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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낳은 일곱 후궁의 신주를 모신 칠궁(七宮) 답사기강바람의 유적답사 2020. 10. 11. 09:20
종로구 궁정동에 있는 사적 제149호, 칠궁(七宮)을 답사하였습니다.
칠궁 답사는 정말 감격스럽네요.
정확하게 10년전엔 몇달을 대기하여 청와대와 함께 묶어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간단한 절차만으로 칠궁만 따로 떼어 두번째 답사를 했습니다.
해설자도 없이 단독으로 조용한 답사를 즐길수 있었지만
다만 냉천정과 수복방이 보수중에 있어 완전한 답사는하지 못했으니 다소의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현지 자료에 의하면,
「칠궁(七宮)은 근래에 와서 붙여진 명칭으로 조선시대에 왕을 낳은일곱 후궁들의 신주를 모신 왕실 사당이다.
원래 이곳은 영조가 어머니 숙빈최씨를 기리기 위해 1725년(영조 1)에 지은 사당으로 처음에는 숙빈묘라 하였다.
이후 1744년(영조 20) 에 '상서로움을 기른다'는 의미의 육상(毓祥)이라는 묘호를 올렸고, 1753년(영조 29)에 궁(宮)으로 승격하여 육상궁(毓祥宮)이 되었다. 영조는 재위기간중 200여 차례나 육상궁을 방문하였다.
조선 후기 도성 안에는 육상궁 외에도 왕을 낳은 후궁을 모신 사당이 여럿 있었다. 고종과 순종때 저경궁, 대빈궁, 연호궁, 선희궁, 경우궁 신주를 옮겼고, 1929년에 덕안궁을 옮겨 와서 육상궁에는 일곱 분의 신주를 모시게 되었다.
육상궁과 연호궁, 선희궁과 경우궁에는 각각 두 분의 신주를 모시게 되었다.
동쪽 육상궁 권역에는 나직막한 담이 둘러 싸고 서쪽 권역에는 네 개의 사당이 서로 접하여 서있다. 이 두 권역 사이에 냉천정과 냉천, 자연이라는 네모난 연못과 뒷쪽의 산자락이 어울려 한국식 정원의 원형을 이룬다.
이곳은 종묘와 더불어 조선시대 왕실에서 사당을 어떻게 짓고 운영했는지 알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며
여기에서는 매년 10월 넷째주 월요일에 칠궁제를 지낸다.」
왕의 어머니중 후궁이 많았다는 것은 곧 중전들의 아픔이 컸다는 얘기지요.
숙종, 영조, 정조의 정실왕비는 모두 왕자를 낳지 못했고
경종, 영조, 장조(사도세자), 순조는 왕비가 아니었던 어머니에 대해 평생 애틋한 정을 지닌채 살아야만 했습니다.
종묘에 신주를 모시지 못한 후궁에 대해서는 각처에 사당을 지어 신주를 모셨는데요.
1908년(융희 2년) 일본 통감부의 향사이정(享祀釐正)에 관한 칙령 제50호에 따라 그해에 모두 육상궁 안으로 옮겨 합사했으며
마지막으로 1929년 덕안궁을 육상궁 안으로 옮긴 역사가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숙종의 후궁 숙빈최씨(영조의 생모)의 육상궁은 1725년 경북궁 북쪽의 현재 자리에 사당을 건립, 숙빈묘로 출발하여
1744년 육상묘, 1753년 육상궁으로 승격.
영조의 후궁 정빈이씨(추존왕 진종의 생모)의 연호궁은 순화방(경복궁 서북쪽, 순화동)에 있다가 1870년 가장 먼저 육상궁으로 옮겼고,
선조의 후궁 인빈김씨(추존왕 원종의 생모)의 사당인 저경궁은 송현방(한국은행 본관자리)에 있다가 1908년 육상궁 안으로 옮겼으며,
숙종의 후궁 희빈장씨(경종의 생모)의 대빈궁은 경행방(낙원동)에 있다가 1908년 옮겼으며,
영조의 후궁 영빈이씨(추존왕 장조-사도세자의 생모)의 선희궁은 신교동(서울맹학교 자리)에 있다가 1908년 옮겼으며,
정조의 후궁 수빈박씨(순조의 생모)의 경우궁은 양덕방(계동 현대사옥 자리)에 있다가 1908년 옮겼으며,
고종의 후궁 순헌귀비엄씨(영친왕의 생모)의 덕안궁은 태평로1가 서울시의회 자리에 있다가 1929년 가장 나중에 옮겨 모신 사당입니다.
그런데 몇십년전의 일을 회상해 보면,
칠궁은 사직단과 마찬가지로 도로개설 등 여러 사유로 영역이 많이 침해되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1968년 1.21 사태때 칠궁 담장 밖에서 무장공비들과 총격전이 있었지요.
그래서 1970년대에 세검정고개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통하는 창의문로 도로를 개설하였고 이때 영역을 크게 침범하며 축소되었으며 덕안궁과 나란히 있던 사당 3동이 뒷편으로 이전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덕안궁은 앞에 홀로, 나머지 3동은 뒷편에 나란히 있는 이상스런 모양새가 된것 입니다.
또한 1978년 청와대 영빈관 신축시에도 칠궁 영역이 일부 침범되어 훼손된바 있었습니다.
그래도 칠궁이 이만큼이라도 잘 보존된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답사후에는 인왕산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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