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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시 홍유릉과 영원, 의친왕묘, 덕혜옹주묘, 후궁묘역을 탐방(2)강바람의 국내여행 2026. 6. 7. 10:14
홍유릉에 이어 릉역 남쪽에 있는 대한제국 황실 가족의 묘들을 답사하였습니다.오솔길을 걸어 영원, 회인원, 의친왕 묘, 덕혜옹주 묘, 후궁후실묘역을 탐방했는데요.
고종황제는 재위 43년 동안 명성황후를 비롯하여 7명의 아내를 두었으며 그들에게서 6남1녀를 두었습니다.
명성황후는 순종, 귀비 엄씨는 영친왕, 귀인 이씨 는 완왕과 육, 귀인 장씨는 의친왕, 귀인 정씨는 우, 귀인 양씨는 덕혜옹주를 낳았고 소의 이씨는 자녀가 없었지요.
영원(英園)에는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 1897~1970)와 황태자비인 이방자 여사(1901~1989)가 잠들어 있으며, 영원 바로 옆에 있는 회인원(懷仁園)은 영친왕의 2남인 황세손 이구(李玖, 1931~2005)의 묘.
의친왕(義親王, 1877~1955)은 고종황제와 귀인장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의친왕비 김씨(1878~1964)와 같이 묻혀 있으며,
덕혜옹주(1912~1989)는 고종황제가 나라를 잃은채 환갑되던 해인 1912년, 복녕당 귀인양씨 사이에서 출생하여 복녕당아기씨로도 불리었지요.
13세의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일본으로 유학보내졌다가 정신질환으로 불우한 생을 마감한바 있습니다.
한적한 오솔길은 걸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대한제국 황실의 후궁후실 묘역~!
묘는 모두 5개로 고종황제의 후궁인 귀인장씨 묘, 광화당 묘, 삼축당 묘와 의친왕의 후실인 수관당 묘, 수인당 묘를 둘러 보았는데요.
귀인 장씨(貴人 張氏, 1838~1887)는 1877년 궁인의 신분일때 의친왕을 낳았으며 묘는 광진구 화양동에 있었으나 1965년 서삼릉에 옮겨졌다가 2009년 다시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바 있습니다.
광화당 귀인 이씨(光華堂 貴人 李氏, 1885~1967)는 1914년 이육(李堉)을 낳아 광화당에 봉해졌으며 종로구 사간동에서 살다가 83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삼축당 김씨(三祝堂 金氏, 1890~1970)은 슬하에 자식없이 후궁으로 지냈으며 말년에는 사간동에서 광화당 귀인이씨와 말벗이 되어 외로움을 달래며 살다가 81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수관당 정씨(修觀堂 鄭氏, ?~?)은 의친왕의 첫번째 후실로 이건(李鍵)을 낳았으며,
수인당 김씨(修仁堂 金氏, ?~?)는 의친왕의 2번째 후실로 이우(李鍝), 이주(李鑄), 이곤(李錕) 세 아들을 두었으며 특히 이우 왕자는 일본의 정략결혼을 거부한채 박찬주와 비밀연애를 하며 사랑을 키운 끝에 1935년 결혼에 성공하여 애틋한 순애보를 남기기도 했지요.
일제에 나라를 뻬앗기는 망국의 한을 품은채 또 황실의 해체로 사가로 나와 어렵게 살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회상하려니 넘 가슴이 아프네요.
늦게나마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명복을 빕니다.

홍릉에서 남쪽으로 작은 문을 통해 언덕을 넘으면 뒷편의 조용한 오솔길이 나타나지요.

오솔길을 걸어 영원, 회인원, 의친왕 묘, 덕혜옹주 묘를 찾아 갑니다.

왼편으로 보이는 홍유릉의 담장.
정성스레 쌓은 황제릉의 기와담장이 끝없이 이어져 있어 어렸을때 부터 무척 신기하게 보던 기억이 납니다.

아름다운 이 길만 걸어도 얼마나 좋은지 모를 정도.ㅎㅎ

홍유릉 뒷편에 펼처진 농경지에는 추후 릉에 쓸 묘목을 키우는 묘포장이 들어올 계획이라고 .

처음 맞이한 영원(英園).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의민황태자(영친왕)와 황태자비인 이방자 여사가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아담한 영원의 재실.
1970년대에 동대문구에 있는 의릉(경종)의 재실을 옮겨왔다고 합니다.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 1897~1970)와 황태자비인 이방자 여사(1901~1989)가 잠들어 있는 영원.
의민황태자는 영왕(英王) 혹은 영친왕(英親王)으로도 불리는데요.
고종황제와 순헌황귀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제국시대에 낳은 황태자이기에 대군이 아닌 왕이라는 칭호가 붙어 있습니다.
영친왕은 대한제국 영친왕, 황태자이었다가 나라를 잃으며 이왕세자, 제2대 창덕궁 이왕 등의 칭호변동이 있었으며
어릴때인 1907년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끌려가 일본교육을 받고 육군사관학교, 육군대학를 졸업후 육군 준장을 지내며 제1육군 항공군사령관으로 복무하다가 1920년 일본인 황족인 이방자 여사와 정략결혼을 해야 했습니다.
대한제국의 황태자가 일본여성과 결혼은 안된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매국노에 금수(禽獸)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1945년 광복이 되어 환국코자하였으나 여러 사정으로 귀국치 못하고 황족으로서의 특권도 상실한채 재일한국인 신분으로 일본에서 계속 살다가 1963년 박대통령의 주선으로 국적을 회복하고 귀국했으나 이미 건강을 잃어 하였는데요.
그는 이미 건강을 잃어 병상에 누운채 말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낙선재로 향했다고 합니다.
의민황태자비 이방자 여사는 일본 황족으로 황태자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두었으며 1963년 귀국후 창덕궁 낙선재에 거주하며 장애인들의 재활과 교육을 지원하는 사회사업에 힘썼으며 끝까지 대한민국 사람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합니다.

원(園)에 맞게 아담하게 조영된 영원의 정자각과 비각 모습.
1970년 영친왕이 별세할때 처음 조영되었으며 1989년 이방자 여사가 옆에 합장된 역사가 있지요.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황태자비이며 불과 몇십년 전의 사람들이라 숱한 뉴스꺼리를 남긴 인물인데요.
살아 생전에도 국민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었고 영친왕, 이방자 여사가 별세할 때에는 장안의 큰 사건이 되어 애석해하는 국민들도 무척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언덕을 올라 바라본 영원.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합장 묘입니다.

전면에서 바라본 영원.

영원 바로 옆에 있는 회인원(懷仁園)은 영친왕의 2남인 황세손 이구(李玖, 1931~2005)의 묘.
이구는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 사이의 2남으로 첫째 이진을 잃은지 9년만에 낳은 아들인데요.
1931년 일본에서 태어나 이왕세자 신분으로 살다가 해방을 맞아 귀국하고자 했지만 이대통령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미국으로 유학하여 MIT에서 건축학을 전공했습니다.
학교에서 8세 연상의 미국인 줄리아 멀독을 만나 결혼하였으며 결혼후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생활하다가 1963년 박대통령의 주선으로 귀국하여 이방자 여사와 함께 낙선재에서 살기도 했는데요.
그러나 대를 잇지 못하는 줄리아 멀목과의 사이가 벌어지면서 이혼을 하게 되었고 그후 일본을 오가며 생활하다가 2005년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사망한채 발견되었습니다.

회인원은 2005년에 조영되었지만 석물들은 뒤늦게 2023년에 세워져 깨끗한 모습.
참고로 영친왕의 장남이자 이구의 형은 1살때 요절하여 청량리 숭인원에 묻혀 있지요.

의친왕 묘, 덕혜옹주 묘 가는 길은 수도권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길.

덕혜옹주와 의친왕의 생애를 조명하는 사진들이 울타리에 전시되어 있네요.

대한제국 황실의 가계도는 매우 복잡하여 어지러운데요.
고종은 재위 43년 동안 명성황후를 비롯하여 7명의 아내를 두었으며 그들에게서 6남1녀를 낳았습니다.
명성황후는 순종, 귀비 엄씨는 영친왕, 귀인 이씨 는 완왕과 육, 귀인 장씨는 의친왕, 귀인 정씨는 우, 귀인 양씨는 덕혜옹주를 낳았고 소의 이씨는 자녀를 두지 못했지요.
특히 명성황후는 여러명의 후손을 낳았지만 모두 요절하여 순종만 겨우 남았는데요.
이 와중에 후궁에게서 낳은 왕자들이 성장하면서 질투와 갈등이 끊이질않아 후궁들의 삶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덕혜옹주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대하니 망국의 슬픔을 안은채 한 여성의 일생이 어찌 이렇게 기구했는지 눈물이 납니다.
덕혜옹주(1912~1989)는 고종황제가 나라를 잃은채 환갑되던 해인 1912년, 복녕당 귀인양씨 사이에서 출생하여 고종황제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다가
1919년, 7살때 갑자기 부친인 고종황제을 잃는 슬픔 속에 있다가
1925년, 13세에 일본 유학을 떠났으며,
1929년, 어머니 별세후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였으나,
1931년, 일본인과 정략적 결혼하여 이듬해 딸을 낳았으나 우울증과 조현병 등 정신질환 약화로 정신병원에 입원하였으며 결국 이혼 당함.
1962년, 정신병원에서 발견되어 51세 나이에 조국을 떠난지 38년만에 창덕궁 낙선재로 환궁.
1989년, 정신질환과 노환으로 낙선재에서 78세 나이로 별세하였습니다.

의친왕(1877~1955)은 고종황제와 귀인 장씨 사이에서 낳은 후손으로 순종의 이복동생이 되는데요.
1899년 미국유학을 떠났으며 일제때에는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하는 등 의협심이 매우 강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한 울타리에 있는 의친왕 묘, 덕혜옹주 묘.

그의 모습처럼 아담하고 단아한 모습의 덕혜옹주 묘소.

덕혜옹주(1912~1989)는 고종황제가 나라를 잃은채 환갑되던 해인 1912년, 복녕당 귀인양씨 사이에서 출생하여 복녕당아기씨로도 불리었지요.
13세의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일본으로 유학보내졌다가 정신질환으로 불우한 생을 마감한 덕혜옹주.
일본의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일본인과 정략결혼하였으나 실패하고 정신질환으로 암울한 시기를 보내야 했던 그녀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네요.

'대한 / 덕혜옹주지묘'라고 새긴 묘표.
비로소 대한이라는 국호를 다시 얻었으니 만시지탄을 생각케 됩니다.

조용한 숲속에 있는 의친왕 묘.

젊은 시절의 의친왕(1877~1955).

조촐한 모습의 의친왕 묘.
의친왕(義親王, 1877~1955)은 고종황제와 귀인장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의친왕비 김씨(1878~1964)와 같이 묻혀 있는데요.
의친왕은 오랫동안 군(君)으로 봉작되지 못한채 귀인장씨의 집에서 지내면서 시중의 무뢰한들과 어울리는 등 행실이 단정하지 못했으며 1892년에야 의화군(義和君)으로 봉해졌고 1900년 의친왕에 책봉되었다고.
1905년 미국유학을 다녀온후 대한제국 육군부장, 적십자사 총재직을 맡기도 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상해임시정부로 망명을 시도하는등 독립운동에 가담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인품이 좋지않아 부덕, 사치, 탕진, 여색문제가 있다고 했으며 13명의 후실에서 21명(12자9녀)의 자녀를 낳았다고 하나 26명이라는 말도 전해집니다.
비둘기집을 부른 가수 이석(李錫, 1941~ )은 그의 여러 아들중 하나라고.
1955년 사망 당시에는 생모 귀인장씨의 묘가 있는 광진구 화양동에 모셨다가 1965년 서삼름, 1995년 다시 이곳으로 천장한바 있습니다.

다시 오솔길을 걸어 안쪽으로 들어가니,

오호, 깊은 숲속에서 만난 족욕쉼터.
남양주시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어 시민들로 부터 각광을 받고 있네요. 짝짝~!

족욕쉼터에서 샘솟는 물에 발을 담그며 피로를 풀어 봅니다.
시원하니 아주 좋아요.ㅎㅎ

마지막으로 대한제국 황실의 후궁묘역을 찾아 갑니다.

후궁묘역은 그동안 미개방 상태였지만 근래 내부를 정리한 후 개방중인데요.

대한제국 황실의 후궁후실 묘는 모두 5개로 고종황제의 후궁인 귀인장씨 묘, 광화당 묘, 삼축당 묘와 의친왕의 후실인 수관당 묘, 수인당 묘.

고종의 후궁인 광화당 이씨의 묘가 1967년에 조성되었고 삼축당 김씨가 1970년에 조성되었으며
의친왕의 후실인 수인당 김씨의 묘가 조성된 이후 서삼릉에 있던 고종의 후궁 귀인 장씨와 의친왕의 후실 수관당 정씨의 묘가 2009년 이장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처음 만난 수인당 묘는 넘 조촐한 모습.
수인당 김씨(修仁堂 金氏, ?~?)는 의친왕의 2번째 후실로 이우(李鍝), 이주(李鑄), 이곤(李錕) 세 아들을 두었는데요.
특히 이우 왕자는 일본의 정략결혼을 거부한채 박찬주와 비밀연애를 하며 사랑을 키운 끝에 1935년 결혼에 성공하여 애틋한 순애보를 남기기도 했지만 일본군에 징집되어 히로시마에서 근무중 1945년 원폭투하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솔밭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후궁후실 묘들.

수관당 정씨(修觀堂 鄭氏, ?~?)는 의친왕의 첫번째 후실로 이건(李鍵)을 낳았으며,

다음 만난 분은 의친왕의 생모인 귀인 장씨의 묘.
귀인 장씨(貴人 張氏, 1838~1887)는 1877년 궁인의 신분일때 고종의 5남인 의친왕을 낳았으며 묘는 광진구 화양동에 있었으나 1965년 서삼릉에 옮겨졌다가 2009년 다시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바 있습니다.
귀인장씨는 어려서 궁에 들어왔고 의친왕을 낳은후 명성황후에 의해 궁에서 쫓겨났으며 후궁중에서 유일하게 당호(堂號)를 받지 못했다고.

다음 만난 분은 광화당 귀인 이씨의 묘.
광화당 귀인 이씨(光華堂 貴人 李氏, 1885~1967)는 1914년 이육(李堉)을 낳아 광화당에 봉해졌으며 종로구 사간동에서 살다가 83세에 세상을 떠나 1967년에 모셨습니다.

고종의 후궁과 의친왕의 후실까지 모두 5분을 한 자리에 모셨지만 여러 사정으로 오지 못한 분도 여러분이 있는걸로 생각됩니다.
지대한 관심이 필요할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만난 분은 삼축당 김씨의 묘.
삼축당 김씨(三祝堂 金氏, 1890~1970)은 슬하에 자식없이 후궁으로 지냈으며 81세에 세상을 떠났는데요.
광화당 이씨와 삼축당 김씨는 슬하에 자식없이 종로구 사간동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았고 사후에도 나란히 묻혔습니다.

오늘 남양주시 홍유릉과 황실 가족인 영원, 회인원, 의친왕 묘, 덕혜옹주 묘, 후궁후실 묘역까지 탐방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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