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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 남한산성을 일주하다강바람의 유적답사 2010. 8. 2. 10:50
2010.7.25(일) 오후에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남한산성에 드라이브갔다가 느닷없이 산성을 일주하게 되었습니다.
드라이브만으로는 욕구를 채울수없어 산성 일주를 마음먹은 것인데요. 차 트렁크에 늘 싣고 다니던 비상용 복장으로 대충 갈아입고 16:30분부터 산행겸 성곽 일주를 시작한겁니다.
일주 경험상 최소한 4시간 정도는 잡아야 하는데 출발이 다소 늦은데다가 어줍잖은 신발과 복장, 계속된 폭염이 염려되었지만 한번 먹은 마음을 되돌릴수는 없었습니다.
오늘 코스는 북문~동장대터~장경사신지옹성~동문~남1,2옹성~남문~수어장대~서문을 거쳐 다시 북문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는데
장경사신지옹성 부근에서는 성밖으로 나가 사진촬영을 하다가 미끄러지며 한바퀴 구르는 불상사를 당해 몇군데 상처를 입기도 하면서 오후 8시 30분에 무사히 성곽 일주를 마칠수 있었습니다.
* 남한산성내 로타리에서 북문 방향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북문쪽으로 올라가며 왼편으로 보이는 옛날부터 있던 한옥음식점입니다.
* 오늘의 출발점은 북문(전승문)입니다. 북문을 시작으로 우측(동쪽)으로 답사를 시작할겁니다.
* 북문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는데 입장료징수가 폐지되면서 늘 개방하고 있습니다.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띄엄띄엄 등산객이 보입니다.
* 근래 성곽 보수공사를 하면서 성첩(여장)을 새로 쌓아 말끔한 모습입니다.
* 멀리 봉암성 방향으로 뻗어있는 성곽이 아주 볼만합니다.
*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계속된 장마비로 성첩의 시멘트 파편들이 떨어져 나오고 있어 위험하네요.
* 동장대터쪽으로 가다보면 옥정사 절터가 나옵니다. 산성을 지키던 승군(승병)들이 주준하던 절이었는데 절은 폐사된채 돌절구만 남아 있군요.
* 동장대터 방향으로 가다보면 암문(暗門, 비밀리에 사용하는 작은 문) 과 건물이 있던 터가 나타납니다.
* 암문은 돌계단을 통하여 진출입하게 되어 있는데요. 후대에 보수하면서 모양이 변형된것 같습니다. 굳이 처음부터 계단을 만들어 놓지는 않았을테니까요.
* 암문의 외부 모습인데요. 무척 귀엽고 앙징맞지 않습니까? 예술적 가치로도 아주 훌륭한것 같습니다.
* 드디어 동장대(東將臺)터. 동쪽인 봉암성 방향을 지키던 장대(장수의 지휘소)가 있던 곳이지요. 장대는 오래전에 없어지고 주춧돌 흔적만 남아 있을뿐 입니다.
* 동장대에서 바라본 남쪽 방향의 산들. 바로 전면에 있는 낮은 산이 한봉으로 위에 "한봉성"이 있습니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이후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동쪽에 봉암성과 한봉성, 남쪽에 신남성 등을 추가로 쌓은바 있지요.
* 동장대터 앞에 있는 낡은 옛 성곽의 성첩.
* 동장대터에서 내려다 본 봉암성. 원성(봉암성에 대해 남한산성을 원성이라 함)에서 내려다 보면 봉암(벌봉)쪽으로 쌀자루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호리병의 목처럼 잘록한 초입부의 모습입니다.
* 동장대터 부근에 있는 다소 큰 성문. 이 문은 우마차가 드나들 정도로 규모가 크며 원성(元城,남한산성을 말 함)과 봉암성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 원성에 의지해서 쌓은 봉암성의 첫 성문. 저 성문을 들어가면서 봉암성이 시작됩니다.
잠~깐! ----- 봉암성, 한봉성에 대한 사진은 수록되어 있는 옛날 자료를 보시기 바랍니다 -------
* 비상용 복장을 착용하여 낯설고 엉거주춤한 모습.
* 봉암성에 진입하여 뒤돌아본 원성(남한산성) 과 방금 지나온 성문 모습.
* 성밖으로 탈출하여 뒤돌아본 봉암성의 낮은 성곽 모습. 봉암성은 대분 무너져 내려 낮아진 상태이며 아직 복원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채 풀섶에 묻혀 있습니다.
* 밖에서 바라본 남한산성의 모습으로 화강암을 적당한 크기로 다듬어 치밀하게 쌓은 모습이 무지 예술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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