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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관 방문강바람의 국내여행 2025. 11. 15. 18:48
2025.11/15(토)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관을 찾았습니다.
김대건 신부(金大建, 1821~1846)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사제이며 세례명은 안드레아입니다.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관이 있는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해안은 1845년 김대건 신부가 처음 고국땅을 밟은 곳인데요.
김 신부는 1845년 8월17일 중국 상해 김가항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후 8월31일 라파엘호를 타고 상해를 출발, 서해를 거쳐 조선으로 향하던중 풍랑을 만나 28일간의 표류 끝에 제주 용수리해안에 표착하게 됩니다.
이를 기념하는 동시에 제주지역에서 우리나라 최초 신부의 첫번째 미사와 성체성사가 이루어진 것을 기리기 위해 2005년 기념관을 건립한것 입니다.
기념관 바로 옆에는 김대건 신부 기념성당이 있으며 동쪽에는 김대건 신부가 타고 왔던 라파엘호를 고증복원해 전시하고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는 성 피에르 모방 신부의 천거로 마카오에서 유학하며 신학을 공부해 사제로 서품되고 귀국하였으나 단 1년 밖에 사목생활을 하지 못한채 붙잡혀 1846년(헌종 12) 병오박해로 26살 나이에 순국한바 있습니다.
그는 1821년, 충청도 솔뫼(당진시)에서 태어났으나 어릴때 천주교 박해를 피해 경기도 안성의 미리내성지 인근의 은이공소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했다고 합니다.
1836년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온 선교사인 피에르 모방 신부가 은이공소에 왔을때 16살이던 김대건은 3명의 신학생중 한 명으로 선발되어 1837년 6월 마카오에 도착, 신학교에 입학하여 사제수업을 받았습니다.
은사인 피에르 모방 신부는 1839년 기해박해때 순교하는 슬픔도 있었지만 그는 신학공부에 매진하여 마침내 25살인 1845년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가 됩니다.
1845년 라파엘호를 타고 조선으로 향하던중 폭풍을 만나 28일간을 표류 끝에 제주도 해안에 도착하게 되는데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로서 고국에 돌아와 한양 동우물골(서울 소공동)에 자리를 잡고 사목활동을 전개해 가던중 체포되어 1846년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한바 있습니다.
순교자 김대건 신부는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으며 한국천주교회 성직자들의 수호성인으로 모셔지고 있습니다.
종교를 떠나 암울한 시대에 우리 민족의 밝은 미래를 위해 헌신하신 김대건 신부에게 깊은 존경과 위로를 드립니다.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관을 찾아 갑니다.

한경면 용수리 해안길을 걸으면,

해안가에 서있는 방사탑(防邪塔).
방사탑은 마을의 허술한 방향으로 사악한 기운이 침범하여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거나 마을이 재앙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둥글게 쌓아올린 돌탑으로 용수마을 포구에는 2기가 있습니다.

제주도의 서쪽에 위치한 용수포구.
한국인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가 중국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 귀국하던 중 폭풍에 휩쓸려 고생하다가 표착한 곳이지요.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 제주표착기념관 입구.

전면에 동상이 우뚝 서있는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관과 성당.

타고 온 라파엘호를 형상화한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관.

고증을 거쳐 복원전시중인 라파엘호.
크기가 10m도 않되는 자그마한 배인데 김대건 신부가 일행 13명과 함께 타고 고국으로 돌아온 라파엘호.

라파엘호에서 바라본 기념관과 기념성당.
용수포구 앞 해안가에 깔끔하고 성스럽게 건립된 모습입니다.

성 김대건 앙드레아 신부 흉상.
김대건 신부(金大建, 1821~1846)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사제이며 세례명은 안드레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 있는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관은 1845년 김대건 신부가 고국에 첫발을 내딛은 곳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는 설명.

김대건 신부가 상하이 유학시절부터 조선 입국, 포교활동 그리고 순교에 이르기 까지의 일대기가 전시되어 있는 기념관.

제주 천주교회사도 시대별로 잘 보여주고 있네요.

폭풍을 만나 28일간 표류하는 악전고투 끝에 제주도에 표착한 라파엘호.

김대건 신부의 조선 귀국항로는 중국 상해에서 서해를 가로질러 제물포를 목표로 하였지만 폭풍우와 풍랑을 만나 돛대와 키가 파손되어 출항한지 28일만인 1845년 9월28일 간신히 제주도 용수리해안에 표착하였으며
파손된 배를 수리한후 다시 배를 타고 북상하여 10월12일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익산 나바위성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기념관에서 바라본 용수리해안과 차귀도.
김대건 신부 일행이 180년전 폭풍우를 만나 28일간의 갖은 고생끝에 첫발을 내딛은 역사적인 땅이네요.

기념관 부근의 용수리 농가들.

초기 천주교인들을 고문하던 형틀들.

고문기구도 갖가지네요~!
초기의 천주교인들이 얼마나 심한 박해를 받았는지 늦게나마 위로와 명복을 빕니다.

기념성당 내부를 살펴보고,

당산봉이 바라보이는 차분한 기념관 앞 뜰에서 김대건 신부의 선교열정과 순교정신을 다시 살펴보며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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