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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정족산을 찾아 전등사와 삼랑성을 답사하다.강바람의 유적답사 2013. 10. 23. 22:44
2013.10/23(수) 친구 H와 함께 강화 정족산을 등정하며 전등사와 삼랑성(일명, 정족산성)을 답사한 내용입니다.
사적 제130호인 삼랑성(三郞城)은 단군의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였다고 하여 붙은 이름인데, 일명 정족산성(鼎足山城)으로도 불리웁니다.
정족산성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정족산을 중심으로 3개의 봉우리가 세발 달린 가마솥과 같은 형상이라 그런 이름이 붙은거지요.
정족산성 안에는 유서 깊은 전등사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정족산사고", 왕실족보를 보관하던 "선원보"가 있으며,
또한 1866년 병인양요때 양헌수(梁憲洙) 장군이 프랑스군을 물리쳤던 역사적인 현장이기도 하지요.
사진으로 간략히 소개드립니다
* 오늘은 해발 220m에 불과한 강화 정족산을 등정하며 전등사와 삼랑성을 답사하기로 하였습니다.
* 삼랑성의 동문을 통하여 삼랑성(정족산성) 안으로 진입합니다.
* 정족산에 오르기 전, 방문한 고색창연한 전등사(傳燈寺) 경내 풍경
* 전등사 대웅전(보물 제178호) 추녀 밑에 끼워져 있는 나녀상(裸女像).
광해군 6년(1614) 대웅전 중수공사때 공사를 맡은 도편수가 아랫 마을 주모와 정분이 났는데 공사가 끝날 무렵 주모는 도편수의 임금을 갖고 중행랑을 놓았다고 합니다.
도편수는 그 여인을 닮은 네개의 나체상을 만들어 법당의 네 귀에서 추녀를 떠받치게 했는데 이는 부처의 설법을 듣고 개과천선하라는 뜻이 있다고 하네요. ㅎㅎ
* 전등사 뒷편 숲속에는 1999년 복원된 정족산사고(鼎足山史庫)가 있답니다.
조선시대때 이곳 사고에서 잘 보관되던 조선왕조실록은 다시 외규장각으로 옮겨졌다가 프랑스군에게 화를 입었고, 얼마남지 않은 서책은 서울대 규장각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지요.
* 전등사와 정족산사고를 답사한후 본격적으로 산성을 따라 정족산을 오릅니다. 사진은 삼랑성(정족산성)의 자그마한 북문.
* 삼랑성(정족산성)은 해발 220m 정족산을 따라 약 2km 규모의 산성이니 쉬이 답사가 가능하지요.
* 정족산을 오르며 바라본 강화의 풍요로운 벌판 풍경.
* 해발 220m 정족산 정상에 서서 서해를 조망해 봅니다. 야~~호!
* 정족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동쪽으로 산성이 그림처럼 잘 보이지요.
* 무지개 모양을 하고 있는 서문. 벽돌을 사용한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때 개축한 것으로 보입니다.
* 근래 보수복원한 성벽을 따라 남문쪽으로 걸어 갑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하늘이 푸르네요.
* 산위에서 바라본 고찰 전등사와 주위 풍경.
* 고찰 전등사의 규모가 제법 크고 번듯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스님들이 산성(山城)지키랴 사고(史庫)지키랴,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는 사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것 같습니다.
* 친구 H부부와 함께.
* 산성을 따라 다시 동문쪽으로 하산하며 정족산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정족산 둘레 약 2km를 걷는데 약 1시간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산행이라기 보다는 가벼운 산책으로 봐야할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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