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바람의 유적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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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근대역사길 1코스(배움과 선교)를 걷다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6. 19. 08:42
2024.6/18(화) '정동 근대역사길 역사보행탐방로'를 걸었습니다. 중구 정동(貞洞)은 조선에서 대한제국에 이르는 역사의 원형이 남아 있는 지붕없는 박물관이자 근대역사 유산과 현대문화가 공존하는 서울의 대표적인 역사문화 명소입니다.서울시에서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쌓여 있는 이곳에 '정동근대역사길 역사보행탐방로'를 만들었는데요. 정동산책을 하며 만난 5개 코스는1코스(배움과 선교)는 조선시대 서학당, 근대 덕수궁 양이재와 성공회성당이 위치한 배움과 선교의 길, 2코스(옛 덕수궁 궁역)는 덕수궁 선원전 영역이 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훼손되어 사라진 아픔의 길,3코스(외교타운)는 근대 서양의 외교공관이 밀집되어 당시 공사관 거리로 불리던 외교역사의 길,4코스(신문화와 계몽)는 정동교회, 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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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장조)와 정조가 잠들어 있는 화성 융,건릉 탐방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6. 14. 16:02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융.건릉을 찾았습니다. 융,건릉은 사도세자인 추존 장조(1735~1762)와 현경황후 홍씨(1735~1815)를 안장한 융릉과 정조(1752~1800)와 효의 황후 김씨(1753~1821)를 안장한 건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먼저 찾은 곳은 사도세자의 묘인 융릉(隆陵).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는 영조의 둘째 아들이자 정조의 생부이며 혜경궁 홍씨는 부인입니다.어려서는 매우 총명하고 글과 시를 잘 지었고 무예에도 뛰어났으나 영조를 대신한 대리청정을 보게 되면서 노론과의 마찰을 빗고, 급기야 영조 38년(1762) 나경언의 고변사건으로 왕세자에서 폐위된 후 27살때 뒤주에 갇힌지 8일만에 세상을 떠났지요.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 수은묘로 만들었다가 정조가 왕위에 오르며 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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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복자기나무 숲길을 탐방하다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6. 9. 22:42
광릉 복자기나무 숲길을 탐방하였습니다. 광릉은 조선 제7대 세조와 정희왕후의 릉으로 동원이강릉으로는 최초의 사례이지요.광릉을 찾은 이유는 국가유산청 출범을 기념하여 6/30(일)까지 한시적으로 개방한 복자기나무 숲길을 걷기 위함인데요.개방된 숲길이 릉 뒷편을 걷는 코스인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릉 진입로 좌측에 있는 숲길을 걷는 약 1.1km 구간이더군요.단풍나무의 일종인 복자기나무가 많아 이름 붙은 복자기나무 숲길에는 복자기나무, 전나무, 잣나무, 느티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어 걷는 내내 행복감에 빠져드는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광릉숲은 보면볼수록 탄성을 지르게 되는데요.처음에는 평탄한 숲길을 걷다가 작은 능선길을 넘어 내려서면 세조와 정희왕후가 잠든 광릉이 나타나지요.숲길도 걷고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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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릉 외금천교(外禁川橋)와 외연지(外蓮池)터 탐방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6. 7. 08:13
동구릉 외금천교와 외연지터를 탐방하였습니다. 동구릉은 조선 태조의 건원릉이 조성된 1408년부터 경릉에 헌종의 두번째 왕비 효정왕후가 모셔진 1904년까지 500여년에 걸쳐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가 모셔진 곳입니다.동구릉 입구에는 원래 신성한 왕릉의 공간과 속세 공간을 구별하는 물길인 금천이 흐르고, 두 영역을 이어주는 돌다리인 금천교와 물길이 흘러드는 연못인 연지가 있었습니다.동구릉 내 각 왕릉 진입공간의 금천교, 연지와 구별하여 외금천교와 외연지라고 했는데요.외금천교와 외연지의 모습은 1975년에 촬영한 항공사진에서도 확인할수 있으나 이후 동구릉 입구를 지나는 43번 국도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철거되었으며 석재는 동구릉 경내에 옮겨져 숲속에 보관되었습니다. 외금천교의 부재를 분석한 결과 2개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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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객사였던 풍패지관(豊沛之館) 탐방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5. 2. 14:45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3가 1번지에 위치한 전주객사였던 풍패지관(豊沛之館)을 탐방하였습니다. 풍패지관 현판이 붙어있는 웅장한 건물은 조선 전기에 건립된 전주객사(全州客舍)로서 전주를 찾아온 벼슬아치와 사신을 대접하고 묵게 하던 숙소이며 보물 제583호.조선시대에는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으며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에는 축하의식을 행하였으며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신 주관과 숙소로 사용하던 익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풍패(豊沛)란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의 고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왕조의 본향(本鄕)을 일컫는데요.전주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본향으로 풍패지향이라 하고 전주객사는 풍패지관이라고 하였으며 주관에 걸린 거대한 편액은 전주객사의 위상을 잘 보여 줍니다.현재는 주관과 동.서익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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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전주 경기전(慶基殿) 탐방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5. 2. 14:36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가 102에 위치한 경기전을 오랜만에 찾았습니다. 전주(全州)는 전주이씨의 관향이며 조선왕조의 발상지로서 태조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 시조의 위패를 모신 조경묘와 조선왕조실록을 모신 전주사고가 있는 가장 신성하고 위엄있는 곳입니다.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을 모신 경기전은 1410년(태종 10) 창건하였는데 경기(慶基)는 조선왕조가 일어난 경사스런 터를 의미합니다.경기전은 1597년(선조 30) 일어난 정유재란때 불에 타 사라졌지만 1614년(광해군 6)에 다시 중건한바 있으며 1676년(숙종 2)에는 옛 전주사고 자리에 별전을 세워 유사시 태조의 어진을 임시로 모시는 역할을 했습니다. 전란이 일어날때마다 어진은 피란길을 떠났는데요.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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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의 최고통치기관이었던 전주부성의 전라감영(全羅監營) 탐방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5. 2. 14:29
조선시대에 한성부와 평양부 다음가는 대도시였던 전주부(全州府)에는 규모가 큰 전주부성(全州府城)이 있었으며 전주감영, 풍패지관, 경기전 등 핵심 건축물은 모두 전주부성 안에 있지요. 전라감영(全羅監營)의 위치는 전주시 완산구 노송광장로 10, 옛 전북도청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전라감영은 전라감사가 근무하는 관아라는 뜻으로 완영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전주의 옛 지명인 완산에서 나온 말이며 조선시대 전라도는 제주도까지 포함한 지역으로 이 모두를 총괄한 지방통치관서 전라감영은 조선왕조 500여 년 내내 전주에 자리했습니다. 1만2천평의 대지에 수십동의 건물들로 이루어져 전라도의 최고통치기관이었던 전라감영은 일제때 모두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1921년, 전북도청이 들어섰는데 2005년 이전할때까지 전북도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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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봄에 찾은 정순왕후 송씨의 사릉(思陵)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4. 12. 09:16
새봄을 맞아 찾은 조선 제6대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의 사릉(思陵)!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 宋氏, 1440~1521)는 14세에 단종과 결혼하였으나 후사도 없이 17살에 헤어져 죽음도 보지 못한채 82살까지 살았던 가장 한많은 여성입니다. 송씨는 1454년(단종 2)에 왕비에 책봉되었으나 다음해에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넘겨주자 의덕왕대비(懿德王大妃)가 되었는데요. 그러나 1457년(세조 3) 단종복위운동이 실패하자 단종은 노산군(魯山君)으로 신분이 낮아져 영월로 유배되었고 정순왕후는 군부인으로 신분이 낮아졌지요. 궁을 나온 정순왕후는 동대문 밖에 있는 정업원(淨嶪院)에서 한많은 여생을 보냈는데 정업원 앞 동망봉에 올라 영월이 있는 동쪽을 바라보며 단종을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이후 1521년(중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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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의 원조, 진천 덕산양조장 탐방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3. 21. 08:24
진천 덕산양조장을 찾았습니다. 덕산양조장(세왕주조)은 일제때인 1930년에 완공한 막걸리 생산공장. 함석으로 된 합각지붕을 얹은 단층 목조건물로 백두산에서 자생하는 전나무와 삼나무로 사용하여 지었는데 당시 양조장의 전형적인 본 모습을 알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높아 2003년에 국가등록문화재 제58호로 지정되었지요. 백두산의 전나무, 삼나무를 압록강제재소에서 다듬어 수로를 이용하여 진천까지 운반해 왔다는 후문. 지붕, 벽, 창문 등 건물형태가 막거리 발효 조건에 알맞은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또 정문 앞 측백나무는 햇빛을 막고 특유의 향으로 유해균 번식을 억제했다고. 양조장 안에 보이는는 우물은 진천의 깨끗한 물을 이용하여 직접 막걸리를 생산하기 위해 내부에 만든 모습인데 양평의 지평양조장에도 건물 안에서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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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행궁(華城行宮) 탐방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3. 15. 08:42
오랜만에 수원 화성행궁(華城行宮)을 탐방하였습니다. 화성행궁은 조선 정조 13년(1789)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부 읍치 자리로 옮기고 원래의 수원부 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겨 오면서 행궁과 관청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하였는데요. 정조는 수원도호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켜 위상을 높이고 1795년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치뤘으며 1796년 전체 600여 칸 규모로 완공되었습니다. 화성행궁은 조선시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으며 건립 당시의 모습이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에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1911년 부터 행궁은 철저히 파괴되고 자혜의원, 수원경찰서, 신풍초등학교 등으로 사용되면서 낙남헌과 노래당만 본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