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
남양주 오남호수공원 산책강바람의 국내여행 2024. 3. 10. 13:16
최근 국지도 98호선 오남,수동간 도로(8.1km)가 개통되었습니다. 천마산 능선(천마지맥)으로 단절되었던 남양주의 동서가 연결되니 교통불편 해소는 물론 지역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사건인것 같습니다. 개통된 도로를 달려본 후 가까운 오남호수공원을 찾았습니다. 오남읍 오남리에 있는 오남호수공원은 1985년에 준공되어 오남리, 양지리, 연평리, 사릉리 일대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던 저수지였습니다. 그러나 농경지에 신도시가 건설되는등 차츰 도시화되면서 2008년 호수공원으로 조성하게 된것 인데요. 호수공원에는 3.1km의 둘레길이 조성되어 산책로로 애용되고 있고 각종 편의시설도 갖추어져 남양주 시민들의 훌륭한 여가시설로 손색이 없더군요. 특히 산책로에서 동쪽으로 바라보이는 천마산 풍경이 일품이고 서쪽으로는 ..
-
철원 한탄강 물윗길(8.5km)을 걷다강바람의 국내여행 2024. 3. 9. 11:36
2년만에 철원 한탄강 물윗길을 다시 걸었습니다. 물윗길 구간은 직탕폭포~태봉대교~송대소~고석정~순담대교까지 전체 8.5km인데 부교 3.3km, 강변길 5.2km.강물 위의 부교를 걷다가 강변길을 걷는 길이 섞여 있는데 예전보다 강변길은 줄고 부교의 길이가 대폭 늘어났음을 알수 있었습니다.강 안에 들어가 물윗길을 걸으며 한탄강의 주상절리와 수직단애, 기암괴석을 즐기며 걸을수 있으니 정말 흥미진진한 일이 아닐수 없네요. 다만 물윗길 조성과정에서 자연훼손 사례를 여러곳 볼수 있었으며 또한 수직절벽 위에 카페 등 상업시설이 우후죽순 들어서며 경관을 훼손함은 다소의 아쉬움으로 남네요.철원군에서 좋은 시책을 내어 자연훼손이 최소화되도록 노력해야 되겠습니다.그리고 이번에도 시간관계상 지질명소이며 한탄강의 지류인 대..
-
루악오디오 R4mk3가 있어 행복한 일상~!강바람의 일상 2024. 3. 7. 10:42
루악오디오와 음악생활을 시작한지도 벌써 4년~! 루악오디오는 경쾌하고 부드러운 음질과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루악 리모컨을 찾아 전원을 켜는 일. 하루도 빠짐없이 경쾌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일상을 시작하니 이보다 더 좋을수가 없고 생활자체가 바로 루악오디오라는 생각도 듭니다. 처음엔 R2mk3와 인연을 맺었지만 뭔가 2% 부족하여 R4mk3로 옮겼는데요. 맑고 청량한 음질을 보강해줄 CD기능도 있고 우퍼스피커도 있으니 풍성한 소리의 만족도는 더욱 큰것 같습니다. 이젠 루악없이는 살수없으니 부디 잔고장없이 내 곁에서 인생후반부를 잘 이끌어 주길 부탁하고 싶네요. 아름다운 루악 R4mk3가 있어 행복합니다~~!!
-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여주 영릉재실(寧陵齋室)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3. 6. 07:55
여주 효종의 영릉재실(寧陵齋室)을 탐방하였습니다. 왕릉의 재실은 참봉이 평상시 릉을 관리하기 위해 머무르는 곳이며, 제향을 지낼 때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준비하는 공간으로 릉 입구에 자리하고 있지요. 여주 효종의 영릉재실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재실(齋室) 건축으로 2007년 보물로 지정된바 있으며 1659년(현종 원년) 경기도 양주군(현 구리시 동구릉)에 처음 조성할때 지었던 것을 1673년(현종 14) 왕릉을 이곳으로 옮길때 함께 옮겨온 것입니다. 영릉의 재실은 안향청, 제기고, 재방(재실), 행랑채, 우물 등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조선왕릉의 재실 대부분은 일제강점기와 6.25 사변을 거치면서 원형이 훼손되거나 일부만 남아 있던걸 복원한 것이나 영릉재실은 조선시대 왕릉재실의 기본형태가 가장 잘..
-
마포에 있는 문화비축기지 탐방강바람의 국내여행 2024. 2. 26. 08:47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문화비축기지를 탐방하였습니다. 서울이나 마포라는 명칭이 앞에 붙었으면 좋으련만 그냥 문화비축기지네요.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되었던 마포 석유비축기지는 총 5기의 석유탱크에 약 6.907만 리터의 휘발유, 경유, 등유를 보관하던 1급 보안시설이었습니다. 서울시민이 한달간 사용할 양이었지만 숲으로 가려져 보이지도 않았고 무슨 시설인지 알수도 없었지요. 1978년 완공되어 운영되던중 2002년 월드컵개최를 계기로 안전을 위해 폐쇄되었다가 시민아이디아공모전을 통해 2017년 9월,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것 입니다. 문화비축기지는 석유비축기지의 특성을 살리고 자원을 재생하여 문화를 담고 향유하는 복합문화공간이 되었는데요. 석유를 보관하던 탱크는 전시,공연,축제가 펼쳐지는 문화공간으로, 빈..
-
철원 백마고지전적지(白馬高地戰蹟地) 탐방강바람의 국내여행 2024. 2. 24. 12:52
가장 치열했던 철원 백마고지 전투! 1952년 10월 6일 새벽, 395고지 주봉에 대한 중공군의 공격으로 백마고지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한반도의 중심부인 철원, 평강, 김화를 잇는 철의 삼각지는 교통, 지리, 군사적 요충지로 일대를 차지하기 위한 전투는 피할수 없었지요. 우리 9사단과 중공군은 맹렬한 포격전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12차례의 고지 쟁탈전이 벌어졌고 7번이나 고지 주인이 바뀌는 혈투가 벌어졌는데요. 피비린내 나는 공방전을 치른 결과 9사단에 의해 중공군은 많은 병력을 잃었고 결국 395고지 북쪽의 낙타능선상의 전초기지를 탈환하면서 중공군을 완벽하게 몰아내는데 성공하며 백마고지 전투의 신화를 만들었습니다. 수십만발의 포탄이 떨어진 395고지는 하얗게 된 민둥산의 모습으로 흡사 하얀 말이 누워..
-
소이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철원평야(재송평)와 북녘 평강고원.강바람의 국내여행 2024. 2. 24. 12:42
눈이 살포시 내린 철원을 찾았습니다. 한탄강을 뒤로 한채 눈덮힌 철원평야가 보고 싶어 소이산전망대에 올랐습니다. 소이산(362m)은 드넓은 철원 재송평을 시원하게 바라볼수 있는 해발 362m의 작은 산봉우리이지만 조망이 탁월하여 조선시대에 봉수대가 있을만큼 전략적으로 뛰어난 곳. 미군기지가 있었으나 철수한 후 전망대를 조성하여 드넓은 재송평과 북한 지역 또 6.25 사변때 폭격으로 사라져 버린 구.철원읍을 바라볼수 있어 더욱 뜻이 깊지요. 소이산전망대의 출발점인 철원역사문화공원은 철원읍 사요리에 세운 근대 철원의 복원거리. 민통선 안에 있는 옛 철원의 번성하던 시기를 회상하여 만든 거리로 금강산가던 사람들이 철원역에서 내려 물건을 사고 다시 전철로 갈아타고 금강산으로 가던 시절을 재현한 곳입니다. 전쟁으..
-
강서구 서울식물원 내 구.양천수리조합의 배수펌프장 답사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2. 18. 09:27
서울 강서구 마곡동, 서울식물원 안에는 구.양천수리조합의 배수펌프장이 있습니다. 배수펌프장은 콘크리트 구조 위에 세운 목조건축물로 1923년에 설립된 양천수리조합이 1925년에 을축대홍수를 겪은후 배수펌프장 건립을 추진하여 1928년에 지은 것인데요 배수펌프장은 홍수조절용으로 물을 퍼내는 시설을 말합니다.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초기 배수장 관련 건축물로는 양천수리조합의 배수펌프장이 유일하다고 하며 더구나 근대적 동력으로 농업피해를 방지하는 시설이었으니 당시 농민들에게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고 하네요. 한강 하구인 드넓은 김포평야는 범람원으로 비옥해서 농토로는 적합했지만 저지대여서 침수에는 매우 취약했는데요. 김포평야 178만평을 관리하는 양천수리조합은 물 공급 못지않게 홍수피해로 부터 농지를 보호하는 임..
-
동대문 옆, 한양도성 각자성석의 위치변천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2. 11. 20:39
동대문 옆, 한양도성 낙산성곽의 끊어진 단면에는 13개의 각자성석이 모여 있는데요. 숙종 32년(1706) 4월, 삼군문의 하나인 훈련도감(훈국)에서 한양도성을 개축할때 끼워넣은 각자성석인데 이렇게 집단으로 있는건 이곳이 유일합니다. 원래는 동대문과 연결된 성벽에 위치해 있던 걸로 추정되는데 1911년 일제때 전차선로를 가설하면서 동대문 북쪽의 성벽을 헐때 옆으로 옮겨졌고 1970년대, 2010년대 등 몇번의 개보수과정을 거치면서 또 조금씩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본 각자성석은 동쪽 성벽 밖에 있었습니다. 10년 전에 바로 옆의 성벽 절단면으로 옮겼는데 옮기는 과정에서 이열로 있던걸 일렬로 나란히 배치한 역사가 있지요. 왜 잘 있던걸 절단면으로 옮겼는지 또 이열이었던 것을 왜 일렬로 나란히 배치했는지 그 ..
-
한양도성의 각자성석(刻字城石)을 찾아서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2. 9. 10:54
조선이 한양을 수도로 삼으면서 태조 5년(1396) 전국에서 20만명의 백성이 동원되어 한양도성(漢陽都城)을 축성하였는데 도성의 둘레는 약 18.6km에 달했습니다. 도성의 성벽 곳곳에는 축성과 관련된 기록이 새겨진 각자성석(刻字城石)이 끼워져 있는데요. 각자성석은 한양도성 축성기록을 품은 역사자료이자 도성 축성에 참여한 백성들의 노고를 확인할수 있는 증거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수 있지요. 각자성석은 조사결과 297개에 달하며 내용에 따라 천자문, 군현(지명), 이름 및 직책 각자로 구분합니다. 천자문 각자(14C)는 천자문을 통해 도성구간을 표시한 것으로 도성 전체를 600척(약 180m)씩 97개 구간으로 나누고 각 구간에 천자문 순서대로 한 글자씩 자호(字號)를 새겼으며 백악산 동쪽에서 천자..