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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산을 걸어 의릉, 홍릉숲, 영휘원, 숭인원, 청량사를 답사하다(2)강바람의 국내여행 2026. 6. 6. 08:30
천장산을 걸어 의릉, 홍릉숲, 영휘원, 숭인원, 청량사를 답사하다 (1)편은 의릉에서 천장산을 넘어 홍릉숲까지의 여정이고
계속해서 (2)편은 영휘원, 숭인원, 청량사를 탐방한 내용입니다.
홍릉숲과 가까운 남쪽에 영휘원과 숭인원이 위치해 있는데요.
과거에는 천장산 자락의 홍릉(洪陵) 일대가 모두 조선왕실의 가족묘지여서 릉역이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넓었습니다.
1919년 명성황후의 홍릉이 금곡으로 천장한 이후 홍릉 릉역에 도로가 넓게 개설되고 학교나 기관 등이 들어서며 릉역이 분리된채 크게 축소되었지요.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위치한 영휘원과 숭인원은 묘역이 크게 잠식되어 보기에도 안타까운 실정인데요.
영휘원(永徽園)은 고종황제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묘이며, 숭인원(崇仁園)은 고종황제와 순헌황귀비 엄씨의 손자이자 의민황태자(영친왕)의 장남 이진(李晉)의 묘입니다.
순헌황귀비 엄씨(純獻皇貴妃 嚴氏,1854~1911)는 명성황후의 시위상궁이었다가 1882년 임오군란때 명성황후가 피신했을 기간에 고종과 가까워지자 명성황후의 질투로 궁에서 쫓겨났지만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된 이후 다시 궁에 돌아올수 있었습니다.
엄씨(1854~1911)는 1896년 아관파천때 고종을 도와 함께 피신하였고 1897년 영친왕을 낳아 고종의 후궁이 되었지만 평민 출신에 후궁이어서 고종의 계비가 되지는 못하여 릉이 아니라 원으로 조성된것 입니다.
엄귀비는 여성의 신교육을 위해 진명여학교와 숙명여학교를 설립하였고 재정난을 겪던 양정학교에는 많은 지원을 아끼지않아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인재를 기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진(李晉, 1921~1922)은 의민황태자(영친왕)과 황태자비 이방자 사이의 첫째 아들로 일본에서 태어 났는데요.
1921년 8월에 태어나 이듬해 5월, 영친왕 내외와 함께 잠시 귀국했으나 일본으로 돌아가기 하루전 덕수궁 석조전에서 급사하여 백성들을 슬픔에 빠뜨리게 했었지요.
천장산 남쪽 자락에 있는 청량사(淸凉寺)는 역사 깊은 비구니 사찰인데요.
예로부터 서울의 4대 비구니 도량으로 유명했던 돌곶이승방이 바로 이곳으로 원래는 홍릉이 있던 자리에 있다가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된 이후 홍릉을 조성할때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청량사가 홍릉의 원찰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왔지만 사실이 아닌것 같습니다.
청량사는 구한말에는 도성 사람들이 자주 찾아 쉬던 휴양지 역할도 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애국지사, 고승들의 발길이 잦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1944)도 한때 청량사에 머물렀으며 경내가 조용하여 고시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즐겨 찾기도 했지요.
깊은 숲속에 자리했던 청량사는 주변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사찰환경이 점차 않좋아졌으나 현재는 재개발되어 고층아파트에 둘러싸이는 실정이 되고 말았네요.
그래도 청량사는 사세가 매우 커서 대웅전, 극락보전, 무량수전, 칠성각, 요사 등이 밀집된채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홍릉숲에서 가까운 영휘원, 숭인원을 찾아 갑니다.

영휘원, 숭인원 안내표지판.
영휘원은 의민황태자 영친왕의 생모이자 황귀비의 묘이고, 숭인원에는 원손 이진이 묻혀 있다는 안내.

영휘원, 숭인원의 정문이자 매표소 역할을 하는 삼문.
원래의 정문자리는 아닌것 같으며 주차장을 조성할때 이곳으로 옮겨 세운것 같습니다.

정문을 들어서며 만나는 숭인원.
정문을 남쪽으로 이전하면서 숭인원을 먼저 맞이하게 되어 다소 낯선 느낌이 드네요.

먼저 찾은 곳은 영휘원.
숭인원이 바로 옆에 있어 이 일대가 과거 홍릉의 릉역이었음을 암시해 줍니다.

영휘원(永徽園)은 고종황제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묘.

영휘원은 조선시대 생모의 묘를 조성하는 제도인 궁원제에 따라 조성되었다고.
비록 릉에서 볼수 있는 수복방, 수라간은 없지만 묘역이 꽤 넓고 정자각, 비각도 제대로 갖춘 모습.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고 호석만 둘렀고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호와 석양 각 1쌍을 배치

영휘원 묘표 - '수헌귀비 영휘원(純獻貴妃 永徽園)'이라고 전서체로 새겨져 있는 모습.
그런데 조선국, 대한 등의 국호도 없고 순헌황귀비라고 하지도 않은 것은 경술국치 이후 나라가 합병되고 대한제국 황실이 이왕가로 격하되었기 때문이라니 망국의 아픔이 실로 크네요.

영휘원의 재실.
홍릉로확장공사로 인해 릉역이 도로부지로 잠식되면서 담장과 맞닿아 있는 옹색한 모습인데요.
과거에는 영휘원 정문도 이쪽 방향에 있었을듯 합니다.

영휘원의 어정.

다음 찾은 곳은 숭인원.
숭인원(崇仁園)은 고종황제와 순헌황귀비 엄씨의 손자이자 의민황태자(영친왕)의 장남 이진(李晉)의 묘.
1919년 부친인 고종황제가 독살설로 갑자기 운명하시고, 1920년에 황망중에 이방자 여사와 결혼하여 이듬해 첫째 아들을 낳아 온 나라가 경사에 빠지기도 했는데요.
1921년 8월에 태어나 이듬해 5월, 순종황제에게 인사드리고자 영친왕 내외가 첫째 아들인 이진을 데리고 잠시 귀국했으나 열흘만인 일본으로 돌아가기 하루전 덕수궁 석조전에서 급사하여 백성들을 슬픔에 빠뜨리게 했었지요.

망국의 황손이었던 데다가 채 돐도 않되어 요절한 탓인지 자그마한 정자각과 비각을 갖춘 숭인원.
그래도 순종의 배려로 특별한 장례식을 거행하고 할머니 옆에 원(園)의 모습으로 안장되었습니다.

석물들이 작고 아담하게 조성되어있는 숭인원 모습.
고국에 돌아왔다가 첫 돐도 않된 장남을 잃고 말았으니 영친왕과 이방자여사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숭인원 묘표 - '원손 숭인원(元孫 崇仁園)'이라고 전서체로 새겨진 모습.
원손(元孫)은 왕세자의 맏아들을 말합니다.

동네 주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영휘원, 숭인원 모습.

다음은 청량사를 찾아 갑니다.

서민주캑이 밀집되어 있던 주위가 재개발로 인해 모두 아파트촌으로 변한채 고지대에 섬처럼 남아 있는 청량사.

천장산 남쪽 자락에 있는 청량사(淸凉寺)는 역사 깊은 비구니 사찰인데요.
예로부터 서울의 4대 비구니 도량으로 유명했던 돌곶이승방이 바로 이곳으로 원래는 홍릉이 있던 자리에 있다가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된 이후 홍릉을 조성할때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비좁은 터에 서로 맞닿아 있는듯한 법당들.
청량사는 사세가 매우 커서 대웅전, 극락보전, 무량수전, 칠성각, 요사 등이 밀집된채 명성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청량사 무량수전.

비구니 사찰답게 깔끔하고 잘 정비된 모습의 청량사.
청량사는 구한말에는 도성 사람들이 자주 찾아 쉬던 휴양지 역할도 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애국지사, 고승들의 발길이 잦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1944)도 한때 청량사에 머물렀으며 경내가 조용하여 고시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즐겨 찾기도 했지요.

외따로 떨어진 언덕 위에 있는 대웅전.

대웅전에서 바라본 청량사 모습.
깊은 숲속에 자리했던 청량사는 주위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사찰환경이 점차 않좋아졌으나 현재는 재개발되어 고층아파트에 둘러싸이는 실정이 되었습니다.

의릉에서 시작하여 천장산을 걸어 홍릉숲, 영휘원, 숭인원, 청량사 탐방을 모두 마칩니다.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흐르면서 주변의 모든게 변할수밖에 없음을 새삼 느낀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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