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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영평군(永平郡) 관아터와 선정비강바람의 유적답사 2023. 2. 2. 19:34
경흥길을 걸으며 포천의 역사를 살펴볼 기회를 가졌는데요.
영중면을 비롯한 포천의 북부지역에는 1세기 전만해도 포천군과는 별개의 영평군이 있었습니다.
특히 영중면 영평리에는 영평군 관아와 영평향교가 있어 읍내로 불리었는데 불무산 남쪽에 너른 농지를 품고 있는 지역으로 영평천이 흐르고 교통이 매우 편리한 곳이지요.
영평군은 영중, 일동, 이동, 영북면 지역을 관할하다가 일제때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포천에 통합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지요.
경흥길을 걷던중 영중면 영평리를 방문하여 관아와 향교의 옛 터를 찾아 보았는데요.
관아가 있던 자리에는 영평초교가 들어섰고 향교는 사라지고 없었으나 교문 앞에는 역대 군수, 관찰사 등의 선정비들이 남아 있어 옛날 영평군의 읍치였음을 말해주고 있더군요.
일제의 우리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관아를 파괴하거나 1945년 해방 이후에는 북한치하였다가 6.25 사변때에는 치열한 격전지였으니 역사의 흔적은 아예 남아있을수가 없을것 같았습니다.
사라진 영평군의 역사를 잠시 살펴본 하루였습니다.
영평천에서 바라본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
불무산 남쪽에 너른 농지를 품고 있는 지역으로 영평천이 흐르고 교통이 매우 편리한 곳인데요.
1세기 전만해도 영평군 관할이었고 영평군청과 향교가 있던 곳으로 1945년 해방 이후에는 북한치하였다가 6.25 사변 이후 수복된 역사가 있습니다.
영평군의 읍치가 있었고 전곡, 문산과 포천, 철원으로 통하는 도로가 지나는 영평삼거리.
옛 영평군의 관아터에 들어선 영평초등학교.
1907년 처음에는 사립으로 개교하였다가 1910년 공립으로 개편되어 영평공립보통학교가 된 역사 깊은 초등학교지요.
포천지역에서는 제일 먼저 개교하여 학생수가 바글바글했다고.ㅎㅎ
영평군 관아터였지만 교문이 굳게 닫혀 있어 당시의 유구를 찾아 보기가 어려운 실정.
영평초교는 역사가 110년이 넘었지만 학생수가 적어 지난해 폐교되었다고.
영평군의 유일한 유구로 남아 있는 영평리 선정비(포천시 향토유적 제 39호).
영평리에 흩어져 있던 역대 군수들의 선정비들을 학교 앞에 모아 두었네요.
영평초교 앞에 세운 선정비 5기와 영평향교유허비.
선정비는 조선 후기 영평군에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던 역대 군수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지백 선정비인 성주이공지백청간선정비(城主李公知白淸簡善政碑).
김굉집 선정비인 관찰사김공굉집영세불망비(觀察使金公宏集永世不忘碑).
김굉집은 개화파인 김홍집(金弘集, 1842~1896)의 초명이며 고종 21년(1884) 4월, 재임중에 세웠다고 합니다.
김홍집은 구한말 총리대신으로 내우외환에 시달리던 나라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최고의 정치외교관이었으나 백성들에 의해 살해되는 비운을 당한 분이지요.
2011년에 세운 영평향교유허비(永平鄕校遺墟碑).
유허비(遺墟碑)는 선인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 그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를 말하지요.
향교는 관아터에서 700m 거리인 영송리 산64번지에 있었는데 6.25 사변때 훼손되었다고 전합니다.
2010년에 세운 영평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탑.
영평리는 주변의 군사격장 등으로 사람살기가 어려워지면서 마을이 침체되고 학생수가 줄면서 역사 깊은 초등학교가 폐교까지 되니 무척 아쉬운 일이 아닐수 없네요.
옛날 번성하던 영평은 언제 다시 영화를 되찾을수 있을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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