역시 평구마을처럼 남향으로 둥그렇게 야산으로 둘러싸여 옛부터 명당터로 인식되어온 곳인데요.
근래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에 창고, 공장건물이 들어서며 옛 정취를 잃어버려 안타깝습니다.
* 먼저 마을 초입에 위치한 충신 김상용 선생 묘소를 찾아 갑니다.
묘소 입구에 위치한 사진의 건물은 충효각(忠孝閣)인데 내부에는 김상용 선생의 충신정려, 손자 김수전의 효자정려가 있습니다.
* 충효각 내부에 안치된 충신 김상용 선생 정려.
* 묘소 입구에 서있는 김상용 선생 신도비.
* 우의정 문충공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1561~1637) 선생 묘소 전경.
* 김상용 선생은 조선 인조때의 문신으로 척화파의 거두인 김상헌의 형이며 정치적으로 서인이었습니다.
1636년 병자호란때 인조를 수행하여 강화도로 피난하였다가 성이 함락되자 남문 문루에 화약을 쌓아 불을 지르고 순절하여 충신의 표본이 되신 분이지요.
옆에 있는 작은 묘는 김상용 선생 분신때 함께 불속에 뛰어든 13살 손자 김수전(金壽全)의 묘인데요.
그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할아버지 옆에 묘를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 "忠臣 議政府 右議政 金公尙容之墓, 貞敬夫人 安東權氏之墓"라고 쓰여진 묘비.
* 김상용 선생 묘소에서 동쪽으로 바라보이는 석실마을과 예봉산 능선.
* 김상용 묘소 옆 능선에는 돈영부도정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 선생의 묘소가 있는데요.
곡운 김수증(1624~1701) 선생은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이며 김상헌의 손자입니다.
산수를 좋아하여 금강산 등을 유람한뒤 기행문을 남기기도 했는데
말년에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용담리, 지존천변 경관 좋은 곳에 곡운구곡(谷雲九曲)을 경영했었는데 그 자취가 지금까지 남아 있여 명성이 자자합니다.
* "有明朝鮮 工曹參判 谷雲先生 金壽增之墓, 贈貞夫人 昌寧曺氏 祔左" 라고 쓰여진 묘비.
* 3번째로 찾은 곳은 조선 8대 명당중의 하나이며 안동김씨 집단묘역의 중심부에 위치한 김번(金璠, 1479~1544) 선생 묘소.
김번(金璠, 1479년 ~ 1544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옥호저수형(玉壺貯水形, 옥항아리에 물을 담은 형국) 명당터에 묘를 쓴 덕분에
아들은 신천군수 김생해(金生海), 손자는 삼가현감 김대효 (金大孝), 군기시정 김원효(金元孝), 돈녕부도정 김극효(金克孝)까지 대대로 큰 벼슬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 조선 8대 명당중 하나라는 옥호저수형의 명당인 김번의 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해집니다.
『 옛날(1544) 김번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우인 백운거사가 찾아 왔는데요.
백운거사는 이곳이 옥항아리에 물이 들어있는 천하의 명당이라는 것을 깨닫고 형수에게 말합니다.
"형수님, 이곳은 천하의 명당으로 옥호리병에 물이 담긴 형상입니다. 그러니 아버님 묘를 이장하시어 후손의 발복을 기원, 도모하십시다."
그러나 형수는 고민끝에 남편 김번의 묘를 쓰겠다고 했다는데요.
백운거사는 아쉬워하며 조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너의 자손중에서 금관자, 옥관자가 쏟아져 나올 것이니 모두 네 아버님 묘터의 발복임을 잊지 말아라."
훗날 백운거사의 예언은 적중하여 안동 김씨는 고관대작과 문장, 충신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
* 김번의 묘에서 전면을 바라본 모습.
원래 이 자리는 부인 남양홍씨의 친정땅으로 방앗간이 있었다고 하는데 명당임을 알아보고 친정을 설득하여 묘를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요.
1544년, 김번의 묘를 쓰면서 석실마을은 남양홍씨에서 안동김씨의 세장지지로 바뀌게 됩니다.
* 묘에서 동쪽으로 바라보이는 김번 후손 안동김씨 묘역.
* 보기 힘든 신도비가 즐비한 안동김씨 묘역.
* 집단묘역의 하단에 자리한 김상헌(金尙憲) 선생 묘.
김번(金璠)의 증손자, 할아버지는 생해(生海), 아버지는 극효(克孝)이며 김상용(金尙容)이 친형입니다.
* 청음(淸陰) 혹은 석실산인(石室山人) 김상헌(金尙憲,1570~1652) 선생은 조선 중,후기의 문신, 학자로
병자호란때 척화파의 거두로서 주화론을 배척하고 척화항전을 주장하다가 청나라에 끌려가 5년간 고초를 겪었던 분이지요.
김상헌 선생이 청나라에 끌려갈때 압록강을 건너며 읊었던 시조가 유명합니다.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 다시보자 한강수(漢江水)야,
고국산천(古國山川)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時節)이 하 수상(殊常)하니 올동말동하여라."
* "有明朝鮮文正公淸陰金先生尙憲之墓"라고 쓰여진 묘비.
* 묘소 앞에 세워진 신도비와 문인석.
* 김상헌 묘 좌측에 아버지인 김극효(金克孝) 선생 묘소.
* 김상헌 묘 윗편에 할아버지인 김생해(金生海) 선생 묘소.
* 안동김씨 묘역 중간쯤에는 석실서원묘정비, 취석, 송백당유허비, 도산석실려 등의 비석이 모아져 있는데요.
왼편의 석실서원묘정비(石室書院廟庭碑)는 원래 1672년(헌종 13) 남양주시 수석동의 석실서원 앞에 세웠던 비석인데 서원이 헐리면서 1868년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이라고 합니다.
석실서원 자체가 안동김씨인 김상용, 김상헌 형제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보니 서원이 헐리면서 자연스럽게 안동김씨의 세장지지(世藏之地)로 이전한 것 같습니다.
*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산5, 석실마을에 있는 안동김씨 묘역을 지도에 그려 보았는데요.
그림 외에도 여러 기의 묘들이 주위에 있으니 답사시 참고하기 바랍니다.
'강바람의 유적답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석실서원묘정비(石室書院廟庭碑) 답사기 (0) 2016.02.04 남양주 와부읍, 좌의정 이세백(李世白) 묘소 답사기. (0) 2016.01.23 남양주 신빈 영월신씨(信嬪 寧越辛氏) 묘역 탐방기. (0) 2016.01.13 남양주 삼패동, 평구마을과 청풍김씨 묘역 탐방 (0) 2015.12.28 남한강변, 여주 파사성(婆裟城)에 오르다. (0) 2015.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