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바람의 유적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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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건설된 철원수도국터 급수탑(給水塔) 답사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3. 12. 08:36
철원 소이산 남쪽 언덕에 있는 옛 철원수도국터 급수탑을 답사하였습니다. 본 수도국터 급수탑은 1936년, 철원읍 주민들의 식수공급을 위해 율이리 안양골 취수장에서 사요리 정수장으로 이어지는 강원도 내 최초의 상수도 시설입니다. 수도국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저수탱크와 정수장, 3기의 급수탑, 관리소 등의 시설을 갖추었던 곳으로 철원읍 500여 가구 2,500여 명에게 하루 1,500㎥가량의 식수를 공급하였습니다. 일제때 강원도 철원까지 완벽한 상수도 시설을 갖추었다니 놀랍기만 하네요. 이 시설들은 지어진 위치에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 급수시설의 모습을 살펴볼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에 등록문화재 제160호로로 지정,관리중입니다. 한편 이 시설은 사상대립으로 인한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증언하는 자료이기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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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여주 영릉재실(寧陵齋室)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3. 6. 07:55
여주 효종의 영릉재실(寧陵齋室)을 탐방하였습니다. 왕릉의 재실은 참봉이 평상시 릉을 관리하기 위해 머무르는 곳이며, 제향을 지낼 때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준비하는 공간으로 릉 입구에 자리하고 있지요. 여주 효종의 영릉재실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재실(齋室) 건축으로 2007년 보물로 지정된바 있으며 1659년(현종 원년) 경기도 양주군(현 구리시 동구릉)에 처음 조성할때 지었던 것을 1673년(현종 14) 왕릉을 이곳으로 옮길때 함께 옮겨온 것입니다. 영릉의 재실은 안향청, 제기고, 재방(재실), 행랑채, 우물 등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조선왕릉의 재실 대부분은 일제강점기와 6.25 사변을 거치면서 원형이 훼손되거나 일부만 남아 있던걸 복원한 것이나 영릉재실은 조선시대 왕릉재실의 기본형태가 가장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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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서울식물원 내 구.양천수리조합의 배수펌프장 답사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2. 18. 09:27
서울 강서구 마곡동, 서울식물원 안에는 구.양천수리조합의 배수펌프장이 있습니다. 배수펌프장은 콘크리트 구조 위에 세운 목조건축물로 1923년에 설립된 양천수리조합이 1925년에 을축대홍수를 겪은후 배수펌프장 건립을 추진하여 1928년에 지은 것인데요 배수펌프장은 홍수조절용으로 물을 퍼내는 시설을 말합니다.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초기 배수장 관련 건축물로는 양천수리조합의 배수펌프장이 유일하다고 하며 더구나 근대적 동력으로 농업피해를 방지하는 시설이었으니 당시 농민들에게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고 하네요. 한강 하구인 드넓은 김포평야는 범람원으로 비옥해서 농토로는 적합했지만 저지대여서 침수에는 매우 취약했는데요. 김포평야 178만평을 관리하는 양천수리조합은 물 공급 못지않게 홍수피해로 부터 농지를 보호하는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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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옆, 한양도성 각자성석의 위치변천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2. 11. 20:39
동대문 옆, 한양도성 낙산성곽의 끊어진 단면에는 13개의 각자성석이 모여 있는데요. 숙종 32년(1706) 4월, 삼군문의 하나인 훈련도감(훈국)에서 한양도성을 개축할때 끼워넣은 각자성석인데 이렇게 집단으로 있는건 이곳이 유일합니다. 원래는 동대문과 연결된 성벽에 위치해 있던 걸로 추정되는데 1911년 일제때 전차선로를 가설하면서 동대문 북쪽의 성벽을 헐때 옆으로 옮겨졌고 1970년대, 2010년대 등 몇번의 개보수과정을 거치면서 또 조금씩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본 각자성석은 동쪽 성벽 밖에 있었습니다. 10년 전에 바로 옆의 성벽 절단면으로 옮겼는데 옮기는 과정에서 이열로 있던걸 일렬로 나란히 배치한 역사가 있지요. 왜 잘 있던걸 절단면으로 옮겼는지 또 이열이었던 것을 왜 일렬로 나란히 배치했는지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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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의 각자성석(刻字城石)을 찾아서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2. 9. 10:54
조선이 한양을 수도로 삼으면서 태조 5년(1396) 전국에서 20만명의 백성이 동원되어 한양도성(漢陽都城)을 축성하였는데 도성의 둘레는 약 18.6km에 달했습니다. 도성의 성벽 곳곳에는 축성과 관련된 기록이 새겨진 각자성석(刻字城石)이 끼워져 있는데요. 각자성석은 한양도성 축성기록을 품은 역사자료이자 도성 축성에 참여한 백성들의 노고를 확인할수 있는 증거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수 있지요. 각자성석은 조사결과 297개에 달하며 내용에 따라 천자문, 군현(지명), 이름 및 직책 각자로 구분합니다. 천자문 각자(14C)는 천자문을 통해 도성구간을 표시한 것으로 도성 전체를 600척(약 180m)씩 97개 구간으로 나누고 각 구간에 천자문 순서대로 한 글자씩 자호(字號)를 새겼으며 백악산 동쪽에서 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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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남한강변 봉미산 신륵사(神勒寺) 탐방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1. 9. 08:39
2024.1/6(토) 오랜만에 여주 봉미산 신륵사를 탐방하였습니다. 남한강(여강)변에 자리하여 풍광이 무척 뛰어난 신륵사는 고려말의 고승 나옹화상이 1376년 양주 회암사에서 밀양 영원사(瑩源寺)로 가던 도중 이곳 신륵사에서 입적하여 더욱 유명해졌지요. 또한 1469년(예종 1) 세종대왕의 영릉이 능서면 왕대리로 이장해 오면서 신륵사를 원찰로 삼아 절 이름도 잠시 보은사(報恩寺)라 불렀으며 전각과 당우도 새롭게 꾸민 역사가 있습니다. 중요문화재는 보물이 8점으로 제180호인 조사당, 제225호인 다층석탑, 제226호인 다층전탑, 제 228호인 보제존자 석종부도, 제229호인 보제존자 석종비, 제230호인 대장각기비, 231호인 보제존자석종부도 앞 석등 , 제1791호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이 있고 유형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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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깊은 지평양조장 답사강바람의 유적답사 2023. 12. 30. 23:07
2023.12/26(화) 방문한 양평군 지평리는 너른 농경지에 있고 질 좋은 쌀이 생산되어 옛부터 막걸리가 유명했지요. 지평막걸리를 생산하던 지평양조장은 1925년 설립되어 3대에 걸쳐 전통방식으로 막걸리를 생산하던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으로 치더군요. 시설증설이 불가하여 춘천, 천안으로 공장을 옮겼지만 근래까지도 이곳에서 지평막걸리를 만들었던 역사가 있지요. 2년전 보수과정을 거쳐 새로 태어난 지평양조장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건축의 특징을 고루 담고 있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이 또 주목받는 이유는 1951년 2월의 지평리전투때 피아간의 폭격으로 모든 건물이 사라졌지만 이 건물만은 유일하게 남아 지평리전투 당시 프랑스군의 지휘소로 사용되었었기 때문. 당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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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성묘, 광해군 묘, 임해군 묘 답사기강바람의 유적답사 2023. 12. 22. 16:19
2023.12/22(토) 남양주시 진건읍 송릉리에 있는 성묘, 광해군 묘, 임해군 묘를 답사하였습니다. 성묘(成墓)는 조선 14대 선조의 후궁이자 임해군, 광해군의 생모인 공빈김씨(1553~1577)의 묘. 공빈은 김희철의 딸로 선조의 후궁이 되어 총애를 받았으나 임해군, 광해군을 낳고 24세인 1577년(선조 10)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광해군은 왕위에 오른후 생모를 공성왕후로 추존하고 릉의 이름을 성릉(成陵)이라고 하였으며 신주를 종묘에 모셨으나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자 다시 공빈으로 신분이 낮아졌지요. 조선 15대 광해군(1575~1641, 재위 1608~1623)은 선조와 공빈김씨의 둘째 아들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세자로 책봉되어 적극적으로 왜군에 대항하였으며 왕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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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외성의 제물진 갑곶돈대(甲串墩臺) 답사강바람의 유적답사 2023. 11. 26. 20:41
강화외성의 갑곶돈대(甲串墩臺)를 답사하였습니다. 구. 강화대교가 지나던 곳에는 옛날부터 갑곶나루가 있어 내륙과 강화도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었습니다. 강화 제1관문이었던 갑곶은 1232년 고려가 강화로 천도한 후 몽골과의 줄기찬 항전을 계속하며 염하강을 지킨 가장 중요한 요새였는데요. 그땐 염하강을 굳건히 지켰지만 400년이 지난 1636년 병자호란때에는 방심한 틈을 타고 청병들이 뗏목을 타고 들어와 갑곶을 부수고 강화도를 함락시킨바 있었지요. 갑곶에 제대로 된 돈대가 들어선건 1679년(숙종 5)의 일. 강화방비를 강화하기 위해 동쪽의 염하해안에 48개의 돈대를 축조하였는데 갑곶돈대는 부근의 망해, 제승, 염주돈대와 함께 제물진의 관할하에 있었고 8문의 대포를 갖춘 갑곶포대를 설치하였습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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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강화제1관문 진해루(鎭海樓) 답사강바람의 유적답사 2023. 11. 20. 21:25
강화해협 갑곶나루에 있던 강화제1관문 진해루(鎭海樓)가 근래 복원되어 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강화도 갑곶나루에는 갑곶돈대만 있는줄 알았지 진해루가 있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놀랍게도 우리 선조들은 염하강 해안가에 강화외성을 쌓았고 갑곶나루에는 진해루를 세워 외침에 대비했었네요. 진해루 탐방을 앞두고 지난 밤에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잠까지 설쳤습니다. 일기예보대로 날씨가 맑을지, 카메라 포인트는 어디에서 어떻게 잡을지, 햇빛 방향은 어찌되며 탐방코스는 어찌 잡아야 할지 등을 생각하려니 잠이 올리가 없지요. 진해루는 강화외성에 있는 제물진(갑곶진)의 성문으로 고려시대 부터 내륙에서 염하강 갑곶나루를 통해 강화도로 들어갈수 있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었습니다. 이곳은 강폭이 무척 좁고 내륙으로 오가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