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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시 홍유릉과 영원, 의친왕묘, 덕혜옹주묘, 후궁묘역을 탐방(1)강바람의 국내여행 2026. 6. 7. 10:08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위치한 홍유릉과 대한제국 황실가족의 묘를 탐방하였습니다.
(1)편은 홍릉과 유릉을 탐방한 내용인데요.
519년 역사의 조선은 1897.10.1 2 고종이 환구단에서 황제즉위식을 거행하고 익일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황제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홍릉과 유릉은 대한제국 제1대 황제 고종과 2대 황제 순종의 릉으로 대한제국에서는 명나라 황제릉의 예를 참고하고 기존 조선왕릉의 예를 계승하여 대한제국 황제릉의 형식을 새롭게 만들었는데요.
기존 조선왕릉과 달라진 점은 크게 2가지로 제향공간인 정자각을 일자형 침전(寢殿)으로 바꾸고 능침공간에 있던 문석인, 무석인 등 석물들을 모두 침전 아래에 두었으며 석양, 석호 대신 기린, 코끼리, 사자, 해치(해태), 낙타로 바꾸었습니다.
나라가 망한 후의 일제강점기때 조영된 릉이라 일제의 간섭과 영향이 미쳤을 것도 같네요.
그래도 릉이 크고 화려헌 걸 보면 망국을 지켜보며 한많은 삶을 이어간 분들에게 사후에라도 최대한 정성을 다해 드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홍릉(洪陵)은 대한제국 제1대 황제 고종(高宗, 1852~1919)과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 閔氏, 1851~1895)의 합장릉입니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생애는 망국의 상황에서 워낙 사건사고도 많은데다가 그동안 많이 보고 들어왔으니 생략하구요.
금곡에 홍릉이 조성된 때는 고종이 돌아가신 1919년의 일로 당연히 청량리에 있던 명성황후의 홍릉에 같이 묻힐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길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금곡의 현 위치에 장지를 정하였습니다.
황제릉으로 처음 조성된 홍릉을 답사해 보면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데요.
릉역이 무척 넓은 홍릉은 문석인을 비롯한 석물들은 황제릉 형식으로는 처음 만든 탓인지 경험부족으로 왜소하고 예술성도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며 당시로는 보고듣기도 어려웠던 기린, 코끼리, 사자, 해치, 낙타 등의 석물들을 조성한 것은 매우 파격적으로 이는 중국 릉제의 영향이 컷기 때문입니다.
유릉(裕陵)은 대한제국 제2대 황제 순종(純宗, 1874~1926)과 순명효황후 민씨(純明孝皇后 閔氏, 1872~1904), 계비 순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 尹氏, 1894~1966)의 릉입니다.
순종은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아들로 1907년 황제에 등극하였으나 1910년 한일병합으로 519년 조선과 대한제국이 멸망하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으며 이왕으로 격하되어 16년간 창덕궁에서 머물다가 53세로 한많은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순명효황후 민씨는 여은부원군 민태호의 딸로 순종이 황태자일때 세상을 떠나 처음 광진구 능동에 묻혔으나 1926년 순종 장례때 이곳으로 옮긴 적이 있으며,
순정효황후 윤씨는 해풍부원군 윤택영의 딸로 대한제국 최초의 황후로 책봉되었으며 창덕궁에서 생활하다가 1966년 세상을 떠나 이곳에 묻혔습니다.
특히 순정황후 윤씨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로 1910년 병풍 뒤에서 어전회의를 엿듣고 있다가 한일병합 조인식때 옥새를 치마속에 숨기고 내놓지않은 일화로 유명합니다.
홍유릉의 주요 건축물은 기존 황후의 릉에서 옮겨온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명성황후가 잠들어 있던 동대문구 청량리의 홍릉과 순명효황후가 잠들어 있던 광진구 능동의 유릉에 있던 침전, 재실, 수복방, 수라간, 비각 등을 말합니다.
1895년 시해된 명성황후는 처음 동구릉에 릉을 조성하다가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된 이후 장소를 옮겨 청량리에 홍릉을 조영하였는데 황제릉에 걸맞게 침전을 세웠으며, 능동에 있던 순명효황후의 묘인 유강원은 1907년 순종이 즉위하면서 유릉으로 추봉되어 역시 침전을 세운 역사가 있지요.
1919년 금곡으로 홍릉을 옮겨오고 1926년 유릉을 옮겨오면서 건축물도 함께 옮겨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홍유릉 외부에 있는 외재실도 옮겨온 것으로 추정되나 아쉽게도 역사를 전해줄 자료가 없네요.
홍유릉은 보면볼수록 사연도 많고 할 이야기도 많으네요.
어렸을때 홍유릉의 석물들이 마냥 신기하여 등 위에 올라타고 놀던 때가 있었으니 철부지 시절로 치부하고 싶습니다.ㅎㅎ

오랜만에 홍유릉을 찾았습니다.

정문 가는 길에서 만나는 홍유릉의 외재실.
왜 재실이 하나 더 있는지, 어디에서 옮겨온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릉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이 어머어마하게 크고 멋집니다.
황제릉에서만 볼수 있는 신기한 광경이지요.

정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찾은 석교.
오호, 어렸을때 홍릉천 위의 돌 다리를 건너 홍유릉에 소풍간 적이 있었지요.ㅎㅎ

홍유릉 입구의 홍릉천에 있던 석교인데 1980년대 홍유릉로 확장 과정에서 철거되어 상류 쪽으로 이전, 설치되었지요.
릉 조성 당시에 만들었고 릉에 가려면 반드시 건너야했던 석교인데 위치는 바뀌었지만 보존되어 다행이라는 생각.

홍유릉의 정문.
일반 왕릉에서는 볼수없는 황제릉에만 갖춘 위엄있는 정문 모습입니다.

홍유릉 종합안내도를 보며 동선을 그려보았는데요.
릉역이 무척 넓지만 차분하게 홍릉, 유릉, 영원, 회인원, 덕혜옹주 묘, 의친왕묘, 후궁 묘 순서로 탐방하기로 결정.

홍릉, 유릉을 답사하고 남쪽에 있는 작은 문을 통해 영원 방향으로 나가기로.

정문으로 입장하여 먼저 홍릉을 찾아 갑니다.

둥근 연지 앞을 걸어,

오호, 넓은 땅에 조성되어 있은 홍릉이 바라보이네요~!

홍릉(洪陵)은 대한제국 제1대 황제 고종(1852~1919)과 명성황후 민씨(1851~1895)의 릉.
대한제국이 탄생되어 처음으로 조영된 황제릉입니다.

노송들에 둘러싸인 홍릉 전경으로 제향공간과 능침공간이 일직선 상에 있는 모습.

홍살문 밖에 있는 홍릉의 수복방.
수복방은 릉을 지키는 수복이 근무하는 곳으로 건너편의 수라간과 같이 릉에서 멀리 떨어져 있네요.

홍살문 밖에서 바라본 홍릉.
금곡에 홍릉이 조성된 때는 고종이 돌아가신 1919년의 일로 당연히 청량리에 있던 명성황후의 홍릉에 같이 묻힐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길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금곡의 현 위치에 장지를 정하였습니다.

홍릉은 황제릉을 조성되었기에 일반 왕릉과는 전혀 다른 모습인데요.
참도가 일반 왕릉과는 달라 중앙부에 약간 높은 향로(香路)가 있고 좌우에 낮은 어로(御路)가 있으며 제향공간인 정자각을 일자형 침전(寢殿)으로 바꾸고 그 앞에 문석인을 비롯한 석물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
향로는 혼령이 다니는 길로 향과 축문을 들고 가며, 양쪽의 나즈막한 어로는 임금이 다니는 길.
능침공간은 조선의 전통왕릉 형식을 유지하되 제향공간은 황제릉 형식을 도입하여 독특한 대한제국의 황릉 형식을 볼수 있다고.

능침공간에 있던 문석인, 무석인 등 석물들을 모두 침전 아래에 두었으며 석양, 석호 대신 기린, 코끼리, 사치, 해치(해태), 낙타, 말 순서로 바꾸었습니다.
기린, 해치 등 상상의 동물까지 조성하여 신비스럽네요.

보도듣도 못하던 동물들을 양쪽에 세운 홍릉의 석물들.
당시로는 보도듣도 못하던 기린, 코끼리, 사자, 해치, 낙타 등의 석물들을 조성한 것은 중국 릉제의 영향 때문으로 매우 파격적.

홍릉의 침전 모습.
침전은 제향을 모시는 건물로 제향공간의 중심건물이지요.
침전을 비롯하여 재실, 수복방, 비각 등 여러 건축물은 청량리에 있던 명성황후 홍릉에서 옮겨왔다고 전해집니다.

침전으로 올라가는 석계.
전면에 석계가 있는 특이한 모습으로 3개의 석계에 가운데는 화려한 반면 앙쪽은 소박하네요.

침전에서 바라본 석물들.
양편에 똑같이 서로 마주보는 형식으로 조성된 석물들은 문석인, 무석인, 기린석, 코끼리석, 사자석, 해치석, 낙타석, 석마 순서로 배치되어 있지요..

홍릉의 지당(池塘)으로 침전 앞에 있는 특이한 모습인데요.
배수를 위해 침전 앞에 지당을 조성하여 강우시 집수하였다가 아래에 있는 연지로 배출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양편에 배수로가 잘 조성된 홍릉.

고종황제와 명성태황후가 합장되어 있는 홍릉의 릉침공간.

홍릉은 12면 병풍석에 12칸의 난간석을 둘렀으며 석양과 석호가 없이 능침 앞에 혼유석과 망주석만 설치하고 3면에 곡장을 둘러 황제릉치고는 다소 낯설고 허전한 모습.

홍릉 침전 내부 모습.
제향으로 공간으로 정자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며 마치 보궁처럼 꾸며져 있습니다.
제향을 지낼때에 문을 열면 앞에 릉침이 보이는 구조입니다.

홍릉의 비각.

홍릉 비문 - '대한 / 고종태황제홍릉 / 명성태황후부좌(大韓 / 高宗太皇帝洪陵 / 明成太皇后祔左)'
일본에 합병되어 나라가 없어졌음에도 '大韓' 글자를 새긴 용기가 대단합니다.

봉분 아래에 있는 홍릉의 어정.

홍릉으로 야외수업을 나온 학생들.
망국의 한이 서려있는 홍유릉에서 역사공부도 잘 하고 소풍 겸해서 시원한 바람도 쏘여라~~!!

멋진 한옥을 연상시키는 홍릉의 재실.

재실은 릉을 관리하는 릉참봉이 근무하고 제향때에는 제관들이 머물며 제향준비를 하는 공간.

100여 년전에 지은 한옥치고는 잘 짓고 보존도 잘 된 재실.

재실 뒷편의 건물도 제법 운치있어 보이네요.
릉참봉이 근무하는 재실, 향을 보관하고 축문을 준비하는 안향청, 제기를 보관하던 제기고, 그외에 행랑으로 구성된 모습.

향나무가 특히 많은 홍릉.

숲길을 걸어 유릉을 찾아 갑니다.

대한제국 제2대 황제 순종(1874~1926)과 순명황후 민씨(1872~1904), 계비 순정황후 윤씨(1894~1966)를 모신 유릉.
전체 구조는 홍릉과 비슷하지만 능역은 홍릉에 비하면 크게 축소된 규모.

유릉은 1926년 대한제국 제2대 황제 순종의 릉을 조영하면서 순명황후 민씨, 계비 순정황후 윤씨(1894~1966)를 모셔왔는데요.
홍릉과 달리 능침공간과 제향공간의 축이 다르게 배치되어 있는 특이한 모습이기도.

일반 왕릉하고는 확연히 다른 모습의 유릉.
1897년 대한제국 선포로 황제국이 된후 중국의 명나라 태조인 효릉을 본받아 만든 모습으로 제법 위엄있고 장중해 보이기 까지 하는데요.
홍릉처럼 참도의 중앙부에 약간 높은 향로(香路)가 있고 좌우에 낮은 어로(御路)가 있으며 제향공간인 정자각을 일자형 침전(寢殿)으로 바꾸고 그 앞에 문석인을 비롯한 석물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

정자각 대신 침전이 조성된 모습.
유릉의 침전은 광진구 능동에 있던 순명효황후의 유릉에서 옮겨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침전 앞에 2열로 길게 늘어서 있는 문무석인 등 석물들.

문석인, 무석인, 기린, 코끼리, 사자, 해치(해태), 낙타, 석마 순서로 배치된 모습.

똑같은 형상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 석물들.
홍릉과 비교해 보면 석물들이 커지고 사실적으로 잘 만들어져 예술성도 뛰어나다는 생각이 드네요.

엄숙, 우람하고 사실적으로 잘 표현된 무석인.

역시 우람하고 예술성이 뛰어난 문석인.

측면에서 바라본 유릉의 침전 모습.
전면과 좌우에 석계가 있어 왕릉의 정자각과는 확연히 구조가 다른 모습.

침전 내부 모습.

조선시대 마지막 릉으로 침전하고 약간 틀어져 있는 유릉의 릉침공간.
넓고 부드러운 사초지가 무척 정성스러운데요.
순종과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가 한 봉분 안에 모셔진 동봉삼실(同封三室)의 합장릉 형식.

홍릉과 같은 모습으로 조영되었으며 가운데 순종, 우측에 순정효황후, 좌측에 순명효황후의 재궁을 두어 우왕좌비의 원칙을 따르지않았다고.

유릉 비문 - '대한 / 순종효황제유릉 / 순명효황후부좌 / 순정효황후부우( 大韓 / 純宗孝皇帝裕陵 / 純明孝皇后祔左 / 純貞孝皇后祔右)'
지금의 표석은 1966년 순정효황후를 합장으로 모신후 1968년에 새로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홍살문 방향에서 바라본 유릉의 재실.

정확히 100년 된 건축물로 영화에도 가끔 등장하는 아름다운 건물이지요.

아름다운 건축미를 보여주는 유릉의 재실.

유릉의 어정.

재실 앞에도 어정이 있는데 지금도 사용중.

홍릉 옆에 있는 작은 문을 통해 담장 밖으로 나가면 황실 가족묘역에 갈수 있지요.

홍릉의 노송들은 정말 볼만한데요.
관리를 제대로 잘 하여 수도권에 있는 릉에서 낙락장송을 볼수 있으니 노고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강바람의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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