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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慶熙宮)의 옛 터는 '종로구 신문로2가' 행정구역과 대부분 일치.강바람의 유적답사 2020. 10. 18. 09:53
경희궁(사적 제271호)을 답사하면서 과연 옛 터는 어디까지 였을까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어 현장을 확인하고 각종 기록을 추적해 본 결과 '종로구 신문로2가' 행정구역과 대부분 일치하였습니다.
다만 옛 돈의문이 있었던 언덕 주위(현 돈의문 박물관마을)는 당시에도 민가가 있었더군요.
옛 서울중고등학교 자리에 있었던 경희궁은 궁궐 자체가 워낙 크게 훼손된 역사가 있어 다른 궁궐에 비해서는 관심조차 거의 없는 편이지요.
거의 경복궁에 버금갈 정도로 규모가 컸던 경희궁은 근래 일부 복원이 되었지만 원래의 규모에 비하면 턱도 없는 실정.
경희궁은 조선 후기 들어 전각의 대부분이 경복궁 복원을 위한 자재로 뜯겨져 나갔고, 일제때에는 몇동 남은 전각마져 민간에게 팔려 나간 후 그 자리에는 학교가 들어서고 일부는 도시계획으로 도로에 편입되였으며 또한 터의 상당 부분은 민간에게 택지로 매각되기도 하였습니다.
불과 100년전 만 해도 어느 정도의 흔적이 있었지만 그야말로 갈기갈기 찢겨 나가 궁궐의 모든게 사라져 버린것 입니다.
현지 안내자료에 의하면,
「경희궁은 조선 광해군 때인 1617년에 짓기 시작하여 1620년에 완성하였다.
처음에는 경덕궁(慶德宮)이라고 불렀지만 원종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발음이 같아 경희궁으로 바뀌었다. 또한 도성 서쪽에 있어 서궐(西闕)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동궐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비되는 별칭이다.
경희궁은 대지의 형세를 반영한 특이한 형태의 궁궐이다. 광해군은 새 궁궐을 빨리 짓기 위해 대지의 경계를 정하고 공사를 시작한 탓에 땅의 모양이 동서로 길고, 건물도 외전과 내전이 좌우로 배치되었다. '서궐도안'에서 볼수 있는 전각과 문은 약 190여 개이며, 정문인 흥화문은 남향이 아니라 종로와 마주 보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경희궁은 일제강점기에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건물 대부분이 헐렸고, 면적도 절반 정도로 줄어 들어 궁궐의 모습과 위상을 잃었다. 현재는 발굴을 거쳐 정전인 숭정전과 자정전, 태령전 세 전각이 복원되어 있다.」
현지 '경희궁 사람들' 자료에는,
「경희궁에 살았던 왕은 인조에서 철종까지 10명에 이른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 머물렀던 왕은 영조이며 또한 13년간 머물렀던 숙종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1625년 경현당에서 행해진 소현세자 관례를 시작으로 경종과 정조가 이곳에서 즉위했으며, 숙종과 헌종의 가례가 치러졌고, 숙종을 비롯하여 영조와 순조가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숙종부터 정조 즉위까지 경희궁은 최전성기였으며, 왕을 비롯하여 왕비와 후궁들이 생활한 일상공간이었다. 인현왕후, 희빈장씨, 혜경궁홍씨도 경희궁에서 살았던 대표적인 왕족이다.」
경희궁 부침의 역사를 살펴보면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인데요.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에 걸쳐 시도때도없이 역사를 망각한채 경희궁을 훼손하였으니 도대체 원래의 터가 어디까지 인지 파악조차 어려운 실정입니다.
하나하나 정리해 보자면,
1) 조선 후기
19세기 들어 헌종, 철종은 재위 대부분을 창덕궁에서 지내며 경희궁을 이용하지 않아 쇠퇴의 길로 접어 들었으며,
1865년 고종때, 경복궁 중건을 위해 5동을 제외한 전각의 대부분이 헐리면서(남은 5동은 숭전전, 회상전, 흥정당, 흥화문, 황학정) 경희궁은 기능을 상실한채 점차 폐허상태로 변모.
2)일제 강점기
경희궁 빈터에 1910년 일본인을 위한 경성중학교 건립하고,
1915년 신문로를 새로 내면서 도로부지에 많이 잠식당하고 흥화문은 윗쪽으로 이건하였으며,
1926년에 숭정전, 1928년에 회상전과 흥정당, 1932년에 흥화문 등 남은 5동의 전각들이 민간에게 매각되어 경희궁의 전각은 완전히 사라짐.(정전 숭정전은 사찰에 매각되었다가 현재 동국대 정각원, 정문 흥화문은 박문사에 매각되었다가 1988년 제자리로 이건)
1922년에 동쪽의 21,500평이 전매국관사 부지로 매각되고, 1927년에는 남쪽 도로에 접한 부분 41,320평을 매각되어 궁궐터의 상당 부분이 사라지게 됨.
1932년 북쪽의 동산에 중앙기상대(기상청) 건립.
3) 해방 이후
1974년 경희궁터는 서울시교육청에서 현대에 매각.
1980년 서울고교 강남이전후 현대사옥으로 사용하였으며 서쪽에는 서울시교육청 건립,
여론이 악화되자 1985년 서울시에서 현대건설부터 터를 매입, 1988년 시립미술관 개관.
1985년 발굴조사후 1991년에 숭정전, 1998년에 자정전, 2000년에 태령전 일원을 복원. 2002년 금천교 복원
1997년 시립미술관, 2002년 서울역사박물관 건립하여 궁궐터를 크게 훼손 함.
경희궁의 역사를 살펴보면 조선 후기부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 이후에도 계속 파괴되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
정부에서는 시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도저처럼 궁궐터에 박물관, 교육청, 미술관 등 공공건물을 계속 지었습니다.
근래 경희궁 복원여론에 따라 장기계획을 수립하기도 했으나 현재 중단된 상태인데요.
완벽한 복원을 이루려면 매각된 토지를 다시 매입해야 하는등 사업자체가 너무 방대해져 않하느니만 못하니
적어도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시교육청, 기상청, 방공호 등은 최우선으로 이전시키거나 철거하여 하나씩 제 모습을 찾아야 겠습니다.
정부나 서울시의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사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궁궐로서 또 시민공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할수 있도록 정부의 의지와 노력을 기대합니다.
경희궁은 일제강점기 이후 계속된 잠식으로 면적은 거의 절반 이하로 줄어든 상태.
확인해 보니 신기하게도 옛 경희궁터는 현재의 '종로구 신문로2가' 행정구역과 일치합니다.
현재의 행정구역이 일제강점기때 조선총독부령으로 공포한 내용을 근간으로 하는데 1914년 서대문2정목이 되었다가 그후 서대문정2정목으로 바뀌었고 해방후 1946년 신문로2가로 바뀐바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신문로2가는 경희궁 옛터를 기준으로 하여 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제강점기 들어 경희궁은 공공건물이 들어서거나 민간에 매각되어 크게 잠식되었는데요.
동쪽의 전매국관사가 들어선 송곡미술관 주위 일대 민간에 매각,
서쪽엔 기상청이 들어서고 현재 돈의문박물관 마을이 있는 지역은 매각,
남쪽은 새문안로 개설, 확장 등으로 잠식되고 덕수궁에 접한 일부는 민간에 매각,
북쪽으로 돌출된 부분도 민간에 매각되었으며,
중앙부 대부분에는 일본인 자제를 위한 경성중학교가 세워지며 경희궁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정문인 흥화문은 예상과 달리 원래 구세군회관(종로구 새문안로 69)이 있는 곳에 동향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흥화문을 들어서 금천교를 건너 서쪽으로 곧장 난 길을 따라 걷다가 오른쪽으로 꺾여 정전인 숭정전 영역으로 들어갈수 있게 하였지요.
지형에 맞추어 조성했기 때문에 다른 궁궐는 배치형태가 확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흥화문은 일제때인 1915년 신문로 확장공사 여파로 현재의 위치에서 옆으로 조금 옮겨져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가 1932년 장충단에 있는 박문사에 매각되었으며 해방후 신라호텔 정문이 되었다가 198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온것 이지요.
복원된 숭정전 영역에 대한 답사를 마친후 경희궁터의 훼손현장과 민간인에게 매각된 부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매각된 전매국관사 부지는 경희궁의 동쪽에 해당되는 성곡미술관, 한국프로축구연맹, 서울시교총연합회, 구세군회관 등이 위치한 신문로2가 지역으로 추정되나 더 조사가 필요한 실정.
2002년 발굴결과를 토대로 복원하였다는 금천교는 고개가 갸우뚱?
'서궐도안'과 비교해 보면 위치도 방향도 맞지가 않으니 이건 복원이 아니라 서울역사박물관 주진입로를 만들려고 복원흉내만 낸것으로 볼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몇십년전 서울중고교가 있을 당시만 해도 현재 금천교 위치는 운동장 끝 부분이었으며 구석진 약 2m 아래에는 경희궁 당시의 예쁜 샘이 있었습니다.
운동장에서 뛰어 놀던 학생들이 그 물로 땀을 씼기도 했는데요.
화강암으로 섬세하게 물길을 조성하여 시각적으로도 매우 우수하여 문화재 가치가 무척 높았던 샘이었는데 금천교 복원을 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네요.
금천교도 위치나 방향이 맞지않고 유서 깊은 샘터만 없애버린게 아닌지 착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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