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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서 이항로 생가와 노산팔경 탐방기강바람의 유적답사 2022. 11. 13. 10:19
가을이 깊어가는 2022년 11월 초,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에 위치한 화서 이항로 생가를 찾았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유학자이자 위정척사(衛正斥邪)를 대표하는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1792~1868) 선생은 스승없이 독학으로 학문의 경지를 이룬 분.
서양문물의 침투를 배격한 방파제였으며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정면으로 공격한 당대의 직언자이기도 하며
또한 일생을 바쳐 민족정기 수호와 한민족의 주체성을 굳게 지키신 분입니다.
조선 말기 위정척사론을 주도했던 최익현, 김평묵, 유중교, 양헌수, 유인석 등이 모두 그의 문하이며, 이들을 화서학파라고 부르기도.
잡 앞을 흐르는 벽계천은 무척 맑고 아름답지요.
이항로 선생이 벽계천과 집 주변의 승경지 9곳을 벽계구곡(蘗溪九曲)이라고 부르고 은둔생활도 추구했던 곳인데 바위글씨도 남아 있어 찾아볼만 합니다.
제1곡부터 9곡까지의 벽계구곡은 외수입(外水入), 내수입(內水入), 정지(亭地)터, 용소(龍沼), 별소(鼈沼), 분설담(噴雪潭), 석문(石門), 속사천(續斜川), 일주암(一柱巖).
이와 별도로 노산팔경(盧山八景)도 있는데 선생이 경치 좋은 곳을 골라 문인들과 산책을 하거나 피서와 함께 강론을 펼치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노산팔경은 제1경 제월대의 밝은 달, 제2경 명옥정의 맑은 바람, 제3경 묘고봉의 높이 나는 솔개, 제4경 자라소의 뛰노는 물고기, 제5경 분설담의 꽃과 돌, 제6경 석문의 절벽, 제7경 태극정의 산수, 제8경 일주암의 기암괴석.
구곡과 팔경을 따로 정한 선생의 의중을 알기 어렵지만 경계가 서로 모호한채 중첩되는 곳도 여러곳 보입니다.
양평군에서는 4년전 이항로 선생의 생가를 출발해 일주암까지 벽계천을 따라 노산팔경둘레길을 조성하였습니다.
물 맑고 아름다운 벽계천을 따라 기암괴석과 가을단풍을 즐기며 벽계구곡과 노산팔경을 탐방할수 있어 아주 좋았는데요.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벽계천에서 화서 이항로 선생의 숨결을 느낀 하루였습니다.
벽계천을 따라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에 위치한 화서 이항로 생가를 찾아 갑니다.
느티나무가 늘어선 화서마을(벽계마을) 입구.
너무나 깊은 심산유곡이라 이 세상이 아닌것 같은 착각에 빠지네요.ㅎㅎ
노산(盧山) 아래에 남향으로 자리한 이항로 선생의 생가인 청화정사(靑華精舍).
200여년 전에 그의 부친이 지었으나 6.25 사변을 겪으며 훼손된 것을 1984년에 복원하였으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정남향에 안채 15칸과 사랑채가 딸려 있으며 방이 여러개인 오른쪽의 사랑채에서 후학들을 양성했다고.
청화정사(靑華精舍) 현판이 걸려 있는 ㄱ자 모양의 안채.
생가 옆에 건립한 벽계강당(蘗溪講堂).
원래 있던 건물은 아니고 그가 서원을 건립할 의도로 구상하여 화서집에 기록한 도면에 의해 2000년에 세운 건물.
노산사 언덕에서 바라본 노문리 이항로 생가와 벽계마을(화서마을).
그는 여러 차례의 벼슬도 마다한채 이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후학들을 양성했다고 합니다.
묘소가는 길에 만나는 노산사(盧山祠).
노산사 앞 언덕에 있는 제월대(霽月臺) 바위글씨.
이항로 선생의 필적을 새긴 글씨로 노산팔경의 제 1경 '제월대의 밝은 달'인데 제월은 비가 개인후 밝은 달이라는 의미로 사람의 본성을 회복하여야 함을 뜻한다고.
진품은 화서기념관 안에 있고 이곳은 복제품.
노산사는 생전에 주희, 송시열을 흠모하여 영정과 위패를 모시던 사당으로 6.25 사변때 소실되었으나
현재의 노산사는 1954년 유림들이 옛터에 다시 지은 사당으로 경기도 기념물 제43호.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니 이항로 선생 묘소.
원래는 10리쯤 떨어진 정배리 통정골 야산에 있었으나 근래 노산 자락으로 이장했다고.
묘소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풍경.
아래 좌측의 마을에 가까운 작은 산이 묘고봉(妙高峰).
풍수학자들은 묘고봉의 정기로 선생이 태어났다고 말할 정도로 산모양이 오묘하게 생겼는데요.
벽계천이 휘돌아나가는 묘고봉은 일찌기 선생이 노산팔경의 '제3경 묘고봉의 높이 나는 솔개'로 정했습니다.
생가 옆에 있는 화서기념관.
조선의 마지막 유학자인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1792~1868) 선생은 스승없이 독학으로 학문의 경지를 이룬 분.
서양문물의 침투를 배격한 방파제였으며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정면으로 공격한 당대의 직언자이기도 하며
또한 일생을 바쳐 민족정기 수호와 한민족의 주체성을 굳게 지키신 분.
조선 말기 위정척사론을 주도했던 최익현, 김평묵, 유중교, 양헌수, 유인석 등이 모두 그의 문하이며, 이들을 화서학파라고 부르기도.
노산사 앞에 있던 제월대(霽月臺) 바위글씨 진품.
이항로 선생의 필적을 새긴 글씨로 노산팔경의 제 1경 '제월대의 밝은 달'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분실을 우려하여 기념관 안으로 옮겨놓은것 같네요.
면암 최익현이 1896년 6월에 쓴 안부편지.
일본의 내정간섭과 이에 영합하는 관료를 규탄하고, 단발령 등 개혁조치를 비판하는 내용이라고.
화서문집.
화서 사후 문인들이 선생의 글을 모아 편찬한 시문집.
생가 앞을 흐르는 벽계천은 물이 무척 맑고 아름답지요.
그런데 갑자기 벽계천에 펼쳐진 노산팔경까지 탐방하여야 겠다는 욕구가 생기니 웬일인가요~~??
그동안 몇차례 생가를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노산팔경을 탐방하려는 생각은 미쳐 하지 못했거든요.ㅎㅎ
제1곡부터 9곡까지의 벽계구곡은 외수입(外水入), 내수입(內水入), 정지(亭地)터, 용소(龍沼), 별소(鼈沼), 분설담(噴雪潭), 석문(石門), 속사천(續斜川), 일주암(一柱巖).
노산팔경은 제1경 제월대의 밝은 달, 제2경 명옥정의 맑은 바람, 제3경 묘고봉의 높이 나는 솔개, 제4경 자라소의 뛰노는 물고기, 제5경 분설담의 꽃과 돌, 제6경 석문의 절벽, 제7경 태극정의 산수, 제8경 일주암의 기암괴석.
구곡과 팔경을 따로 정한 선생의 의중을 알기 어렵지만 경계가 서로 모호한채 중첩되는 곳도 여러곳 보입니다.
벽계천에서 먼저 만나는 노산팔경의 제2경, '명옥정의 맑은 바람'.
하천 옆에 명옥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사라졌으며 바위에 '鳴玉亭' 바위글씨만 남아 있는 상태.
이항로 선생의 필적인 제2경의 낙지암(樂志岩) 각자.
개울 속의 큰바위에 초서로 새긴 낙지암은 자연의 참뜻을 즐긴다는 의미라고 하니 개울속의 큰 바위에 올라 마음을 달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에 붙여진 이름같습니다.
벽계천의 노산팔경힐링둘레길을 따라 상류로 걸으며 노산팔경을 계속 탐방하기로.
제2경에서 가까운 제5경 분설담의 꽃과 돌.
벽계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 .ㅎㅎ
온갖 기암들이 신비로운 모습을 자아내는 벽계의 분설담.
바위글씨가 보이는 제5경 '분설담의 꽃과 들'.
역시 이항로 선생의 필적을 전서체로 새긴 '분설담(噴雪潭)' 바위글씨.
일반인들은 바위글씨를 읽기가 어려울 정도로 물살에 마모된 상태.
분설은 급류가 돌에 부딪쳐 내뿜는 광경이 마치 하얀 눈을 뿌리는 것과 같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니 정말 운치가 있는 이름이네요.
하천바닥에서 솟구쳐 오른 분설담의 기암들.
묘고봉 서쪽의 벽계에서 만난 제6경 '석문의 절벽'.
예전에는 커다란 바위가 개울까지 내려와 있었다는데 길을 내려고 축대를 쌓으며 메꾸어 원형이 다소 상실된 모습.
'石門' 글씨가 새겨져 있으나 확인치 못하는 실수.ㅎㅎ
그런데 제8경 일주암은 어디에 있나요?
둘레길을 따라 아무리 걸어봐도 일주암이 보이질 않네요.ㅎㅎ
여기는 이항로 선생의 생가에서 약 2km나 떨어진 벽계천 곡달계곡.
좌우에 야영장이, 캠핑장이 여럿 보이고 경관도 무척 뛰어나니 벽계천은 어딜 봐도 아름답네요.
흐미, 계곡 안쪽에 일주암이 있다는데 가도가도 끝이 않보이네요.ㅎㅎ
갑자기 바위가 많은 산위로 올라가야 하는 위험한 코스.
'노산팔경힐링둘레길' 리본.
이렇게 깊은 산속까지 찾아오는 사람이 있나요~~??
오호, 드디어 찾아낸 일주암~~!!
노문리의 동쪽 끝 산속에 있는데 높이가 20여 m나 되어 우뚝 선 모습에서 선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깊은 계곡의 산속에서 찾은 일주암.
벽계천 깊숙한 곳에 은밀할만큼 높게 솟은 바위기둥이 있다니 정말 놀라 혼절한 정도네요.ㅎㅎ
이항로 선생이 심산유곡의 이곳까지 찾아와 노산팔경의 제8경으로 지정한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
오늘은 갑자기 주마간산격으로 대충 둘러봤으니 언제 시간을 내어 벽계구곡과 노산팔경의 전모를 답사하기로 굳게 언약하며 답사를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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