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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천하 제1경 화순적벽(和順赤壁)을 보다강바람의 국내여행 2026. 7. 9. 09:00
전남 화순군 이서면에 위치한 화순적벽을 찾았습니다.
화순적벽(和順赤壁)은 조선 10경에 견줄만한 웅장함과 아름다움으로 진작부터 세간에 회자되고 있었는데요.
40년 전인 1980년대 초에 동복댐 건설로 화순적벽이 물에 잠긴다는 소식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전국이 안타까워하는 소리로 떠들썩했었지요.
사진촬영이 취미인 사람으로서 신문스크랩까지 해놓고 꼭 다녀와야겠다는 신념이 가득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서울에서 너무 멀고 교통편도 원할치않아 차일피일 미루다 포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화순적벽을 보지못한 아쉬움을 지닌채 살아오다가 최근 소원을 풀게 되었으니 우연히 적벽 투어를 할수있다는 소식을 접한후 예약을 통해 곧바로 다녀올수 있었습니다.
다만 좋은 날씨였으면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을수 있으련만 날씨가 도와주질 않아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말았으며 또한 상시개방되어 있다는 물염적벽과 창랑적벽을 정보부족으로 방문하지 못했으니 아쉬움이 남네요.
화순적벽은 옛부터 명성이 자자하여 적벽을 보지못한 사람은 묵객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생겼는데요.
화순적벽은 동복천이 흐르는 이서면 창랑리, 보산리, 장학리 일대 7km에 걸쳐 있는 붉은 절벽을 말하며 대표적으로 물염적벽, 창랑적벽, 보산적벽, 장항적벽(일명 노루목적벽) 등 4개의 적벽을 말합니다.
높이 80m 직각으로 깎어지른듯 솟아있는 화순적벽은 예로부터 신비하고 수려한 절경을 자랑하던 곳으로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동복으로 유배왔던 신재 최산두 선생이 이곳의 절경을 보고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고 하여 적벽이라 명명했다고 전해 집니다.
신재 최산두(新齊 崔山斗, 1482~1536) 선생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호남사림을 대표하는 기묘명현(己卯名賢)중 한 분입니다.
이후 호남을 대표하는 하서 김인후, 담양 식영정의 주인 석천 임억령, 임진왜란때 의병장으로 활동하던 제봉 고경명 등 이름있는 선비들이 적벽을 찾았지요.
석천 임억령은 적벽을 유람하고 '적벽동천(赤壁洞天)이란 글을 남기기도 했고 조선 후기에는 실학자 홍대용과 정약용도 유람을 나섰고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불리는 난고 김병연도 여러번 다녀가고 말년에는 이곳에서 숨을 거둘 정도로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자랑합니다.
적벽은 오래전 부터 시인묵객도 많이 찾았지만 서민들의 휴식처이자 피서지로도 인기가 많았는데요.
1971년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1982~1985년 동복댐이 건설되면서 적벽 일부가 수몰되고 15개 마을도 물에 잠겼습니다.
그동안 동복댐 일대는 엄격하게 출입이 금지되어 오던중 30년 만인 2014년 적벽이 일부개방되었고 최근 예약에 의해 장항적벽 일대가 개방되었음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네요.
장항적벽과 보산적벽은 예약후 적벽투어를 통해서만 만날수 있지만 물염적벽과 창랑적벽은 상시개방으로 자유롭게 볼수있는걸 몰랐습니다.
그런데 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동복댐을 높인다는 소식이 들리네요.
정부가 광주에 서남권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시 용수 확보를 위해 동복댐을 높인다는 계획인데 만약 성사된다면 적벽은 물론 야사리마을을 비롯하여 천연기념물인 야사리은행나무까지 물에 잠기게 된다니 걱정입니다.
일단 묵은 소원은 풀었지만 10% 부족한 점이 있어 8월에 재차 방문, 장항적벽을 다시 음미하고 이번에 보지 못한 물염적벽, 창랑적벽도 둘러보고자 마음을 굳게 다져 봅니다.

무등산을 바라보며 화순적벽을 찾아 갑니다.

오호, 화순적벽을 보기 위해 불원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네요.ㅎㅎ
먼저 찾은 곳은 전남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야사마을.
옛날 무등산 규봉암에 갔을때 남쪽으로 화순땅을 바라본 적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여기였네요.

화순적벽을 탐방하기 위해 보름 전에 예약을 하고 오늘 적벽투어 버스를 타기 위해 집결장소인 야시리 이서커뮤니티센터에 도착.
넓은 운동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 초등학교가 있었나 보네요.

오호, 운동장 한 가운데에 있는 야사리느티나무 ~!
높이가 25m, 둘레가 5m 정도 되는데 수령은 약 400년으로 추정되며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로 야사마을의 자랑이지요.

이렇게 우아한 느티나무 고목은 보기 어렵지요.
지금도 마을에서 당제를 지내는 야사리느티나무는 마을공동체 신앙과 전통을 간직한 향토문화유산으로 의미가 큽니다.

느티나무 뒷편 산기슭에서 보는 적벽퇴적층.
화순적벽과 동일한 퇴적층으로 과거 백악기에 퇴적될 당시에는 거대한 단일분지로 형성되었다고.

야사마을은 무등산에서 발원한 영신천(동복천 상류)을 따라 형성된 자연촌락으로 넘 아름다운 청정지역.

오호, 마을 안쪽에서 천연기념물인 야사리은행나무를 봅니다.
조선 성종(1469~1484 재위)때 마을이 형성될 즈음 심은 것으로 추정되니 수령만해도 600년이 가까워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수령 600년의 고목이지만 아직도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놀라울 정도인데 마을에선 신목으로 여겨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내고 정성껏 모신다고 합니다.
정부가 광주에 서남권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시 용수 확보를 위해 동복댐을 높인다는 계획인데 만약 성사된다면 적벽은 물론 야사리마을을 비롯하여 천연기념물인 야사리은행나무까지 물에 잠기게 된다니 걱정입니다.

야사마을 구경을 빠짐없이 한 후 전용 투어버스에 앉았습니다.
화순적벽 여행은 6~8월에는 10:00. 14:00, 2차례만 운행하는 버스를 타야 하며 참가비 5,000원은 사전예약시 납부.
상수원보호구역이라 개인차량, 일반인은 절대 출입금지이고 투어버스로만 하루 2차례 들어갈수 있다네요.

왜 진작 몰랐나요~!
꿈인지 생시인지 40년을 별러온 여행이라 넘 가슴이 떨리네요.ㅎㅎ

40여명이 꽉 탄채 비좁은 임도를 달려 화순적벽을 찾아가는 모습.
적벽초소에서 망향정주차장까지는 4.8km라고 하는데 좁고 험하고 구불구불한 임도를 따라 산모퉁이를 여러번 돌며 들어가야 하니
아슬아슬, 오금이 저리기까지 하네요.ㅎㅎ
다행히 지난해에 비포장 상태의 임도를 포장하여 무척 편해졌다고 합니다.

차창 밖으로 보는 동복호.
제1전망대라고 하나 차에서 내리지는 못하게 하니 이럴수가~!
광주시의 주상수원인 동복댐은 1971년 소규모로 건설되었으나 1982~1985년 확장, 축조되어 인공호수인 동복호가 생기면서 적벽 일부가 수몰되고 15개 마을도 물에 잠긴 역사가 있는데요.
40년 전인 1980년대 초에 동복댐 건설로 화순적벽이 물에 잠긴다는 소식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전국이 안타까워하는 소리로 떠들썩했었지요.

오호, 제2전망대에 도착하여 바라본 화순적벽~!
감격스런 마음으로 화순적벽을 바라보려니 가슴이 미어지네요.동복호에 잠기기 전에는 천변의 마을 앞으로 얕은 물이 흐르고 흰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진 얼마나 목가적이고 또 적벽은 얼마나 웅장하고 멋졌을까요!
앞은 보산적벽, 뒷편은 장항적벽(일명 노루목적벽)으로 일생을 벼르다가 뒤늦은 이제야 찾아왔네요.흑흑.

바로 앞은 흰바위가 눈부신 보산적벽~!
비록 20m 가량 물에 잠겨있지만 예전에는 얼마나 수려하고 신비스러웠을지 상상해 봅니다.
보산적벽 위이며 앞으로 돌출된 곳은 망미정, 망향정, 망향탑 등의 시설들이 모여 있는 망향동산으로 잠시후 버스편으로 내려갈 예정.

과거 동복천은 동복호에 묻혀 그 형체나 물흐름을 볼수가 없네요.
천변에 여러 마을이 있었지만 동복호에 잠기면서 모두 고향을 등진채 외지로 떠나는 신세가 되었으니 아픔이 무척 크네요.

그림을 보면 보산적벽의 윗부분으로 강 안으로 돌출되고 장항적벽을 마주하고 있는 언덕에 모든 시설물들이 집중되어 있네요.
버스에서 내려 걸으며 통천문, 보안사터 석탑, 망미정, 망향정, 망향탑, 홍보관, 천제단 순으로 탐방.

장항적벽을 보러 통천문을 통과.

무등산 유네스코세계지질공원인 화순적벽 안내문.

언덕 위에 홍보관, 망향정이 있지만 동선이 나오면서 보게 되어 있네요.

동복댐 일대는 상수원보호구역.
1985년 부터 광주시에 상수원을 공급하면서 사람들의 접근을 일체불허했던 역사가 있는데 최근 조금씩 완하되면서 가까이에서 화순적벽을 볼수있게 되었지요.

한적한 대숲길을 걸어 내려가니,

숲속에 있는 보안사 절터의 석탑.
절이 있었던 흔적은 볼수 없고 파손이 심한 석탑만 보여 안타깝네요.

드디어 망미정이 보이기 시작.

이서면 장학리에 위치한 망미정(望美亭)은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본다는 뜻을 갖고 있는데요.
중재실을 갖춘 정면 3칸 측면 2칸의 골기와 팔작지붕으로 적송 정지준(丁之雋, 1592~1663)이 1646년(인조 24) 적벽 앞에 세운 정자.
우암 송시열의 제자인 정지준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화순에서 의병을 일으켜 남한산성으로 가던중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에 통곡하며 귀향한 후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했다고 합니다.

400년의 풍상을 거쳤음에도 원형이 잘 보존된 망미정은 건립 당시에는 적벽을 마주하는 강 둔덕에 있었으나 동복댐 건설때 수몰위기에 처하자 1983년 현 위치로 옮겼다고.

김대중대통령의 친필인 망미정 현판.
1986년 방문때 남긴 김대통령의 친필인데 대단한 명필이시라 놀랐습니다.

화순적벽에 대해 설명하는 해설사선생님.
적벽은 80m 높이지만 20m 가량 수몰되고 현재 60m 정도만 지상에 남아 있다고.

강건너에서 바라본 화순적벽중 최고의 절경으로 손꼽히는 장항적벽(일명 노루목적벽).
강을 건너 바로 앞에서 올려다 보았으면 얼마나 더 웅장하니 멋있었을까요!
산의 형세가 노루의 목을 닮았다고 하여 노루 장(獐), 목덜미 항(項) 자를 써서 노루목적벽으로도 불리는데요.
높이 80m 직각으로 깎어지른듯 솟아있는 화순적벽은 예로부터 수려한 절경을 자랑하던 곳으로 1519년 기묘사화 후 동복으로 유배왔던 신재 최산두 선생이 이곳의 절경을 보고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고 하여 적벽이라 명명했다고 전해지며,
김삿갓이 여러번 다녀가고 말년에는 이곳에서 숨을 거둘 정도로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자랑합니다.

적벽이 물에 20m나 잠겼지만 웅장하고 신비스런 모습은 여전한데요.
과거 높고 웅장한 적벽 아래로 얕은 시냇물이 흐르며 한 여름이면 고운 모래밭에서 물놀이를 하던 광경이 눈에 가물거리네요.
적벽 위의 높은 산은 옹성산(572m)으로 항아리를 엎어 놓은듯한 모습의 봉우리가 여럿이라 붙은 이름이며 산세가 험한 전략요충지여서 옛부터 산성을 쌓아 철옹성으로 외세 침입에 대비했다고 합니다.

적벽의 명승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나주목사 김성일, 영의정 김수항, 대사헌 임영, 한말의 이건창, 고정주, 독립운동가 장준하 등 수많은 시인묵객이 시문을 남겼으며
동복적벽을 주제로 한 김병연(김삿갓)의 시 '蘭槳己斷望美哥(난장기단망미가)'에 '망미(望美)' 라는 글자가 나오는데 이는 현재의 망미정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해설사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사진 정중앙의 네모난 바위 바로 아래에 1847년 동복현감 이인승이 새긴 적벽동천(赤壁洞天) 글씨가 있다고 하며,
그 아래에 옆으로 길게 주름처럼 생긴 곳이 잔도길이어서 옛날에는 벼랑길을 걸어 한산사 절과 강선대 정자를 오갔다고 하며 음력 4월초파일에는 낙화놀이도 했다고 합니다.

망미정 윗편의 망향동산에 있는 망향정(望鄕亭).
망향정에 서면 장항적벽에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데요.
1983년 동복댐 건설로 적벽이 물에 잠기고 15개 마을의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게 되자 장두석 선생의 주도하에 윤창병 목수가 지었다고.

망향정 뒷편에 세워진 망향탑과 주위에는 수몰된 15개 마을을 상징하는 망향비.

망향동산에는 망향정을 비롯하여 망향탑, 적벽동천과 적벽팔경이 새겨진 비석, 망향비와 망배단, 천제단을 볼수 있지요.
고향을 잃고 선산에 가지 못하는 수몰민들이 모여 매년 시제를 모시고 천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망향동산에서 실향민들의 아픔을 되새겨 보는데요.
동복천에 의지하여 적벽을 보며 살던 많은 사람들은 동복댐이 축조되면서 보상도 제대로 못받고 거의 강제로 쫓겨나 모두 뿔뿔이 흩어졌으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클지 늦게나마 실향민에 심심한 위로를 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화순적벽 홍보관.
출입문에 쓰인 '불유적벽비묵객(不遊赤壁非墨客)'은 적벽에서 놀아보지 못한 사람은 묵객이 아니다라는 뜻
내부는 무척 비좁지만 동복호에 수몰되기 전의 마을의 역사유래와 풍경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어 흥미롭습니다.

노루목적벽(장학리)의 옛 모습 - 홍보관 사진
현재 망미정에서 보는 풍경과 비슷하나 물에 잠기기 전이라 적벽이 상당히 높고 웅장한 느낌을 주며 강가에는 마을이 보이고 농경지가 넓게 펼쳐진 모습입니다.

석복마을(도석리)의 옛 모습 - 홍보관 사진

보산마을(보산리)의 옛 모습 - 홍보관 사진

보산적벽(보산리)의 옛 모습 - 홍보관 사진

장월마을(월산리)의 옛 모습 - 홍보관 사진

석천 임억령은 적벽동천(赤壁洞天)이라고 명하였고 하서 김인후는 적벽시를 읆음으로서 만국의 명승지가 되었으며
1847년 부임한 동복현감 이인승이 적벽동천(赤壁洞天)이라는 글자를 새겼습니다.

화순적벽 위치도.
일단 묵은 소원은 풀었지만 10% 부족한 점이 있어 8월에 방문, 장항적벽을 다시 음미하고 이번에 보지 못한 물염적벽, 창랑적벽도 둘러보고자 마음을 굳게 다져 봅니다.

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동복댐을 높인다는 소식이 들리네요.
정부가 광주에 서남권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시 용수 확보를 위해 동복댐을 높인다는 계획인데 만약 성사된다면 적벽은 물론 야사리마을을 비롯하여 천연기념물인 야사리은행나무까지 물에 잠기게 된다니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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