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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전주 경기전(慶基殿) 탐방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5. 2. 14:36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가 102에 위치한 경기전을 오랜만에 찾았습니다.
전주(全州)는 전주이씨의 관향이며 조선왕조의 발상지로서 태조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 시조의 위패를 모신 조경묘와 조선왕조실록을 모신 전주사고가 있는 가장 신성하고 위엄있는 곳입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을 모신 경기전은 1410년(태종 10) 창건하였는데 경기(慶基)는 조선왕조가 일어난 경사스런 터를 의미합니다.
경기전은 1597년(선조 30) 일어난 정유재란때 불에 타 사라졌지만 1614년(광해군 6)에 다시 중건한바 있으며 1676년(숙종 2)에는 옛 전주사고 자리에 별전을 세워 유사시 태조의 어진을 임시로 모시는 역할을 했습니다.
전란이 일어날때마다 어진은 피란길을 떠났는데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어진은 선조가 피난하던 의주의 행재소로 옮겨졌고, 1636년 병자호란때에는 무주 적상산으로 옮겨져 병화를 면한 적이 있으며 동학혁명때에는 가까운 위봉산성으로 옮겨지기도 했습니다.
애초 경기전에 안치되었던 어진은 전해지지 않으며 현재 모셔진 어진은 1872년(고종 9) 서울 영희전의 어진을 모본으로 하여 새로 그린 것입니다.
경기전은 일제때에 부속건물과 별전을 헐고 일본인소학교를 세운 적이 있었으나 근래 다시 복원하여 옛 모습을 찾았습니다.
경기전 경내에는 북쪽에 조경묘(肇慶廟), 동쪽에 조선왕조실록을 봉안했던 전주사고, 예종의 탯줄을 묻었던 태실 등의 유적이 있습니다.
조경묘는 1771년(영조 47)에 세운 전주이씨의 시조인 이한과 시조비 경주김씨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던 조선왕조의 시조사당으로 조경(肇慶)은 조선왕조 창업의 경사가 시작되다라는 뜻을 담고 있지요.
조경묘는 태조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 이한의 묘역인 조경단, 태조의 고조할아버지인 목조가 살던 이목대와 함께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원지임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전주사고는 조선왕조실록을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전란속에서도 잘 지켜낸 곳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때에는 춘추관, 성주, 충주의 사고는 모두 불타버렸으나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안전한 내장산 등으로 수차례 옮겨 무사히 보존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전주선비들의 투철한 사명감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영원히 조선왕조실록을 볼수 없었겠지요.
전주사고의 실록각은 1597년 정유재란때 소실된 것을 1991년 복원한 것 입니다.
오랜만에 전주의 상징, 경기전을 찾았습니다.
경기전과 조경묘 배치도.
1870년대 완산부지도의 경기전, 조경묘.
지금은 관리편의상 경기전과 조경묘가 같은 구역이지만 예전에는 각기 독립된 구역임을 표시하고 있으며
전주부성의 성곽, 별전(別殿)이 보이지않을뿐 지금과 거의 같아 보입니다.
정문을 들어서면 홍살문 안으로 보이는 외신문(外神門).
경기전의 정전으로 들어가는 내신문(內神門).
경기전 정전.
좌우대칭이 뚜렸하고 맞배지붕을 하여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가 우러 나옵니다.
정전 앞의 정자각 모습을 한 헌(軒)은 제례공간.
정전 안의 어진실에 봉안된 태조 이성계 어진.
익선관에 청색 곤룡포를 입고 용상에 앉아 있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
현재 경기전에 모셔진 어진은 1872년(고종 9) 서울 영희전의 영정을 모본으로 하여 새로 그린 것이며 진본(국보 제317호)은 어진박물관에 있습니다.
부채, 우산 등으로 보이는 물건들은 고종때 모사본을 경기전으로 옮겨올때 사용했던 기구로 보입니다.
본전과 헌(軒), 익랑(翼廊)으로 이루어진 경기전.
경기전의 우아한 와룡매.
2월 하순이 되면 청매화를 볼수 있을텐데 아쉽기도 하지만 둥그렇게 휘어진 와룡매만 보아도 아주 특이한게 멋지네요.
경기전 안에 있는 전주사고.
1592년 임진왜란때에는 춘추관, 성주, 충주의 사고는 모두 불타버렸으나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안전한 내장산 등으로 수차례 옮겨 무사히 보존할수 있었습니다.
전주사고에 걸린 실록각 현판.
전주사고의 실록각은 1597년 정유재란때 소실된 것을 1991년 복원한 것 입니다.
경기전 북쪽에 위치한 조경묘.
조경묘는 전주이씨의 시조인 이한과 시조비 경주김씨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던 조선왕조의 시조사당으로 조경(肇慶)은 조선왕조 창업의 경사가 시작되다라는 뜻을 담고 있지요.
내신문(內神門) 안에 조경묘가 있지만 출입금지 상태.
전주는 전주이씨의 관향이며 태조 이성계의 고조인 이안사가 강원도 삼척을 거쳐 함경도 의주로 옮겨갈때까지 전주이씨가 대대로 살던 곳.
조경묘에 있는 부속건물들.
경기전, 조경묘를 포함한 동쪽의 넓은 녹지대.
조선 8대 예종의 태를 묻은 태실과 태실비.
1970년, 경기전 안으로 옮겨진 예종대왕 태실.
원래는 완주군 구이면 원덕리 태실마을 뒷산에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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