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옛길, 봉화길 제3길 너른고을길을 걷다 --- 경기광주역~국수봉~곤지암역 13km강바람의 둘레길,옛길 걷기 2025. 2. 18. 07:24
2025.2/15(토) 경기옛길, 봉화길 제3길 너른고을길을 걸었습니다.
제3길은 경기광주역~국수봉~초월역~곤지암역까지 13km!
경기광주역에서 경안천을 조금 걷다가 국수봉에 올라 최근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장쾌하고 아름다운 광주를 보았습니다.
너른고을(넓은 고을)이라는 광주(廣州)는 원래 서울 한강 이남과 경기 용인, 과천, 시흥, 하남, 남양주까지 아우리는 무척 넓은 지역이었으며 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행정구역으로 광주부, 광주군, 광주시로 변천한 역사가 있지요.
도시확장으로 인해 자치단체가 계속 신설되면서 관할구역이 축소되며 2001년 광주군에서 광주시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국수봉 능선길을 걸어 하산하여 곤지암천을 만났는데요.
지난번 목현천을 걸어 경안천을 만났으나 이번엔 경안천의 지류인 곤지암천을 만났으니 광주를 골고루 적셔주는 생명수와 같더군요.
아름다운 곤지암천 수변산책로를 걸어 곤지암 바위를 보며 너무 옹색해진 환경에 안타까움이 컷으며 인근의 신립 장군 묘소를 답사하며 임진왜란때 억울하게 순국한 그의 넋을 위로하였습니다.
옛 선인들이 다니던 봉화로를 상기하며 참으로 상쾌하고 의미 깊은 옛길을 걸은 날이었습니다.
경기광주역에서 봉화길 제3길 너른고을길을 시작합니다.
경기광주역 앞에서 보는 경기옛길 안내판.
봉화길 제3길 너른고을길은 경기광주역~곤지암역까지 15km.
1,000년을 이어온 광주의 세월을 느껴보는 길이지요.
오호, 경안천 위에 멋진 보도육교가 놓였네요.
보도육교를 건너면서,
보도육교에서 바라본 경안천.
너른고을을 골고루 적셔주는 생명수요 시민들의 여가장소로 넘 좋아 보입니다.
경기광주역으로 들어오는 경강선 전철.
오호, 자네 하나가 이 지역의 교통난을 일거에 해소시키며 발전을 견인하고 있구나!
경안천을 건너 바라본 왼쪽의 보도육교, 오른쪽은 판교~여주를 잇는 경강선 철길.
근래 개통된 경강선이나 전용 보도육교나 국력을 실감케 하네요.ㅎㅎ
종합운동장 공사가 한창인 경안천 제방을 따라 걸으면,
광주 시내를 바라보고 있는 높이 363m의 칠사산(七士山).
칠사산은 고려말 한림학사 7명이 조선에 출사를 거부하며 은거하다가 순절했기에 붙여진 이름이지요.
산 오른쪽에서 경안천, 곤지암천이 합류하며 전망도 좋다고 하니 조만간 한번 올라보고 싶네요.
근래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광주, 아주 멋집니다.
상쾌한 경안천길을 약 1km 정도 걸으면 제방 위로 올라서 국수봉에 붙을 차례.
국수봉은 오랜 세월 바라만 봤지 오르기는 처음~~!!
쌍령동은 유서 깊은 마을이지요.
쌍령(雙嶺)은 산 아래 3번국도가 지나는 고개(대쌍령)과 초월에 있던 소쌍령이 연이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지요.
쌍령동 앞에는 경안천이 흐르고 번성하던 나루가 있어 배를 타고 건너면 경안장이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녔을가요!
쌍령동 마을길을 걸어 산밑에 도착하니,
봉화로와 우시장 이야기 스토리보드.
19세기에 들어오면서 한양의 쇠고기 수요가 증가하자 봉화로를 이용하여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소가 많았는데 경안역의 경안장과 삼전도의 송파장이 규모가 컷다고 하며,
경안장이나 송파장으로 가려면 두 길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새오개를 넘으면 광주 읍치를 들를수 있지만 경사가 가파른 점이 흠이었고 이배재를 넘는 길은 구불구불하고 도둑이 걱정되었다고.
본격적으로 국수봉을 오르자니,
이건 뭔 탑이여~~??
위령탑이란 말이 새겨진 걸로 보아 국수봉에서 돌아가신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한 독지가가 정성들여 쌓은 돌탑으로 보입니다.
경기옛길, 봉화로 리본은 항상 반가운 존재!
국수봉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네요. 헉헉~!
국수봉 능선에 올라 오늘 유일하게 만난 스템프함.
바람이 차고 몹시 추워 손이 곱았지만 스템프만은 아주 정확히.ㅎㅎ
능선길은 조금 더 걸으면 드디어 국수봉 정상!
국수봉(國守峰, 263m) 표석을 보니 병자호란때 국수봉 일대의 쌍령리에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허완(許浣)이 이끄는 일만여 군사가 청군과 용감히 싸웠으나 중과부족으로 패했다는 얘기.
그때 전투에서 승리했다면 삼전도의 치욕을 겪지 않았을텐데 분하기기 아를데 없네요.
순국하신 수많은 군사와 백성들에게 늦게나마 명복을 빕니다.
오호, 국수봉에서 시원스레 바라본 광주 시내~!
조선시대의 광주부(廣州府)에 비하면 관할 면적이 1/10 규모로 축소되었지만 최근 비약적인 발전으로 활기차 보이는 광주.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에 경안천이 중심부를 흐르고 3번 국도와 경강선, 세종고속도로까지 개통되니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
1,000년 역사에 봉화로가 지나고 광주의 중심부인 경안동(京安洞)에는 조선시대때 관원들이 말을 갈아 타던 경안역(京安驛)이 있었으며 마을 이름도 '역말'이었지요.
좌측의 큰쌍령 고개를 넘어 쌍령리 앞 경안천에서 배를 타기 위해 오가던 수많은 민초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는것 같습니다.
제2길때 걸었던 남한산성~검단산~검복리, 불당리, 오전리~새오고개~목현천~경안천 코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오늘 옛길지기로 함께 한 마눌과 함께!
능선길을 걸어 도평초교까지는 2.2km나 된다고.
국수봉의 부드러운 능선길.
동쪽으로 보이는 산은 무갑산(578m).
광주시민들의 산책로로 애용되고 있는 국수봉 등산길.
그런데 하산길이 넘 미끄럽네요.
겉은 녹고 안은 얼음이라 미끌미끌, 아찔아찔.ㅎㅎ
드디어 하산길이 끝날 즈음 보이는 도평초교, 건너편의 높은 산은 무갑산.
오호, 초월읍 도평리에서 만난 곤지암천!
곤지암읍 건업리에서 발원하여 광주를 골고루 적시며 흐르다가 초월읍 지월리에서 경안천에 합류하는 연장 24km의 곤지암천.
넘 싱그럽고 아름다운 풍경이네요.
초월읍 곤지암천변에서 만난 봉화로의 의미와 기능 스토리보드.
봉화로는 능행을 위한 어로(御路)뿐 아니라 조선왕조실록과 선원보를 태백산사고까지 나르기 위한 운반로 기능도 있었으며
또한 남한강이 결빙되거나 갈수기가 되어 배를 띄울수 없을때에는 수로의 대안길로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마치 봄이 온것처럼 맑고 싱그러운 초월의 곤지암천.
수변산책로인 봉화로를 걷자니 어느덧 앞에 보이는 경강선 초월역.
경기광주역에서 경안천을 건너며 지하로 들어갔던 전철이 초월역을 지나면서 다시 밖으로 내와 곤지암천을 건너네요.
곤지암천과 경강선과 나란히 달리는 봉화로 수변산책로.
앞에 중부고속도로를 만나며 곤지암읍에 도착.
역사가 깊고 교통요지였던 곤지암 구.시가지.
제3코스를 마무리하기 전에 꼭 봐야 할 곤지암 바위.
오호, 곤지암 지명이 있게 한 곤지암 바위.
곤지암(昆池岩)은 큰바위와 작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큰바위에 서있는 향나무 고목이 아주 기이할 정도.
바위 모양이 마치 고양이를 닮았다고 해서 묘(猫)바위라고 불렀으나 임진왜란때 순국한 신립(申砬) 장군의 시신을 광주로 옮겨 장사지냈는데 그 후로 바위 앞에 말을 타고 지나려 하면 말발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으므로 말에서 내려 걸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올곧은 선비가 신립 장군의 묘를 찾아가 왜 오가는 행인을 괴롭히느냐고 핀잔을 주자 갑자기 천둥소리와 함께 벼락이 바위를 내리쳐 두쪽으로 갈라지고 큰 연못이 생겼다고 하는데요.
이후로는 괴이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마을 뒷산 끝자락, 연못이 있는 곳의 바위라 하여 곤지암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실제로 신립 장군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곤지암 주변에는 본래 연못이 있었으나 일제때 메꾸어져 초등학교와 상가가 들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지요.
항시 볼때마다 상가에 둘러싸여 답답한 곤지암 주위를 넓게 확장하여 공원으로 말끔하게 정비하였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광주시장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곤지암 큰 바위에 뿌리를 내린 400년 된 향나무.
마치 향불을 피우듯 신립 장군의 명복을 비는 나무처럼 보이네요.
몸은 피곤하지만 마지막으로 곤지암천 건너편 야산에 있는 신립장군 묘소까지 답사하기로.
10여년 전에도 신립 장군 묘소를 찾은 적이 있었는데 농지였던 땅에 주택신축으로 들머리가 복잡해 졌네요.
부근에 곤지암역이 생겼으니 한적하던 농촌은 안녕!
10여년 만에 다시 찾은 신립 장군 묘소.
재실을 지나면 느티나무 고목과 현손 신완(申玩)신도비가 서있는 묘소 입구.
경사지를 오르니 능선상에서 만난 평산 신씨 묘역.
앵자봉(670m)의 한 줄기인 윗장고개산(300m)에서 뻗은 남쪽 능선상에 있는 모습.
모두 5분이 있는데 신립 장군 묘는 중간인 3번째에 위치.
곤지암읍 신대리 산15-1에 있는 조선 중기의 명장 신립(申砬) 장군의 묘.
묘비와 문인석, 동자석, 망주석, 상석 등이 정갈하게 갖추어진 모습이나 불행히도 장명등은 2010년에 도난 당했다고.
신립 장군은 조선 명종 1년(1546)에 출생하여 1592년 임진왜란때 충주에서 순국하신 분.
원래 용감한 장수로 여진족이나 왜구 침입시 토벌하는 등 큰 공을 세운 분이었으나 임진왜란때 삼도순변사가 되어 빈약한 병력으로 출전하여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대결하였으나 참패를 하자 강물에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역사가 있지요.
너무나 분하고 안타까운 일이네요.
"증영의정평양부원군행한성부판윤겸팔도도순변사신공립지묘(贈領議政平陽府院君行漢城府判尹兼八道都巡邊使申公砬之墓), 정경부인전주최씨부좌(貞敬夫人全州崔氏祔左)"라고 써진 신립 장군의 묘비.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신익상이 글씨를 써서 숙종 29년(1703)에 세웠다고.
신립 장군 묘소에서 바라본 곤지암읍 일대.
원래 시신을 한양으로 운구하는 도중 마차가 땅에 붙어 꼼짝도 않하자 이곳에 묻히고 싶다는 장군의 뜻으로 알고 인근 양지 바른 곳에 묻었다고 전하지만 전설은 전설일뿐.
사후 조정에서는 영의정으로 추증하고 충장(忠壯)이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곤지암역에서 오늘 봉화길 제3길 너른고을길을 마무리.
추운 날씨였지만 경기광주역~국수봉~초월역~곤지암역까지 13km를 걷고 곤지암 바위와 신립 장군 묘까지 답사하는 알찬 여정이었습니다.
'강바람의 둘레길,옛길 걷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기옛길, 봉화길 제1길을 걷다 --- 하남검단산역~광주향교~남한산성 13km (1) 2025.02.12 남양주 옛길인 조안둘레길을 걷다(2) (0) 2025.01.21 남양주 옛길인 조안둘레길을 걷다(1) (0) 2025.01.21 남양주 진건둘레길(천마산등산로)을 걷다 (1) 2024.10.06 강화나들길 제2코스 호국돈대길을 걷다(2) --- 광성보~덕진진~초지진까지 6km (0) 2024.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