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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싸인 하남 천왕사(天王寺)터 답사기강바람의 유적답사 2023. 3. 10. 08:42
하남시 하사창동 65-4에 있는 천왕사(天王寺)터~~!!
천왕사터는 객산 아래 서쪽에 덕풍천과 골말천에 둘러싸인 평지에 자리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베일에 가려진 절터지요.
옛 문헌에는 기록이 부족한 실정이나 고달사 원종국사탑비에 고려 태조가 원종국사(元宗國師, 869~958)를 천왕사 주지로 임명했다는 글이 있으니 고려 초기 이전부터 있던 매우 중요한 사찰이었음을 알수 있지요.
그러나 천왕사의 규모 등 실체를 밝혀낼만한 자료가 없고 언제 폐사되었는지도 모호하지만 일제때 국내 최대의 철불이 발견되고 목탑심초석이 남아 있는걸로 볼때 대찰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일제 조선총독부 자료에 의하면 "하사창동에 폐사지가 있고, 객산의 서쪽 기슭의 논 가운데에 낮은 토단이 있으며 , 철불이 이곳에서 옮겨졌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철불이 발견된 이후 하사창동 절터라고만 알려졌지만 1999년 세종대박물관에서 실시한 유적분포조사에서 '천왕(天王)'이라는 명문기와를 발견함으로써 천왕사터로 확인되었습니다.
본래의 천왕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객산 아래, 백제때는 하남위례성이 있었고 고려때의 광주목의 읍치가 있던 중심지에 자리한 대찰로서 국왕의 지원을 받는 왕실사찰이었고 절이름마져 천왕사였으니 그 위상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건 절터에 목탑심초석이 남아 있다는 점~!
2001년 문화재보호재단에서 의해 땅속에서 발굴한 목탑심초석인데 초석은 무척 커서 1.4mX1.4m나 되며 초석 가운데에는 사각사리공이 있어 옛날 대목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더군요.
경주 황룡사, 익산 미륵사, 남원 실상사에 있는 목탑심초석이 이곳에도 있으니 무척 놀라운 일인데 발굴 당시 목탑심초석 외에도 11개의 초석이 발견되었지만 일반 초석은 어이없게도 모두 망실된 상태.
그도그럴것이 옛부터 절터에 있던 초석, 기단석 등은 대부분 주위의 민가에서 가져갔는데 철불의 대좌는 장독대 받침으로 사용되기도.
전반적인 확인작업을 거쳐 기증이나 반환을 받으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이며,
아직도 사적지 지정이 않되어 절터 관리에 비상이 걸려 있는 실정이므로 더이상 비닐하우스나 창고 등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조속 문화재지정이 필요해 보이구요.
그리고 이 일대에 교산신도시가 조성될 예정이므로 이 참에 전반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그 실체를 밝혀내고 향후 관리방안도 마련해야 할것 입니다.
베일에 싸인 천왕사터에 대한 관심이 더욱 필요한 시기입니다.
덕풍천을 따라 천왕사터를 찾아 가는 길~!
천왕사터가 위치한 하남시 하사창동.
그런데 찾아가는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진작부터 꼭 찾아보리라 마음 먹고 있었는데 세월이 많이 흐르도록 뭘 하고 있었는지.ㅎㅎ
객산 서쪽의 하사창동은 30년전만 해도 군데군데 자연마을에 농경지가 대부분인 시골이었지만 지금은 주택, 창고, 비닐하우스가 가득한 실정.
덕풍천의 지류인 골말천을 따라 사미고개 방향으로 올라 가다가,
물어물어 화훼농가의 비닐하우스 단지 안으로 들어가니,
오호, 천왕사터~!
객산 아래 서쪽에 덕풍천과 골말천에 둘러싸인 평지에 자리하고 있었네요.
그런데 이곳을 찾아오기가 왜 그리 힘들었을까요!
몇십년을 벼르다가 오늘에야 찾으니 감격스러움보다는 죄스러움이 가득.
절터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천왕사 목탑심초석(木塔心礎石)~!
목탑심초석은 목탑의 심주를 받치는 기둥받침돌로 일반적으로 사리가 봉안되는 장소이기도 하지요.
이 자리에 목탑이 있었다면 철불이 있던 곳은 어디였을까요?
전체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 그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할수 있겠지만 주택, 창고, 비닐하우스 등이 크게 잠식하여 발굴도 쉽지않은 실정.
그나마 다행스러운건 덩치가 작았으면 벌써 망실되었겠지만 크고 무겁기 때문에 아직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생각.
1.4mX1.4m( 노출된 높이 0.53m)나 되는 대형 목탑심초석이니 무척 놀라운 일.
경주 황룡사, 익산 미륵사, 남원 실상사에 있는 목탑심초석이 이곳에도 있으니 천왕사의 위상을 추측해 볼수 있는 거지요.
물이 고여있는 심초석 사리공(바깥 0.41x0.41, 안 0.31x0.31m)
네모난 사리공 안에 사리함을 안치했었을텐데 모두 사라진채 사리를 옮긴 얘기만 전해집니다.
고려사절요(1366)에 의하면 "광주 천왕사의 불사리를 맞이하여 왕륜사에 두었다"고 했으며, 세종실록(1446)에 의하면 "광주 천왕사의 사리 열개를 궐내에 바쳤다"는 글이 나오는데요.
폐사가 되면서 사리가 옮겨졌는지 여부는 알수는 없지만 적어도 조선 초기까지는 절이 있었음을 확인할수 있습니다.
천왕사터에 있던 고려 철불(보물 제322호) ~!.
일제강점기인 1911년 허리 부분까지 잠긴채 하사창동 절터에 있던 것을 덕수궁 이왕가박물관으로 옮겼고 손상된 양 귀의 끝부분과 콧등, 두 손을 보수한 적이 있고 1960년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수리되었다고 합니다.
통일신라 불상양식을 충실히 계승한 고려 초기의 철불로 앉은키가 2.88m나 되어 현존 철불중 최대 규모이며 조각솜씨, 균형감각이 뛰어나 아름답기까지.
일제때 절터에서 옮겨져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고 사진은 하남역사박물관에 있는 재현품.
어렸을때 덕수궁에 있던 중앙박물관에서 어마어마하게 크고 검은색의 철불을 보고 무서워했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근래 제자리를 찾은 철불의 대좌 하대석.
전체적인 형태는 8각형이고 연꽃무늬가 우아하게 새겨져 있는 모습.
대좌는 하사창동 117-3, 민가에 있던 것으로 안영환씨가 2014년 하남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고.
하사창동 절터에서 출토된 "천왕(天王)" 명문 토기.
이로서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천왕사터의 위치가 비로소 밝혀지게 되었지요.
천왕사터에서 출토된 도깨비무늬 암막새.
앞으로 천왕사터는 보존과 개발 사이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관심이 큰데요.
이 일대에 교산신도시가 조성될 예정이므로 천왕사터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지 또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목탑심초석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천왕사터에서 맞이한 거대한 목탑심초석은 감동 그 자체 ~~!!
창고건물, 비닐하우스에 둘러싸인 하남시 하사창동 65-4, 천왕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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